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4일 (수)
전체메뉴

[촉석루] 동백꽃- 성전 스님(남해 염불암 주지)

  • 기사입력 : 2015-03-04 07:00:00
  •   
  • 메인이미지


    쌍계사 선방 올라가는 길에 동백이 피었습니다.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니 반짝이는 잎 속에 붉게 피어난 모습이 매혹적이기까지 했습니다. 흔히들 동백을 청빈한 선비의 기골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내가 만난 동백은 성숙한 여인의 기품이 넘치는 자태였습니다. 여인을 연상하는 동백을 선방 앞에 심은 것은 인생의 무상을 깨치라는 방장 스님의 큰 뜻이 있었기 때문일 터입니다.

    세상의 모든 꽃 중에서 동백은 무상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꽃입니다. 동백은 피어서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지니나 질 때는 그 아름다움을 돌아볼 틈도 없이 떨어져 내립니다. 한 생의 영화의 무상함을 이만큼 보이는 꽃이 또 어디 있을까요.

    선방의 돈오문(頓悟門)을 넘나드는 선객들에게 인생의 무상을 일깨우는 큰 가르침으로 동백은 선방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그 아름답던 꽃이 어느 아침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면 선객들은 무상한 삶에 다시 화두(話頭)를 챙길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꽃이 피는 것은 힘들어도 지는 것은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 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지는 동백을 바라보며 시인 최영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순간에 져버리고 마는 동백은 한 생의 아름다움을 돌아볼 틈조차 없이 그렇게 떨어져 내리고야 맙니다.

    내가 행자 시절을 보낸 나의 출가 본사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무상하고 신속하니 방일하지 말고 힘써 정진하라.” 사는 것은 그렇게 순간의 일입니다. 무상하고 신속한 생사대사를 앞에 두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일은 덧없을 뿐입니다. 그것은 사랑하고 이해해도 모자라는 시간을 낭비하는 어리석은 일이 될 뿐입니다.

    동백이 지듯 우리 역시 때가 되면 사라져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탐욕으로 모았던 그 모든 것들은 하루아침에 먼지로 사라져 갈 뿐입니다. 오늘도 동백의 곁을 지나며 나는 삶의 무상한 소식을 만납니다.

    성전 스님 (남해 염불암 주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