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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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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그럼요. 아무 문제없습니다- 이영옥(시인)

  • 기사입력 : 2015-03-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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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든을 넘긴 어머니를 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모신 지 7개월째.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계신다. 엄마가 저만치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들고 있다. 등에 달라붙는 아쉬운 눈길. 돌아볼 수가 없다. 승강기는 현실과 비현실을 가르는 깊은 강 같다.

    어머니는 공간 인지 능력과 단기기억에 문제가 있지만 외모와 신체는 단정하고 건강하다. 신문을 읽고, 적확한 단어를 선택해 조근조근 대화를 이어 갈 때는 치매 환자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어머니의 현재는 찰나에만 존재한다. 매순간을 깨끗이 빨아들이는 블랙홀, 성능 좋은 딜리트 키(delete key)가 머릿속에 내장돼 있는 것 같다. 나와 헤어지고 나면 어느새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 있는 어머니, 문병을 끝내고 집에 막 도착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막내야, 너 오늘 내게 좀 다녀가라.”

    늦겨울 햇살을 받으며 병실 침대에 나란히 앉아 있었던 두 시간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많은 기억들은 흔적도 없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처음 병원에 모셔두고 왔던 날은 죄책감이 컸다. 아이를 버리고 온 비정한 부모가 된 기분이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쁜 치매가 온 어머니는 온순했고, 미래에 대한 기대나 번민이 생겨나지 않아 덜 안타깝다. 만나면 옛날이야기를 한다. 결혼한 다음날 군 입대를 한 아버지와 주고받았던 애틋한 연애편지. 혹은 세 딸을 낳고 기르며 울고 웃었던 에피소드를.

    요즘은 치매에 관한 정보라면 눈이 번쩍 떠진다. 얼마 전 TV에서 3년째 운영한다는 일본의 ‘치매 카페’를 소개했다. 치매가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라 사회 공동의 책임이라는 전제하에 고통을 나누려는 움직임이었다. 자원봉사자와 환자와 그 가족들이 어울려 음식을 만들며 유병(有病) 전의 소소했던 일상생활을 깨우쳐 자신감을 심어 주자는 목적 같았다. 동작이 느리고 서툰 환자 곁에서 도우미가 나긋나긋 속삭이며 안심시킨다. “자, 천천히 하시면 됩니다. 그럼요. 아무 문제없습니다.”

    어머니의 발병 후에 가장 후회되는 점은 초기진단을 놓친 점이다. 단독세대로 지낸 어머니와 일주일에 두서너 번의 전화통화로 이상 징후를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기억력이 특별하게 좋았고 자기관리가 철저했다. 어느 날 깜박하는 수위가 정상범위를 넘어섰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치료시기가 지난 후였다. 침묵의 재앙이라는 치매를 어머니가 직접 겪기 전에는 사전예방이나 조기발견에 대한 중요성을 몰랐고 지식을 습득할 기회도 없었다. 문제에 대한 작은 관심이 행복과 불행을 선택할 수 있었다니.

    자주 찾아뵙고 말동무를 해드리니 어머니는 예전보다 웃음이 많아졌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갑갑함을 자주 호소한다. 치매의 특징인 배회 때문에 잦은 외출은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니 이래저래 답답한 노릇.

    동물과 달리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 그러나 병원에 가보면 노동력이 있는 환자들도 수족관의 물고기처럼 의미 없이 유영한다. 갓난아기로 퇴행하는 과정에도 삶의 질이란 게 있다. 손끝이 야무졌던 어머니는 집에서 직접 상추며 고추 등속을 길러 먹었다. 그래서 텃밭 가꾸는 소일거리를 제공하는 병원은 없는지 찾게 된다.

    병실에 계신 할머니들께 먹을 것을 나눠드리면 “고맙습니다”라며 어린이처럼 인사를 한다. 지금의 우리를 존재케 한 저분들이 흙과, 바람과, 햇살을 만지며 남은 생을 보낼 수는 없을까. 우리나라도 격리가 아닌 소통에 중심을 두어 환자와 가족들이 정서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기대해 본다.

    이영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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