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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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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질박한 번개시장의 아리랑- 한판암(수필가)

  • 기사입력 : 2015-01-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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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마산 댓거리 월영광장 오른쪽 경민빌딩과 롯데마트와 삼우상가 언저리 인도를 무단 점령하고 펼쳐지는 번개시장과의 만남이다. 매주 일요일 여명이 밝아올 때부터 오전 10시 무렵까지 수백에 이르는 난전이 빼곡하게 펼쳐지는 독특한 형태로서 질박한 삶과 투박한 정이 어우러지는 별천지이다. 내게는 번개시장 하면 인터넷 문화와 연관되는 ‘벼락치기 모임’ 격인 플래시몹(flash mob)이 떠오른다.

    무기력하거나 해이해지면 번개시장을 자주 찾는다. 사람이 다니는 길에 여봐란듯이 난전을 펼치고도 마냥 당당한 우리네 형제자매의 강건한 삶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장꾼들 틈에 끼어 난전 골목과 모퉁이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몇 바퀴 어정거리며 구경하면 겨울에도 추위가 씻은 듯이 가시면서 힘이 솟는다. 아리랑 아라리요.

    번개시장은 늘 계절을 한발 앞서 내닫는다. 그래도 시장을 제대로 음미하며 밀당의 멋을 한껏 즐기려면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가 맞춤하다. 겨울은 움츠러들고 상대적으로 아쉬우며 단순하다. 하지만 엄동의 장터에 피운 모닥불에 곁불을 얻어 쬐는 맛은 단연 최고로 행복하다. 겨울이라도 설대목이나 정월대보름을 앞둔 장터는 다양한 곡물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묵나물로 무척 걸고 푸짐하다.

    나를 몸살 나게 만드는 것은 터 서리에서 가꿨을 푸성귀 몇 줌과 논밭 둑이나 도랑가에서 채취했을 쑥이나 돌미나리 몇 무더기 펼쳐놓은 할머니들이다. 얍삽한 세상사에 어둡고 셈에 어릿한 내 누님 같아 슬며시 다가가 푸성귀 한두 무더기 원하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마수걸이 횡재라도 한 듯 흡족해하는 모습에 가슴이 훈훈해진다. 아리랑 아라리요.

    풍성한 시장과 사람 냄새 제대로 맡으려면 들녘에 자생하는 나물류와 남새밭에서 키운 다양한 채소나 밭가에 돋아났을 머위 순 따위가 흔해지면서 할머니들의 장사보따리가 다양해져야 한다. 또한 여름과 가을로 넘어가면서 가지와 풋고추 열무와 어린배추, 심지어는 호박잎과 흐드러지게 과일이 등장하면 시장은 마냥 풍성해진다.

    햇볕이나 비바람 가림막이 없는 노천이라도 거르는 일이 없는 번개시장이다. 이 마당은 다양한 수산물과 농산물에 일용잡화까지 소용이 닿는 것을 고르고 흥정하며 밀고 당기는 쏠쏠한 즐거움은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의 상거래와 사뭇 다르다. 게다가 인정도 덤으로 듬뿍 얻어온다. 그런 까닭에 매주 일요일 꼭두새벽부터 원근에서 수많은 장꾼들이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룰게다.

    어쩌다 번개시장 지근에 살면서 그 동네 인심과 셈법에 익숙해졌다. 장터의 난전 주인 못지않게 장꾼인 이웃들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겉모습은 옥골선풍인데 아무에게나 하대(下待)를 퍼붓는 무례를 범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기껏해야 율곡이 지키는 지전 몇 장 셈하는 푸성귀 한 줌 사면서 백발의 할머니에게 비싸다고 쨍쨍대는 좀생이 앞에선 귀를 막고 싶었다.

    서로 어우러져 밀당을 하면서 서로의 체취가 밴 민초들의 땅이며 세상인 번개시장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밟아야 할 길 위에 무법자처럼 난전을 펼쳤다가 흔적 없이 거두어들이고 삶터로 떠나는 무애도인이며 또 다른 형태의 플래시몹이다. 틈이 나면 난전 마당을 서성이며 세상을 배운다.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하는 순수와 삶의 진솔함을 옹골지게 터득하는 희열 때문에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그 주위를 맴도는 내가 싫지 않다. 아리랑 아라리요.

    한판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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