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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일기 (2) 내 깡패같은 애인-백수들을 위한 작은 위로

  • 기사입력 : 2015-03-19 07: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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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그룹, 현대자동차, LG유플러스, 이랜드….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순위에 기업명이 오른다. 바야흐로 공채시즌이다.

    취업준비를 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3월, 밖에는 벚꽃이 필 때 자소설(자기소개서·소설의 합성어. 자신의 인생스토리를 지어내야 하는 것을 의미)을 쓰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꽃들이 절정을 이룰 무렵엔 필기시험을 준비했다. 가슴 졸이며 메일함 들락거리기를 몇 번씩 반복하다 보면 꽃이 지고 계절이 바뀌었다. 슬픈 사실은 이 과정이 무한루프라는 점이다. 될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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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세진의 반지하방. 어두운 방에서 노트북과 씨름하는 백수의 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진다.

    서울의 반지하방에 살면서 그 무한루프를 반복했다. 가장 최근에 살았던 방은 볕이 좀 드는 0.5층 정도의 집이었지만 그래도 반지하였다. 서울은 집값이 (많이) 비쌌다. 집을 구할 때 선택 가능한 옵션은 반지하 아니면 옥탑방이었다.

    반지하방에 있으면 해가 떴는지 저물었는지 잘 모른다. 아침에도 어둑하고 대낮에도 어둑하고 밤에도 어둑하다. 단지 밤에는 좀 더 어두워질 뿐이다. 채도는 없고 명도만 있었다.

    취업준비를 하던 시절 내 삶이 그랬다. 서류전형을 넘으면 잠깐 세상이 밝아졌다가 필기시험이나 면접에서 떨어지면 다시 온통 시커멓게 됐다. 끝이 안보였다.

     
    세진도 반지하 인생을 사는 여자다. 그녀는 지방에서 취업에 성공해 상경했지만 회사가 3개월 만에 망하고 만다. 반지하방으로 이사한 그녀는 부모님께는 "회사일이 바쁘니 집에 못간다"며 둘러대고는 매일 같이 입사지원서를 쓴다. 분식집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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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팍팍한 사람이 취업준비생뿐이랴. 삼류 깡패도 사는게 팍팍하긴 마찬가지다. 소일거리로 주점 전단지를 붙이는 동철.

    그녀의 옆방 남자 동철은 '깡패'다. 남의 이삿짐 위에 있는 이력서를 마음대로 보더니 다짜고짜 "너 취직못했냐?"며 반말을 한다. 늘 추리닝에 슬리퍼 차림에다 말끝마다 욕설을 달고 사는 껄렁껄렁한 남자다. 잘나가는 깡패도 아니다. 조직의 형님을 대신해 감옥에도 갔다 왔지만 아무런 보상도 못 받은 찬밥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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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근처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는 세진과 동철. 두 사람은 밥을 먹으며 점점 가까워진다.

    이상하게도 동철은 세진의 취업전선에 관심이 많다. 같이 라면을 먹으며 "사장한테 찾아가서 무릎 꿇고 울면서 빌어봐. 진심을 보여야지"라며 진심어린 조언도 해주고 비오는 날 우산이 없어 면접에 못가고 있는 그녀에게 우산도 사다 준다. 세진은 가장 힘든 시절 도움을 주는 동철에게 점점 의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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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접장에서 '토요일밤에'를 부르며 춤추는 세진. 면접에서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직자의 슬픈 단면.

    영화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취업은 힘들다. 겨우 올라간 면접에서 세진이 손담비의 '토요일밤에'를 부르며 춤추는 수모를 당하는 모습은 영화인 듯 영화 아닌 현실이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반지하방에서 술을 마시며 펑펑 우는 세진의 모습에서 몇 년 전의 내가 보였다.(면접에서 그런 수모를 당한 적은 없지만) 가슴 한 구석이 찡했다.

    나는 뭘 잘못했던 걸까. 공부를 했고 대학에 입학했고 영어점수·인턴·연수 등 각종 스펙들을 쌓았다. 영어점수 5점을 위해서 4만2000원짜리 시험을 몇 번씩 봤고 인턴이란 경력을 위해서 냉장고를 채우는 잔심부름을 했다. 돌이켜 보면 특별히 무엇을 잘못하진 않았다. 나도, 그리고 세진도.

     
    나는 백수라는 꼬리표를 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을 겪으며 깨달았다. 주어진 현실에 자신의 방식대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는 걸. 대졸자가 쏟아지는 것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점점 커지는 것도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나도 친구들도 신문에 나오는 미국이나 프랑스에 있는 청춘들도 '청년실업'이라는 버거운 상황과 씨름하고 있었다. 이전 세대들이 자신이 처했던 시대를 온몸으로 지나왔던 것처럼 나도 이 시대를 그렇게 지나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치거나 힘들 때는 곁에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면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세진이 동철에게 위로 받으며 힘든 시간을 꾸역꾸역 넘겼던 것처럼. 우주의 미물인 주제에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친구와 신세한탄을 하면 갑갑함이 조금은 나아지곤 했다.

    봄이 지나면 누군가는 또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자괴감이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동철의 대사가 작은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야, 너 취직 안된다고 너 욕하고 그러지마. 니 탓이 아니니까. 당당하게 살어. 힘내 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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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영화소개>

    2010년 개봉된 김광식 감독의 영화. 감독은 제작노트서 취업을 못해 괴로워하는 대학 동기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혔다. 별다른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 깡패와 취업준비 중인 백수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만든 박중훈과 정유미의 연기가 볼거리. 두사람의 케미(남녀 주인공이 서로 어울리는 정도)도 좋다.


    특히 박중훈의 깡패 연기는 영화의 백미. 쭈구리같지만 인정 많은 '착한 깡패'가 왠지 모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깡패의 필수 옵션인 찰진 욕설은 보너스.

    김세정 기자 (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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