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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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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의 '봉순이', 황새 천국 일본 도요오카를 말하다

[해외 기획취재] 일본 황새, 봉순이 이야기

  • 기사입력 : 2015-02-2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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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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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13일 일본 효고현 도요오카시 이즈 지역에서 탐방객들이 인공둥지 위에서 쉬고 있는 황새를 관찰하고 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게 나의 특징이자 장점이죠.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면서 나는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떠나온 고향이 그립기도 합니다. 내가 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던 일본 도요오카, 그곳에도 지금쯤 봄이 오고 있겠지요?

    ◆봉순이를 아시나요

    나는 키 110㎝와 몸무게 5㎏에 긴 다리, 그리고 블랙 & 화이트로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패션 감각을 자랑합니다. 나와 백로, 왜가리를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마 직접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일 거라고 이해합니다. 나는 황새(Oriental White Stork)인데요, 옛날에는 한새로도 불렸다고 하는군요. 국적은 일본, 이름은 J0051입니다. 2012년 4월에 태어나 곧 세 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죠. 난 여자지만 모험을 사랑해요. 그래서 태어난 지 2개월 만에 집을 떠나 일본 곳곳을 날아다녔죠. 2012년 12월, 야마구치현에서 눈앞에 보이는 수평선을 넘고 싶어 무작정 날갯짓을 했어요. 집을 떠나 무려 600㎞ 가까이 여행했더니 지친 몸과 마음을 쉴 곳이 필요했는데, 마침 내 고향 도요오카 같은 곳이 나타났어요. 바로 한국땅 중에서도 경남 김해의 화포천입니다. 2013년 3월의 일이에요. 나를 본 김해 사람들도 도요오카 사람들처럼 애정을 듬뿍 줬습니다. ‘봉순’이라는 이름도 얻었죠. 내 행적이 알려지자 도요오카 사람들이 김해에 찾아오기도 했어요. 그들이 인공복원해 자연방사한 나의 부모가 나를 낳았는데, 그렇게 태어난 황새 중 해외로 나간 건 내가 첫 번째이기 때문이랍니다. 화포천은 살기 좋은 곳이지만 여행 본능을 어디 멈출 수가 있어야죠. 그해 가을 섬진강이 있는 하동군을 거쳐 지금은 충남 서산 천수만에 머물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황새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한국과 일본에서 텃새로 살기도 했다는데, 양국에서 비슷한 시기, 같은 이유로 멸종했다지요. 1930년대 수십 마리가 살고 있었지만 일본은 태평양 전쟁, 한국은 6·25전쟁으로 환경이 척박해지면서 개체수가 점차 줄었습니다. 또 황폐한 땅에서 많은 농작물을 재배하려니 농약 사용량이 크게 늘어났고, 밀렵까지 횡행해 우리는 자취를 감추었죠. 1971년 4월 마지막 황새 암수 한 쌍이 충북 음성에서 발견됐지만 수컷이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사실상 멸종된 셈이죠. 암컷마저 농약 중독으로 쓰러져 1994년 서울대공원에서 죽고 말았답니다. 한국은 1996년 정부의 의뢰로 한국교원대가 러시아로부터 황새 2마리를 기증받아 황새 복원에 나섰는데, 약 20년 만에 인공증식을 통해 개체가 150여 마리로 늘었고, 올해 9월 초 자연방사할 계획이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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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요오카시 이즈 지역에 있는 인공둥지. 12m 높이의 인공둥지 안에서 황새가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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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고현립 황새고향공원에는 방사를 앞둔 황새들이 야생 적응 훈련을 한다. 탐방객들이 우리 안의 황새를 살펴보고 있다.

    ◆봉순이의 고향, 도요오카

    내가 태어난 도요오카는 효고현 북부 다지마 지역의 중소도시로 면적은 700㎢, 인구는 8만9000여명입니다. ‘황새의 고향’으로 유명하죠. 1971년 황새가 멸종하자 일본은 1989년 러시아로부터 기증받은 암수 한 쌍으로 황새 복원사업을 시작했는데 일본 마지막 황새가 살았던 도요오카가 복원지로 낙점된 겁니다. 1994년 일본 정부와 효고현, 학계의 지원을 받고 도요오카시가 주축이 되어 황새장래구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황새의 증식과 서식, 야생적응훈련 등을 위한 현립 황새고향공원이 개장하는 등 복원 사업이 추진돼 왔죠. 황새복원사업을 시작한 지 16년 만인 지난 2005년, 일본은 5마리의 황새를 자연방사한 데 이어 2007년 방사된 황새가 인공둥지에서 새끼를 낳으면서 야생번식에도 성공했어요. 일본에서 황새가 멸종한 지 36년 만의 쾌거인데,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나죠. 이후 도요오카시는 시험 방조를 종료하고 황새 야생복귀 추진계획 2기에 돌입했는데요, 시내 전역에 76마리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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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요오카시 텐게츠 습지의 주민자원봉사단인 ‘An-girls’의 시마사키 유리코씨가 습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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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치고로 습지에서는 탐방객들이 황새의 서식 환경 조사를 체험해볼 수 있다. 한국 탐방객들이 황새 먹이 조사에 참여하고 있다.

    ◆도요오카의 특별함

    연간 35만명이 찾는 황새고향공원으로 가는 길을 나는 참 좋아했습니다. 미에초등학교에 있는 인공둥지에 친구가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껏 날갯짓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지중화 덕분에 전선을 피해 날지 않아도 되거든요. 잘 정비된 농로와 겨울철 무논 덕분에 사시사철 먹이활동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청의 ‘황새공생과’를 주축으로 주민이 참여하고, 학계도 힘을 보탰죠. 사람보다 황새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게 민·관·학 네트워크의 좋은 예가 아닐까 싶어요. 마루야마강의 범람 때문에 정비공사가 예정돼 있던 습지에 야생 황새 한 마리가 날아와 살자, 시와 주민들이 황새를 보호하기 위해 공사를 중단하고 일대 습지를 사들여 보존하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는 것은 람사르 등록 습지인 ‘하치고로 습지’의 이야기입니다. 야생 황새에게 ‘하치고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그 황새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살펴 더 많은 황새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죠. 하치고로 습지를 관리하는 황새습지네트워크는 황새 서식지 보전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제18회 한일국제환경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사다케 세스오 황새습지네트워크 대표는 “황새의 입장에서 연구해서 황새가 찾아오도록 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황새 복원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황새를 우선하는 마음, 시와 주민, 학계의 네트워크”라고 강조합니다.

    또 다른 람사르 등록습지인 텐게츠습지는 황새 덕분에 연간 주민의 10배에 가까운 외지인이 찾는 유명 관광지가 됐어요. 사람들이 찾아오자 2011년 마을의 주부 14명이 모여 안내를 위한 자원봉사단 ‘An-girls’를 결성했는데, 우리 사이에서도 유명합니다. ‘An - girls’의 일원인 시마사키 유리코씨는 “황새가 오지 않았으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을 농촌 마을이었다”면서 “황새 덕분에 마을에 활력이 생기고 주민 공동체도 보다 공고해졌다”고 자랑하더라고요.

    도요오카는 황새 복원을 시작하며 황새육성농법을 쓰고 있어요. 우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를 줄이는 친환경농법이죠. 시는 황새-무농약-환경-비즈니스-경제라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시키기 위해 힘쓰고 있는데, 덕분에 황새육성농법 재배면적은 2003년 0.7㏊에서 2012년 394.6㏊로 증가했답니다. 우리가 사는 마을의 농산물은 다른 지역의 농산물보다 2배 높은 값을 받아요.

    마노 츠요시 도요오카시 부시장은 “황새가 살기 좋은 환경은 인간에게도 살기 좋은 환경이며, 환경에 좋을수록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면서 “황새로 시작되는 환경경제정책은 도요오카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며, 황새 복원 목적 외에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이를 통한 경제 활성화를 꾀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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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치고로 습지에서 황새습지네트워크의 사다케 세스오 대표가 황새의 서식 환경 연구 현황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봉순이의 조언

    여행을 다녀보니 경남은 매력적인 곳이었어요. 내가 안심하고 쉴 수 있었던 김해 화포천과 봉하마을을 비롯해, 매년 100여 종 수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오는 창원의 주남저수지, 생물다양성을 잘 보전하고 있는 람사르습지 창녕 우포늪 등은 내 고향처럼 자연과 사람이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가진 곳이니까요.

    특히 우포늪에서 추진 중인 따오기 복원 사업에 단연 관심이 가는데, 지난 2008년과 2013년 중국에서 들여온 따오기로 번식에 성공해 2017년께 야생 방사할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개체수 늘리기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따오기는 준비가 됐는데 정작 우포늪 주변 환경과 지역 주민, 지자체의 준비가 미흡하다면 복원사업의 성패가 달라질 수도 있잖아요. 내 고향처럼 지자체-주민-시민단체-전문가가 합심해 따오기가 스스로 먹이활동을 하며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의 서식지를 확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따오기가 살기 좋은 환경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개선과 공감대 형성도 필수죠. 도요오카의 친환경 논들은 지원금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니까요. 또한 지속적으로 따오기를 돌보고 서식과 관련한 연구를 할 전문 연구 인력이 필요해요. 아마 창녕군의 힘만으로 힘들테니 경남도와 환경부의 지원이 있어야 할 겁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이야기는 뻔한 말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알고 있어도 실현하지 않는다면 못해낸 것과 다름없죠. 내가 고향을 떠나 자유롭게 여행을 하는 것처럼 우포의 따오기도 자연의 품에서 살며 내 고향 같은 곳으로 해외여행할 수 있게 되길 기원합니다.

    글·사진= 김희진 기자 likesky7@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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