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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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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을 달려온 진해선 열차, 이제 추억 속으로…

하루평균 이용객 2명 불과…군항제 관광열차는 계속 운행
어떤 이에겐 꿈으로 가는 길이자
어떤 이에겐 삶의 애환이 서린 길

  • 기사입력 : 2015-02-0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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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선 운행 마지막인 지난 31일 오후 7시 25분 창원시 진해역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마산역으로 출발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지난달 22일, 국토교통부는 2015년 1월을 기점으로 '진해선 운행 중단'을 밝혔다. "하루 4차례 운행되는 진해선의 이용객은 2명, 2014년 한 해만 3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국토부는 덧붙였다. 진해선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11월에 개통해 1970년대 중반 창원공업단지 조성과 함께 융성기를 누렸다. 1980년대 들어 도로 사정이 좋아지자 자동차 이용객이 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2004년 KTX 개통과 함께 사라지나 했더니, 하루 2번 운행하는 완행열차로 살아남아 10여 년을 우리 곁에 더 살았다.

    ◆2015년 1월 31일 막차

    2015년 1월 31일 오후 6시 35분. 마산역에서 진해선 마지막 열차에 올랐다. 승객이 거의 없을 거라는 기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카메라를 들고 3량짜리 열차 간을 운동장처럼 누비고 있었던 것. KTX나 떼제베, 신칸센 같은 고속열차만 알 것 같은 10대 청소년들이 가진 진해선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다.

    하승범(17·김해대청고등학교 1년) 학생은 "진해선 중단 소식을 듣고 친구들이랑 탔어요. 이 열차는요, 무궁화 RDC라고 지하철처럼 짧은 구간을 운행하기 적합한데요, 아! 아까 창원역에서 5분 정차한 거 신기하지 않아요? 열차 방향을 경전선에서 진해선으로 돌리려고 그랬어요. 옛날에 저 같은 고등학생도 많이 타고 학교 다녔데요." 진해선 막차를 몰게 된 문인주 여객전무는 "학생들 10여명이 타고 있지만 사실 마지막 차에 70여명이 예매를 했다"며 "예매만 하고 타지는 않은 승객들이 많은 것 같은데, 아마 진해선에 대해 추억이 있는 분들이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신세계로 나가는 길

    그렇다. 한때 진해선은 10대 청소년을 등허리에 가득 싣고 창원과 마산, 진해를 내달렸다. 정일근(57) 시인은 1970년대의 진해선을 '신세계로 나가는 통로'라고 표현했다. "진해선을 타고 창원, 마산으로 나가야 서울, 부산, 양산을 갈 수 있었으니까요.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면 진해선을 타고 창원에 내려서 부산진역에 가는 기차로 갈아타고 또 거기서 서울 가는 기차를 탔으니까, 진해선이 우리를 신세계로 안내한 거죠."

    진해선으로 진해~마산상고를 통학하던 정 시인에게 진해선은 10대의 치기와 연정, 시에 대한 목마름으로 기억된다. "교내에 버스로 통학하는 애들을 '버통', 기차로 통학하는 애들을 '기통'이라고 했어요. 두 팀이 축구도 하고 패싸움도 했는데,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만큼이나 살벌했어요. 마산여고 여학생 하나를 사귀었는데, 진해선을 태워주기도 했어요. 덜컹대는 버스보단 뭔가 폼 나 보이잖아. 끝까지 새침데기처럼 굴던 그 계집앤 어디서 뭐하고 사나 몰라." 당시 경남여상에 재직하고 있던 황선하 시인에게서 시를 배운 정 시인은 흔들리는 열차 간에 서서 자신의 서툰 시를 '검사' 받았다. "그날 쓴 시를 보여드리면 황 선생님은 밑줄 하나 죽 그어 주시는 정도였지 별 말씀이 없으셨어요. 그런데도 그때는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 그게 좋아서 매일 선생님 퇴근시간 맞춰서 창원역에서 기다리다 진해선을 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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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선 마지막 열차가 마산역으로 떠나자 진해역 대합실이 폐쇄되고 있다. /김승권 기자/

    ◆굴다리를 아시나요

    두 손녀의 할아버지가 된 김기호(75·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씨는 총각시절 해군 하사로 복무하던 때 진해선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1960년도였는데, 그땐 여좌천~진해종합운동장 부근을 통제부라고 했어. 그 통제부역(통해역)에서 기차를 타고 영외에 사는 중사, 상사, 군무원들이 출·퇴근을 했지. 나 같은 하사관(부사관)은 진해역까지 걸어 나와서 군용열차를 타고 창원역으로 나가 삼랑진도 가고 부산도 갔어" 그는 석탄의 힘으로 달리던 옛 기차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화부 2~3명이 교대로 석탄을 땔감으로 붓고 "삑삑~" 기적을 울렸어. 경화역이랑 성주사역 사이에 굴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굴만 지났다 하면 석탄가루 때문에 승객들 코가 전부 새카맣게 됐지"
    정 시인도 굴다리에 대해 아련한 추억을 갖고 있다. "성주사역을 넘어올 때 굴다리만 지나면 가슴이 따스해졌습니다. 어두컴컴한 굴을 지나면 낮은 가옥들이 노란 불을 켜놓고 식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거든요. 저 불빛 속에 우리 집이 있다는 그 마음. 그게 뭔지 알겠죠?"

    ◆잊으신 추억이 없도록

    진해선이 수명을 다하면서 진해역도 2월 1일자로 기능을 상실했다. 진해역은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5급 사무관 역장에 직원이 20명이 넘어 인근 마산역과 대등한 위상을 지닌 역이었으나, 올해부턴 4월 군항제 기간 관광열차 운행 기간만 문을 열 뿐 나머지 기간은 폐쇄된다.

    서정헌 진해 부역장은 "내가 진해역 마지막 부역장이 될 줄 몰랐다"며 "100년을 채우지 못하고 운행이 중단돼 아쉬울 뿐이다"고 말했다. 사실 진해선의 주인은 베이비붐 세대와 그 전후 세대뿐만 아니었다. 진해에서 밭작물을 키워 마산·창원 장에 내다팔던 할머니들도 있었다. 진작 고인이 됐을 그 할머니들은 장사가 잘 돼 기분 좋은 날 막걸리를 한 사발씩 걸치고 열차 간에 퍼질러 앉아 구성진 노래를 한 곡조씩 뽑아냈다. 한편에서는 고등학생들이 기타도 쳤다. 그러니까 기차 한 칸 정도는 승객 모두가 노래하고 춤추던 '흥과 애환의 열차'였다는 말이다. 전화 한 통도 옆 승객에게 민폐가 되는 오늘날, 88년 세월은 열차의 위상과 열차라는 특수한 공간이 만드는 풍속도 모두 바꿔놓았다.

    코레일 측의 배려로 노영호(16·경기도 파주 문산중학교 3년) 학생이 이날 막차의 마지막 방송을 하기로 했다. "88년 역사의 진해선이 마지막 운행을 마칩니다. 승객 여러분, 잃으신 물건이 없도록 유의 바랍니다." 기자는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어디선가 바쁜 삶을 사느라 미처 막차에 오르지 못한 승객 여러분, 잊으신 추억이 없도록 유의 바랍니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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