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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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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권력이라는 이름의 전차- 고증식(시인)

  • 기사입력 : 2015-03-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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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빼놓지 않고 챙겨 보던 드라마가 엊그제 막을 내렸다. 배우들의 열연도 열연이었지만 드라마의 단골 메뉴인 불륜은커녕 그 흔한 멜로 하나 깔지 않고 전개되는 선 굵은 서사에 빠져 몇 달을 즐겨 본 드라마였다. 드라마의 종영을 못내 아쉬워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한 회 결방까지 감안하고 홀수 회로 깔끔하게 막을 내린 드라마가 연장되기를 바라는 네티즌들의 댓글이 꽤 많이 달렸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선과 악의 두 축으로 명확히 구분되기는커녕 누가 더 나쁜가 내기라도 하듯 경쟁적으로 악업을 쌓는다. 그들은 개인의 영달을 도모하고 사적인 치부를 덮기 위해 공적인 어떤 종류의 비리도 서슴지 않는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검사가 된 주인공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외눈박이 전차처럼 앞만 보고 달려간다. 자신의 굳건한 동아줄이라고 믿는 선배 검사를 검찰총장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불법과 편법으로 버무린 밥상을 차려 그 자리에 앉힌다. 그 다음 바통은 당연히 자신이 넘겨받으리라 믿었기 때문. 그 욕망덩어리 선배 검사의 대척점엔 오염된 검찰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 믿는 또 다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법무부장관이 있다. 드라마는 매 회 더 큰 무기로 상대를 누르기 위해 서로의 약점을 틀어쥔 채 물고 물리며 파멸을 향해 치달아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은 자신의 질주를 막는다는 이유로 검사 아내와 일곱 살배기 딸아이와도 헤어져 산다. 하지만 이혼까지 불사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죽음이었다. 뇌종양을 유전으로 물려받고 시한부 삶을 살게 되면서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농락한 권력과 어떤 힘에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을 향해 멋지게 한 방 ‘펀치’를 날린다.

    펀치를 날린다고 했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이렇게 힘든 적이 있었나 싶게 뒷맛은 개운함이나 통쾌함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사건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할 때마다 재미를 느끼기보다는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드라마 속 이야기와 우리가 딛고 선 현실이 자꾸만 겹쳐졌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제품 및 사건들은 현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극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허구임을 밝힙니다.’ 매 회 시작 전 화면을 꽉 채우고 등장하는 이 문구가 전혀 허구라는 실감으로 와 닿지 않는다. 아니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너무도 생생한 현실감에 이 문구가 오히려 반어로 읽히기도 한다.

    대통령비서실장과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이 자주 한자리에 등장하는 장면 때문일까. 드라마를 보면서 지난 대선 기간 중 선거에 개입해 여론을 조작한 국정원 댓글 사건이 떠오른다. 또 청와대 민정수석에 상대적으로 젊은 검사 출신을 앉히려다 보니 그 여파가 검찰 인사 전체를 뒤흔들었다는 얘기며, 검찰을 멍들게 한 인사의 꼭짓점에 대통령비서실장이 앉아있다는 얘기가 겹쳐지기도 한다. 가까이 국무총리 청문회 파동은 또 어떤가. 대학의 교수 채용이나 언론조차도 마음만 먹으면 멋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권력의 오만과 협잡이 모두 생생한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는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치자. 모든 내용이 극적 재미를 위해 꾸며진 허구라는 말도 봐주기로 하자. 사실 지금도 소름 돋는 드라마 속 가면의 두 얼굴들을 보면서 드라마니까 저렇지 설마 하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권력 가진 자들이 꼭 명심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아직도 ‘누구에게나 법은 하나야’라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을 일삼던 법무부장관 역의 그 말이 진실로 실현되는 세상에 한 번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고증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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