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2015신년리포트- 아침을 여는 사람들 (5) 새벽 등산모임 산행 동행기

모두가 잠든 시간, 어둠 속 산행 후 만난 황홀함
팔용산을 새벽 5시에 오른다는
‘팔오공’ 회원들과 왕복 4㎞ 코스 등반

  • 기사입력 : 2015-01-28 00:00:00
  •   
  • 메인이미지
    창원 팔용산을 새벽 5시에 오르는 등산모임 ‘팔오공’ 회원들이 산 정상에서 여명을 바라보고 있다./김승권 기자/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한겨울 캄캄한 어둠을 가르고 산을 오른다. 고요와 적막. 낙엽 밟는 소리만 들린다. 도시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창원 팔용산(八龍山)을 새벽 5시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기에 그들을 찾았다. 팔용산을 5:00에 오른다는 의미로 모임 이름이 ‘팔오공’이란다. 옛 마산과 창원의 가운데 있는 팔용산은 해발 328m로 높지는 않지만 가볍게 볼 산은 결코 아니다.

    지난 25일 일요일 새벽 이들의 산행에 동행했다. 마산회원구 양덕동 양덕초등학교 뒤편 정인사 절 입구에서 팔오공 회장인 이정식(76)씨와 회원 이권갑(48)씨를 만났다.

    팔용산 등산로는 여러 곳이다. 회원들은 주로 팔용산을 끼고 있는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 마산회원구 양덕동, 합성동, 봉암동 등에 산다. 각자 자신의 집과 가까운 코스를 택해 산을 올라 정상에서 만난다. 그리고 정상 근처에 있는 헬스장에서 각자 필요한 운동을 하고 헤어지는 게 이들의 일과다.

    기자가 팔오공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 바쁜 직장인들이 산 정상까지 가서, 거기서 헬스까지 하고 내려와 출근한다니. 그것도 1, 2년도 아니고 8년째란다.

    5시가 약간 넘어 절 뒤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이권갑씨가 앞서고 기자, 사진기자, 이 회장이 뒤따랐다. 기자는 전날 밤 새 건전지를 넣은 헤드랜턴까지 요란하게 준비를 했는데, 앞장선 이씨는 눈에 불을 켰는지(?) 불도 없이 어둠 속을 잘만 헤쳐가 기자를 머쓱하게 했다.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시원하다. 등산로가 질척이지 않도록 누군가 낙엽을 깔아놓은 모양이다. 일상에 지친 도시민들은 아직 단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다. 휴일이라 그런지 소음도 없다.

    이씨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보인단다. 자식을 잃은 누군가가 시름을 달래기 위해 이 등산로를 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혼자 다니면 무섭지 않나요” “그런 것 없어요” “어두워 다치지는 않나요” “눈이 오거나 하면 간혹 엉덩방아를 찧기도 합니다.”

    어두워서 어디쯤 가고 있는지, 얼마나 왔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냥 이씨만 보고 열심히 따라간다. 돌아보니 마산 야경이, 아니 새벽 경관이 참 아름답다.

    메인이미지
    지난 25일 ‘팔오공’ 회원들과 함께 팔용산 정상에 오른 이학수 기자./김승권 기자/
    출발지에서 정상까지는 2.1㎞. 40분 남짓 걸린다고 한다. 다행히 며칠째 기온이 비교적 높아 춥지는 않다. 팔용산 등산로는 탑골, 창신중·고등학교, 산해원교회, 경남아파트, 팔용교육단지, 창신대, 동서식품 등 여러 곳이다.

    산을 좋아하는 이씨는 전날 밤 전라도 쪽 산행을 하고 밤 12시에 도착해 새벽에 또 산을 탄단다. “일요일이라 회원들이 다른 지역으로 원정등산을 가거나 쉬는 회원이 많아 오늘은 몇 명 안 될 것 같은데요.”

    산 정상이 희미하게 보였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 드디어 정상에 도착, 5시 50분을 좀 넘었다. 남해고속도로와 마산항, 창원공단, 멀리 장복터널을 쭉 둘러본다.

    뒤따라온 이 회장은 “권갑이는 한창이지. 내가 나이가 있으니 예전 같지 않아요.”

    정상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회원들이 운동한다는 헬스장으로 갔다. 팔용산을 등산해 본 사람은 정상 바로 못미친 곳에 있는 헬스장을 봤을 것이다.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윗옷을 벗어놓고는 각자 자신에게 맞는 기구를 찾아 운동한다.

    이 회장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그는 최고령으로 8년째 회장을 맡고 있다. “어떻게 모임을 만들었나요” “그냥 매일 산에 와서 만나고 하니까 인사나 하자며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05년 모임이 만들어졌다. 회원이 많을 때는 30여명 됐으나 지금은 15명이다. 연령대는 40~70대까지 다양하고 주로 자영업자가 많다. 2개월마다 모임을 갖고 길흉사를 챙긴다.

    그는 서른 살 때부터 팔용산을 올랐다고 하니 40년이 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팔용산을 올랐다. 한창때는 일 년 열두 달 중 열한 달을 산에 올랐다. 왜 그렇게 열심히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산이 좋아서”. 간단명료하다. “개나리, 진달래 피는 3~4월이면 미칩니다.” 미친다는 데 더 이상 무슨 답을 청해 들을까.

    회원 김원연(62)씨가 조금 늦게 올라왔다. 전기 공사업을 하는 그는 창립 멤버다. 그도 일주일에 여섯 번은 올라온다. 30년을 넘게 팔용산과 부대끼면서 사는 사람이다. 양덕 대림아파트에 사는 그는 탑골 쪽으로 올라온다. “철봉에 매달려 일출을 보면 정말 환상적입니다. 봉암수원지에 비친 일출은 황홀경 그 자체지요.”

    김씨는 또 다른 산악회 총무를 20년째 하고 있다. 매달 한 번씩 다른 지역으로 산행을 한다. 평일은 ‘가볍게(?)’ 팔용산에서 몸을 풀고, 한 달에 한 번씩 더 멀리, 높은 산을 오른다.

    “건강은 사회생활 필수품 아닙니까. 산을 타면 면역기능이 강화돼 아프지도 않고, 늙지도 않아요.”

    어떤 회원은 평소처럼 새벽에 눈을 떠서 정상에 도착했는데, 새벽 2시였다는 일화도 있다. 팔용산 등산이 일상이 돼버린 그들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몸이 쑤셔 누워 있지 못한단다. 겨울에는 평균 7~8명 정도, 날씨가 풀리는 봄부터는 거의 모든 회원을 산에서 만날 수 있다.

    기자의 기대와 달리 일요일이라 회원이 몇 명 모이지 않았다. 모두 4명.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니 생활에 에너지가 넘칩니다. 경남신문 독자 여러분께 팔용산의 정기를 보내드립니다.” 이학수 기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학수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