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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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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신년리포트- 아침을 여는 사람들 (8·끝) 시내버스 첫차 동행기

“올해는 좀 더 잘됐으면”…꿈 싣고 달리는 ‘소망버스’
오전 5시 정각, 시내버스 첫차 출발
출근·퇴근하는 사람이 뒤섞인 차 안

  • 기사입력 : 2015-02-2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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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민 기자(왼쪽)가 23일 오전 5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중에서 출발하는 100번 시내버스 첫차에 탑승해 기사 김동욱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김승권 기자/


    새벽 찬바람에 몸이 움츠려진다. 닷새간의 즐거운 설 연휴가 끝났다. 일상으로 돌아온 23일 새벽. 꿀맛 같은 단잠을 이기고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있다. 어둠을 깨우는 시내버스 첫차에서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봤다.

    도시가 아직 잠든 시간인 오전 4시 46분,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에 위치한 시내버스 운송업체 창원버스 차고지. 이날 첫차를 운행할 버스기사 김동욱(48)씨가 “일찍 나오셨네요”라며 반갑게 맞이했다. 5분이라도 더 눈을 붙이고 싶었던 기자와 달리 그는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 이내 100번 버스에 올라탔다.

    지난 1991년 입사해 운전대를 잡은 지 올해로 24년째인 그는 100번 노선에 대해 마산과 창원의 주요 지역을 지나는 ‘요지’라고 설명했다. 마산 해운중학교와 경남대 남부터미널, 마산중앙고, 어시장을 지나 합성동, 창원역, 지귀상가, 창원대, 은아아파트 등 많은 승객들이 이용해 시간적 여유가 없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5시 정각. 버스는 고요함을 깨뜨리는 엔진 소리와 함께 힘차게 출발했다. 차고지 맞은편 첫 번째 정류장에서 이모(65·여)씨가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제일 먼저 첫차를 타셨네요”라며 말을 건네자 “새벽시장이라 일찍 나가서 준비해야 해요. 설 연휴가 끝난 뒤라 조금 바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씨는 마산역 인근 전통시장인 번개시장에서 일하는 상인이다. 그는 새벽 3시 30분 일어나 매일 첫차를 탄다고 했다. 서른 살 때부터 시장에서 일하다 손녀를 보느라 잠시 장사를 쉬기도 했다는 이씨는 예전처럼 번개시장이 사람들로 북적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날씨가 추운 겨울철에 시장 일이 힘들지만 그는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되고, 손녀에게 용돈을 줄 수 있는 기쁨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단다.

    경남대학교를 지나 문화동에서 두 번째 승객인 황모(71)씨가 탑승했다. “출근이 아니라 퇴근이야.” 법인 택시를 몬다는 그는 “개인택시가 아니다 보니 설 연휴에도 운전대를 잡았다”며 “젊었을 때는 시내버스를 몰다가 지금은 영업택시로 벌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택시 면허증을 따는 게 희망이라는 황씨는 “조금 더 큰 욕심을 부리면 로또 1등에 당첨됐으면 좋겠다. 너무 많이 말고…”라며 멋쩍게 웃었다.

    마산제일여고 맞은편에서 버스에 탄 김모(68·여)씨는 합성동의 한 빌딩에서 청소 일을 한다. 그는 “일찍 일어나 청소하는 게 피곤하지만 출근하는 사람들이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답했다. 월요일 새벽이라 조금 피곤하다는 그는 잠시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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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민 기자가 23일 새벽 5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중학교에서 출발하는 100번 시내버스 첫차에 탑승해 김동욱 기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김승권 기자/

    어시장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탔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 역시 곧바로 잠을 청했다. 버스 기사도 라디오를 켜지 않고, 실내등도 끈 채 운전했다. 일터로 나가는 승객들의 쪽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배려였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장모(57)씨만이 살갑게 말을 받아줬다. “장어거리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장씨도 출근이 아닌 퇴근길이었다. 그는 낮에 잠을 잔 뒤 오후 5시에 출근을 한다고 했다.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 집에서 버스로 이동하는 게 편하다는 그는 “장어거리가 점차 커지고 있어서 흐뭇하다”며 “조만간 사장이 된다. 제 가게를 운영할 건데 열심히 하는 만큼 잘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장씨와의 대화를 옆에서 바라보던 서모(69)씨에게 말을 걸었다. 부산 충무동으로 출근한다는 서씨는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지 않냐”는 물음에 “부산에 거처를 마련하면 편하겠지만 몸이 힘들어도 손주를 보는 게 더 좋다”고 했다. 서씨는 “어획물 운반선에서 일을 하는데 배가 있으면 적게는 3일, 많게는 5일 동안 일할 수 있지만, 없으면 헛걸음하는 셈”이라며 “건강하게 일하는 게 작은 희망”이라고 했다.

    버스가 컴컴한 거리를 달리는 동안 잠시 자리에 앉은 승객들을 살펴보니 60~70대 할머니가 대부분이고 젊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봄기운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우수가 지났지만 아직은 추운 날씨에 겹겹이 옷을 껴입거나 두꺼운 외투로 중무장한 모습이다. 일부는 옷깃이나 목도리를 올려 코와 입을 막았다.

    김씨가 합성동에서 내렸을 때 젊은 청년이 가방을 메고서 차에 올라탔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진오(19)씨다. 이씨는 밀양의 한 학교 기숙사에서 용접 일을 한다고 했다. 그는 곧바로 일을 하게 돼 기쁘다면서, 보다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싶다고 했다.

    새벽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2교대로 근무하는 아파트 경비원도 있었다. 창원 한 아파트에서 경비 일을 하는 또 다른 김모(68)씨는 “6시에 교대를 하기 때문에 5시 30분 전에 버스를 타야 한다”며 “순찰과 함께 택배일, 분리수거, 주차관리 등을 맡아야 돼 힘이 들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만족한다”고 전했다. 창원산단에서 청춘을 보냈다는 그는 “아내가 건강하고, 자식들도 하고자 하는 일이 다 잘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마산을 지날 때와 달리 창원 봉곡동 상가를 지나자 버스 안은 한적해졌다. 출발한 지 1시간 10분 만에 대방동 종점에 다다랐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첫차를 운전한다는 김동욱씨는 “첫차를 타는 손님들은 대부분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이지만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첫차를 타고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쉼표 없는 고단함이 묻어났다. 새해 아침 일출을 보며 다지는 각오가 삶에 던지는 선전포고라면, 아침 첫차의 풍경은 전쟁 중에 잠시 총에 기대어 쉬는 병사의 고단함과 같다. 오늘도 고단한 삶에 도전하는 그들에게 희망의 빛이 함께하기를 빌어본다.

    김정민 기자 jm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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