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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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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신년리포트- 아침을 여는 사람들 (6) 응급실 원무과 직원 체험기

다친 취객·심정지 환자 틈에서 아침을 맞다
새벽 4시, 어두운 번화가 속 응급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로 북새통

  • 기사입력 : 2015-02-0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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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창원시 성산구 한마음병원 응급실 원무과에서 김현미 기자(가운데)가 새벽에 응급실을 찾은 환자 보호자로부터 접수를 받고 있다./성승건 기자/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4시. 창원 대표 번화가인 상남동에도 공허한 기운만이 맴돌았다. 이 순간 살아 숨쉬는 생명체라고는 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어둠 속에서 환하게 불을 밝힌 곳이 눈에 띄었다. 늦은 밤부터 이른 새벽까지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병원 응급실이다.

    지난 1일 일요일 새벽 고요한 세상 속 분주한 세상을 경험해 보기 위해 한마음병원 응급실 원무과를 찾았다. 병원 정문 쪽으로 들어오면 볼 수 있는 구급차량 앞 응급실로 들어서자 왼편에 ‘접수·수납’이 명시된 조그만 공간과 보호자 대기실이 보였다.

    아기가 열이 나 달려온 아기 엄마부터 만취상태에서 넘어진 중년 남성들, 탈이 났는지 밤새 괴로워하는 딸을 데리고 온 아버지까지, 이미 원무과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유리문을 두고 안팎으로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다이내믹(?)한 상황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경남신문 기자다. 일전에 말했던 것처럼 새벽까지 일하는 응급실 직원들의 풍경을 취재하러 왔다”고 하자 보호자들과 환자들의 눈이 모두 기자에게로 향했다.

    한층 험악해진 눈초리로 “아픈 게 재밌느냐. 뭘 취재한다고 그러느냐”는 소리도 오갔다.

    일면식을 채 하다만 한 직원이 “기자님은 저희 업무하는 모습만 물어보시고 찍으실 거니 진정하세요”라며 보호자를 진정시킨 후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사람은 아픈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말이 여기서는 큰 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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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미 기자(오른쪽)가 응급실에서 보호자에게 환자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대기하던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응급실 안으로 치료를 받는 것까지 인도해 주기까지 한 20분 정도 흘렀을까. 조금은 한산해지자 직원들에 업무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다.

    지난해 5월부터 일하기 시작했다는 이재관(24)씨는 “환자분이 오시면 증상이 어떤지, 언제부터 아팠는지 등을 물어보고 응급실 안으로 치료를 인도해 주고 의사의 판단에 따라 입원절차를 밟는 것이 우리 일이다. 아침 8시께 동이 트고 인수인계가 끝나면 일이 모두 끝난다”고 말했다.

    아침까지만 일을 하니 진정한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재관씨는 “아침이 와야 퇴근을 하니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1년가량 근무했다는 조성식(31)씨는 “가끔 만취한 분들의 폭력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막고, 환자들의 이송을 돕기도 한다”며 “그래서 남자 직원만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을 배우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잠시, ‘삐용 삐용’ 소리가 온 사방을 울리자 직원들은 물론 의료진까지 모두가 긴박해졌다. 구급차 문이 열리고 직원들은 환자가 누워 있는 의료용 베드를 응급실 내부로 이송했다. 말로만 듣던 심정지 환자였다.

    의료진이 제세동기로 환자의 맥박을 겨우 살려낸 후 자리로 복귀한 성식씨는 곧바로 다른 의료기관으로 전화를 걸어 “심정지 환자가 들어와 우리 병원에서 맥박은 살린 상태로, 보호자분이 그쪽 병원으로의 전원(轉院)을 원한다”며 절차를 밟고 침착하게 상황을 처리했다.

    주말 새벽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은 끊이지 않았고, 분주한 상황이 계속되자 2명의 직원들을 돕기 위해 기자도 짧은 시간이나마 배운 대로 증상을 물으며 접수를 도왔다.

    기자가 처음 응대했던 아기 엄마가 접수대로 다가오더니 “우리 애가 열이 나는데 좀 빨리 치료를 해줄 수 없냐. 똑같이 돈을 낼 텐데 왜 우리 아기만 기다려야 하냐”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

    쩔쩔매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기자 옆에서 재관씨는 “바로 직전에 매우 위급한 상황의 환자분이 오셨고, 오늘 방문하신 환자분들이 많아 처리가 늦어졌다”며 사과한 뒤 한 10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기다리시겠냐며 보호자의 양해를 구했다.

    재관씨는 “보통 오늘처럼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경우 응대할 때 처음에 증상 등을 물어봐야한다. 그런 다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냐고 의견을 물은 후 아니면 다른 병원으로 알아봐 드리겠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기다리는 보호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물론 환자들의 상태가 악화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툴게 응대했기에 벌어진 상황이라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의기소침해진 기자에게 성식씨는 “우리 일은 감정 컨트롤이 중요하다. 만취한 사람의 언행부터 아파서 예민해진 환자와 보호자들까지, 화가 나거나 억울하더라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근무시간은 오후 6시부터 오전 8시까지다. “야식은 먹었느냐”고 물으니 두 사람 다 원래는 먹는데 오늘같이 환자가 많은 주말이면 먹을 시간조차 없다며 웃었다.

    분주했던 새벽에 체감은 10분 같았지만 시곗바늘은 벌써 3시간 가까이를 흘러 6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세상은 환해지고 있었다. 처음 접해본 일에 어영부영하다 시간이 도망간 듯했다.

    성식씨는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뇌출혈 등 심뇌혈관계 환자가 부쩍 늘어나 항상 긴장을 하고 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 건강한 새벽이 열릴 수 있다면 그것이 보람이다”고 말했다.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아 모두가 잠든 도시. 그들은 오늘도 불을 밝히고 건강한 새벽을 열기 위해 분주했다.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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