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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단 한 번의 힘

  • 기사입력 : 2015-03-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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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의 스무 살 소녀 ‘카타리나’는 부랑자다. 엄마는 알코올중독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어 그는 남자친구집에 얹혀 지내야 하는 신세다. 카타리나는 시간을 때우던 도서관에서 우연히 모차르트 ‘레퀴엠’을 듣고 감동을 받아 다른 삶을 꿈꾸게 된다. 무작정 찾아간 시내 콘서트홀에서 음악을 몰래 듣다 안내원으로 취직까지 한다. 음악적 지성을 나눠주는 유부남 지휘자에 배신을 당하게 되지만, 단 한 번, 우연히 들었던 음악 덕에 그는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됐다.

    리자 랑세트 감독의 스웨덴 영화 ‘퓨어’ 이야기다. 이 영화는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플래시포워드상을 수상하고, 3년 뒤인 2013년 6월에 다양성 영화로 국내에 뒤늦게 개봉했다. 서울과 부산을 제외하고는 상영관이 없어 2000명 남짓한 사람이 보고 막을 내렸다.

    대학 3학년 때인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봤다. 그전까지만 해도 영화제가 무얼 하는지도 모르다가, 대외활동으로 가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이 좋은 영화와 축제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모인다는 걸 알았다. 접해보지 못했던 희한한 내용과 형식의 영화들도 있다는 것도. 그때 본 영화 한 편 덕에 ‘스웨덴 영화’라는 글자만 봐도 반갑고(올해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주빈국이 스웨덴이다), 카타리나를 연기한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올해 7편의 영화로 한국을 찾으며, 데뷔작 ‘퓨어’ 이후로 영화계를 접수하고 있다는 소식에 기뻐할 거리도 생겼다.

    여전히 영화를 많이 보는 편도 아니고, 잘 모르지만 그때 이후로 독립·예술영화, 영화제에 관심을 가지고, 감독들이 말하려는 여러 가치에 대해 귀를 기울여보게 됐다. 다행히 학교 안팎으로 예술영화전용관이 있었다. 자주 가진 않았지만 언제든 색다르고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데에 안도하며 포스터를 훑고 지나갔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이 끊겨 지난해 문을 닫은 도내 하나뿐인 예술영화전용관, ‘거제아트시네마’가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안도감을 주는 곳이었다. 관람객 수나 티켓수입을 떠나 330만명이 사는 이곳에 적어도 그런 안도감 하나쯤은 허락될 수 있어야 한다. 도민 모두가 영화를 볼 때마다 3%씩 영화발전기금으로 내지만 경남에선 다양한 영화에 노출될 기회가 적다, 아니 거의 없다. ‘몇 명 오지도 않는 거 뭐하러…. 관심 있는 사람 몇이나 된다고?’, 태어날 때부터 독립·예술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얼마나 노출돼 왔냐의 문제다. 그러니까 경남도민들은 더 분노해야 한다. 당장 전용관이 없는 것은 물론, 전용관 하나 지켜내지 못한 것, 또 지금까지 전용관 하나 제대로 두지 않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 것까지 합쳐서. 내게 찾아올지도 모르는 단 한 번의 힘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슬기 문화체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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