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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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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특이한 이력을 가진 김시탁 시인

저는 미술을 전공한 시인이자
25년간 춘란을 키우고 있는 공인중개사입니다

  • 기사입력 : 2015-03-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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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탁 창원문인협회장이 10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 있는 난실에서 춘란을 살펴보고 있다./전강용 기자/

    넓고 넓은 세상,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별사람 다 있다지만 이 사람만큼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도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 같다.

    미술을 전공하고 장래 촉망받던 화가로서 청운의 꿈을 안고 승승장구하던 젊은이가 느닷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낯선 곳 마산으로 내려와 어시장 생선박스 나르는 일부터 건설현장 잡부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건설회사에 입사해 13년간 아파트 분양 업무를 전담하다가 임원으로 퇴직한 사람.

    퇴직 후 곧바로 경남에서는 최초로 건설컨설팅 법인회사를 만들어 12년간 굴지의 건설회사 아파트 분양을 책임지고 대행한 사람. 모델하우스 33개 관을 오픈하고 전국 아파트 6만여 가구의 분양을 성공해 동종업계에서는 정평이 나 있는 사람.

    어찌 이뿐인가. 시멘트로 지은 집을 분양하는 것이 지겨웠던지, 살아 숨 쉬는 집이 그리웠던지, 시멘트 대신 펜으로, 문학으로 언어의 집을 짓기 시작해서 2001년 ‘문학마을’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단해 3권의 시집을 내며 중견시인으로서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하는 사람.

    경남문인협회 부회장, 경남문학관과 경남시인협회 이사를 맡고 있고 현재까지 3년째 창원문인협회를 이끌어 오고 있는 김시탁(54) 회장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건설회사에 재직 중이던 1980년대 후반부터 건설 붐이 일어나며 전국 아파트시장이 들끓고 있을 때 그는 아파트분양 전문가로서 이름을 날렸다. 특히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주)대성이라는 분양대행사를 만들어 1군의 건설사와 계약을 맺고 대행한 아파트 분양을 모두 100% 조기에 완료하면서 업계는 탄성을 자아냈다고 한다.

    김 시인은 “진해의 포스코 더-샵, 용원의 일신-님, 마산 내서읍의 유로타운(코오롱아파트) 등 대단지 아파트가 성공 분양 신화를 탄생시킨 작품들이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서 더 놀라운 것은 일반인이 선뜻 배양하기 힘든 우리나라 춘란을 25년간이나 재배해 오고 있는 난 전문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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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대한민국자생란협회 마창지회장, (사)경남난연합회 사무총장, 대한민국난등록협회 중앙등록위원을 역임했고 난 고을을 창설해 초대 회장을 역임한 화려한 경력 외에도 그는 난 전문잡지 ‘난과 생활’, ‘난 세계’에도 글을 게재하며 애란인 저변 확대와 우리 난 문화 발전을 위해 기여를 했다.

    김 시인은 “제가 등록시킨 우리나라 우수 품종의 난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지금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 있는 난실에서 우리 춘란 500여 분을 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술을 전공해서 아파트를 분양하고 시를 쓰며 난을 배양하는 사람, 그런데 또 여기서 그의 이력을 하나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그가 공인중개사로서 현직에 몸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신도시로 개발의 가속화가 붙고 있는 북면에서 토지전문 부동산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대성공인중개사사무소의 실질적 대표이다.

    그의 사무실에 들러보면 일단 일반 부동산사무실과는 뭔가 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오랜 경륜과 안목이 만들어낸 전문가다운 면모를 갖춘 그의 내공이 빛을 발하기 때문인 듯싶다.

    이쯤에서 그를 평가하고 결론을 내려야 할 상황인데 한마디로 혼란스럽다. 외형상으로 보면 시골농장에서 참나무 장작이나 패서 군불 지피며 가축을 키우며 살게 생겼는데 시를 쓰는 시인이라니 연결되지 않는다. 말술을 들이켜도 흐트러짐 없으니 정신을 놓고 사는 사람도 아닐 것 같고, 걸걸한 목소리지만 언변이 능하고 재치와 유머까지 겹치니 가볍게 볼 일도 못 될 듯싶다.

    공인중개사로서 그가 북면에 사무실을 낸 것은 3년차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내공으로 인해 확고한 입지를 굳히고 있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평이다. 그는 “차를 타고 가다가도 돈 되는 땅은 손을 번쩍 쳐든다”고 한다. 웬만한 경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난계에서도 명성이 자자해서 ‘회장님’이나 ‘총장님’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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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진면목은 다소 괴팍스럽고 엉뚱하며 장난기가 넘치면서 인간적인 냄새가 풀풀 난다는 점이다. 길 가던 처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 결혼해주지 않으면 마산 앞바다에 빠져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해서 그녀와 결혼해 살고 있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는 분명히 시를 쓰는 시인이다. 난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애란인이다. 정년이 없는 직업을 위해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현직 공인중개사이다.

    지난 1961년 산간 오지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서 찌들어지게 가난한 농부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프면 들마루에 앉아 울다가 떨어진 눈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미술학도가 된 사람.

    혼란한 시국 속에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잡지 못해 날마다 한 양동이씩 절망을 짊어지며 굴욕과 궁핍과 방황으로 점철된 젊음을 ‘탕진’하다가 급기야 붓을 꺾은 사람. 꺾은 붓대로 심장을 찌르지 못해 죄인처럼 낯선 곳에서 낯선 생의 맨살을 끌어안고 처절하게 뒹굴며 깨어지고 부서지면서도 오늘을 살아온 사람. 그 사람은 덩치보다 더 큰 아픔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살아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의 넘치는 감성과 풍부한 상상력과 기상천외한 발상이 그 아픔을 극복하고 그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

    그를 잘 아는 한 지인은 “그와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어 보면 어느새 그의 깊은 눈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걸 느낄 만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며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할 수 없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 있다. 또 할 수 있는 사람과 하고 있는 사람, 기필코 해내는 사람도 있다. 단언컨대 그는 후자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시사철 푸르러 변함없는 난초 같은 사람이다. 또 외형은 떡갈나무 등걸처럼 거칠지만 속은 비단결처럼 부드럽다.

    황소가 여물을 한입에 삼키지 않고 오랫동안 되새김질하며 맛을 음미하다가 삼키듯이 그는 삶을 되새김질하며 넘길 줄 아는 맛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천생 시인이다.

    이종훈 기자 leej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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