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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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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삶, 놓치고 싶지 않은- 황시은(시인)

  • 기사입력 : 2015-03-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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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등에 불이 들어 왔다. 신나게 달리던 우리의 삶도 잠깐 쉬어가라며 붉은 신호등이 방긋 웃는다. 이렇게 잠깐 멈춰서면 되는 것이다. 좌절된 순간이 기쁨의 시작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곧 초록 등이 밝혀진다는 것을 믿는 이유는 나의 삶에 대한 꿈과 꿈의 실현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니, 아는 길도 걷다가 넘어지고 무릎이 깨어지고 피까지 철철 흘릴 때가 있었다. 쏟아지는 게으름을 내리치며 매입한, 애지중지하던 나의 소유물에 압류딱지가 붙는 날도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일등급 인생에 붙여주는 품질인정마크라고 위로하며 견뎌 왔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나의 젊은 삶이었다. 한 번 넘어졌지만 반드시 힘차게 일어서고 말리라. 나는 내 삶을 사랑하고 신뢰했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반생 외길을 잃고 고향으로 가겠다는 우리 부부에게 누군가가 말했다. 혼자만 가느냐고.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됐다.

    참된 삶이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 만큼 보인다던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은 누구나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꿈은 있는 것이다. 그 꿈을 가슴속에만 간직하며 설렘과 두려움으로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광고에서 이랬다.

    “여러분 꿈 자를 너무 오랫동안 가슴속에 두지 마십시오. 바로 현실화시켜 버리세요.”

    사람은 누구나 99%의 노력을 다하고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남겨진 1%의 노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 삶의 나이테 수가 늘어날수록 나 스스로 조금씩 변화되어짐을 느끼게 된다. 남과 나의 다름에 대해 오래 고민하지 않게 된다. 다툼은 삭은 낙엽이 되고, 양보는 가을배추처럼 속이 노랗게 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오늘은 잿빛 하늘 아래 비닐하우스가 대지의 부레처럼 누워 있다. 살기 위해 호흡하고 지쳐도 남은 힘을 다해 물속을 헤쳐 나아가야 하는 것이 생이다. 불혹의 마지막 해를 맞아 내 생의 길을 헤엄치는데, 잊고 있던 책 한 권이 나를 툭 쳤다. 나폴레온 힐의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이다. 살아온 과거가 예습이었다면 남은 나의 미래는 현재가 될 것이다. 이것이 곧 나의 꿈이고 내가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인생인 것이다.

    문득 손전화기가 강한 진동음을 발신한다. 벗이다.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Gracias A La Vida)’, 메르세데스 소사 님의 노래를 함께 듣자는 청이다. 온통 하늘빛이 회색이라며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가 내가 생각나더란다. 얼른 일어나 예가체프 한 잔을 드립으로 내려온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흘러내리는 액체가 자아내는 향기는 나를 마술의 세계로 들게 한다.

    ‘페로 (Pero)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Gracias A La Vida) : 삶에 감사하다.’

    나는 이렇게 벗에게 답장을 날렸다.

    황시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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