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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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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직원 절반 이상 장애인 고용 김해 진례면 금강산업 대표 이상민씨

이상민 사장, 20년전 사고로 오른손 잃고는...
장애인과 함께하라는 숙명이라 여깁니다

  • 기사입력 : 2015-01-2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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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로 오른손이 절단돼 지체2급 장애인이 된 이상민 금강산업 대표가 공장에서 직접 지게차를 몰고 자재를 옮기고 있다./전강용 기자/

    장애인 고용의무제도는 장애인에게도 직업생활을 통한 생존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기본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지난 1991년 도입됐다. 대상은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50인 이상 공공기관·민간 기업이다. 현재 민간 기업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전체 근로자 수의 2.7%로 정해져 있지만 부담금으로 해결하려는 곳이 많다.

    브래킷(자동차부품)을 만드는 김해시 진례면의 금강산업은 의무고용 대상 기업이 아니지만 직원 19명 중 11명이 장애인이다. 2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오른손을 잃은 이 회사 이상민(56) 대표는 장애인들의 불편과 어려움을 몸소 느끼고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사고로 오른손 잃고 장애인 되다

    사천시 용현면이 고향인 이 대표는 10살 때 부산으로 이사를 가 경남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사진인쇄업체, 캔 제조공장 등에서 일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부산에서 전자부품 제조업체를 창업했다. 공무원 출신인 부친은 기능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지만 엔지니어인 외삼촌의 도움으로 조그만 업체의 사장님이 됐다.

    장남인 이 대표는 당연히 부친 일을 도와야 했다. 당시엔 가능한 한 많은 제품을 만드는 생산성에만 치중해 안전의식이라는 것이 없었다. 1994년 10월 9일 한글날, 이 대표는 작업 중 오른손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고 지체2급 장애인이 됐다.

    사고가 난 후 상심한 부친은 더 이상 공장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이 대표는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겠다고 나섰다. 돈벌이로 괜찮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대표는 부친의 부산 공장을 정리하고 고객사가 있던 창원으로 이전했다. 고객사와 가까이 있으면 소통이 잘 되고 물류비도 절감할 수 있겠다 싶었다. 당시만 해도 부산과 창원 간 교통 여건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대표가 자신의 명의로 공장을 시작한 1997년은 시기가 좋지 않았다. 얼마 가지 않아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작은 회사여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 대표는 물론, 아내, 양친, 동생 등 온 가족이 일에 매달려 가까스로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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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높이 낮춰 장애인 채용

    몇 년이 지나 회사가 안정되자 장애인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장애인이 되고 나니 장애인들의 불편과 어려움을 알게 됐고, 일자리를 줘 자립하는 데 도움을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후천적 장애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장애인을 채용하는 기업에 많은 지원을 해줘 가능한 일이었다.

    1999년 10월 지체장애인 2명을 고용했다. 두 사람 모두 착하고 성실한 데다 기대치보다 일도 잘했다. 이들을 통해 장애인 고용에 눈을 떠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창원지사로부터 장애인 직원을 소개받기도 했다.

    장애인 채용을 하면서 업종도 전자부품에서 자동차부품으로 바꿨다. 전자부품은 부주의로 땅에 떨어져 오물이 묻거나 흠집이 나면 불량이 나지만 자동차부품은 관리를 다소 못해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안정적인 거래처도 확보해 직원들이 일손을 놓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거래업체에 부탁해 장애인도 할 수 있는 반복 작업 아이템을 가져오기도 했다.

    사실 장애인을 채용할 경우 장점은 거의 없다고 한다. 똑같이 최저임금 이상을 주는데 일반인에 비해 생산성이 낮고 숙련도 향상이 더디다. 직원 모두를 장애인으로 채용하고 싶어도 경쟁력이 떨어져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대표는 눈높이를 낮췄기 때문에 장애인 직원과 함께할 수 있었다.

    “장애인들도 어느 분야에서나 똑같은 일을 하게 되면 발전적으로 나아진다고 생각해요. 단지 비장애인보다 조금 못할 뿐이죠.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지난 2일에는 청각장애 직원을 입사시켰다. 김해 삼방동에서 회식을 한 후 호떡가게에 들렀는데 장애인 직원들을 본 여주인이 취직을 부탁해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이 직원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자녀를 데리러 가야 해 오후 4시면 퇴근한다. 이 직원의 조기 퇴근도 이 대표가 눈높이를 낮췄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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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민(맨 오른쪽)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전강용 기자/


    ◆직원 근무환경 개선이 꿈

    이 대표는 장애인 직원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임금이 그리 많지 않은데도 다수가 10년 이상 이 대표와 함께 일하고 있다. 자신이 장애인 직원들을 돕기보다는 그들이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적지 않은 어려움이 닥쳤지만 이 대표와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과, 공장 규모가 조금씩 커졌고 2002년 현재의 위치인 진례면으로 이전했다.

    현재는 직원 19명 중 11명이 장애인이다. 지체장애, 정신지체, 시각장애, 청각장애 등 장애 유형도 다양해 능력에 맞게 일거리를 분배함으로써 작업능률을 높이고 있다.

    그는 오른손을 잃게 된 것을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주면서 함께 살아가라는 숙명이라고 여긴다.

    “내가 손을 안 다쳤으면 장애인의 불편을 몰랐을 것이고 선입견도 가졌을 테지요. 그런데 손을 다친 후 장애의 불편함을 알게 됐고, 그럼에도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으니까 다른 장애인들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이 대표는 현재 조성 중인 김해테크노밸리에 자가 공장 부지를 분양받았다. 2017년께 새 공장을 지어 장애인 직원들에게 좀 더 나은 근무환경을 제공하고 더 많은 장애인을 채용하기 위해서다.

    새 공장에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시설자금을 융자받아 장애인들이 편리하고 손쉽게 작업할 수 있는 자동화 설비를 설치하고 각종 복지·편의시설도 갖춰 장애인 고용 모범 사업장이 되도록 하는 것이 이 대표의 꿈이다.

    양영석 기자 yys@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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