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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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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지방에 정치가 있다- 김욱(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5-03-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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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선거 결과가 중앙정치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거나 혹은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돼 있다는 말은 현시대 한국정치와 선거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다. 이 말은 한국 지방자치의 척박한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는 교훈적인 측면에서는 가치가 있으나,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중앙보다는 지방에 정치가 더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방정치를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지방선거 결과의 해석에 있어서 문제이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중앙언론에서 주목하는 것은 어느 정당이 승리했는가의 문제이다. 그런데 정당 간의 승패를 결정하는 거시적인 선거 결과(보통 정당들이 차지한 광역단체장 자리 수)는 각 지역과 지방에서 미시적으로 발생하는 정치과정과 갈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특정 정당이 광역단체장 선거에 승리했다고 하자. 그러나 미시적으로 부산 내 여러 지역 선거 결과를 들여다보면 지역 간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러한 차이는 결코 중앙정치 요인에 의해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거시적인 승패 결과만 보면 모든 지방선거가 중앙정치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각 지역과 지방의 이슈와 요인들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정치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행정 중심 사고가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다. 지방자치와 지방선거가 실시된 지 벌써 20년이 됐는데도 지방자치단체는 주민들에게 보다 좋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면 되지, 무슨 정치와 정당이 필요한가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이러한 행정 중심의 사고는 정치 불신과 결합해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론으로까지 발전했으며, 최근에는 기초의회 폐지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 보면, 정치가 중앙보다 지방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먼저 가정, 학교, 직장을 포함한 그 어떤 작은 규모의 자치 단위에도 이해 갈등과 다양한 생각 간의 충돌은 존재하기 마련인데,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고 구성원 간 이익과 가치를 분배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심지어 단순 행정 서비스인 ‘눈 치우는 일’에도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 중 어느 동네부터 먼저 치울 것인가에 대한 이해 갈등이 있고, 또한 눈을 치우는 과정에서 환경보호를 얼마나 고려할지에 대해서도 보수-진보 간 이념 갈등이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에게 근접한 곳에서 발생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중앙에서의 갈등보다는 지역과 지방에서의 갈등이 유권자에게는 더 중요하다. 실제로 지방자치가 자리 잡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투표행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중앙정치 요인보다는 자신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지역과 지방의 이슈에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서구 민주주의의 국가에 비해 지방 이슈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 사실이나, 그것은 지방분권화가 덜 진행돼 지방의 힘이 아직 중앙에 비해 약함을 방증하는 것이다. 즉 여전히 지역과 지방의 문제를 중앙에서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보통 중앙정치 요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실제로는 지방정치의 합인 경우가 많다.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선거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대통령 지지율을 생각해 보자. 대통령 지지율이란 결국 서울을 포함한 각 지방에서 ‘지방정치 요인을 매개로 해서’ 이뤄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합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앙은 서울이 아니고, 서울을 포함한 각 지방의 합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하원의장을 역임한 오닐(Tip O’Neil)이 남긴 문구인 “모든 정치가 지방에 있다”는 비단 미국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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