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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기자, 고운맘 되다 (3) 입덧을 버티는 방법

  • 기사입력 : 2015-03-20 10: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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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시작은 칫솔질을 할 때였다. 느닷없이 칫솔이 거북스러웠다. 칫솔을 입 안에만 넣으면 역겨운 것이 내 입을 가득 채운 것 같았고, 이 증상은 수 차례 새 칫솔을 바꿔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세 번 양치질이 내겐 숨을 참고 단시간에 해내야만 하는 고된 행위가 됐다. 그러나 이것은 입덧을 알리는 신호에 불과했다.

     
    다음은 냄새였다. 냉장고와 음식냄새는 물론 집안 곳곳에서 냄새가 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코는 점점 예민해져서 사람들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사람이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그에게 쌓여있던 복합적인 냄새(땀, 입, 발, 머리, 음식)가 코를 자극했고, 보이지 않는 냄새로 세상이 가득 찼다. 냄새는 늘 나를 메스꺼움이라는 증상으로 괴롭혔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 '향수'의 주인공이 새삼 측은했다. 나는 그처럼 단 향이 나는 과일, 순한 향기에 집착했다.

     
    힘겨웠지만 이때까지는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입덧이 '아기가 건강하게 있는 신호'라고 했던 의사의 말을 떠올리면 참을 만했다. 그의 말처럼 아기는 건강했고, 앞선 유산시기였던 9주를 무사히 넘겼다.

     
    입덧의 진짜 얼굴은 마지막에 나타났다. 한마디로 나는 '자동 구토인(人)'이 됐다. 먹는 족족 구토를 했다. 입으로 음식을 섭취하고 1~2분이 지나면 역류해서 다시 입으로 나오는 식이었다. 심지어 나는 음식의 '구토맛'을 감별할 수 있었다. 그나마 맛이 나은 것이 시원한 과일류여서 늘 수박을 끼고 다녔다.

     
    2주 만에 7kg이 빠졌다. 입덧에 좋다는 입덧 사탕을 먹고, 입덧 팔찌도 샀지만 효과가 없었다. 산부인과를 찾아 수액까지 맞았다. 회사 생활은 물론 일상 생활도 정상일 수가 없었다. 나는 뱃속의 아기와 함께 큰 아기가 된 듯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살피는 보호자 역할을 해야만 했다. 늘 냄새가 나지 않는 환경을 위해 애썼고, 나를 대신해 늘 음식을 냉장고에서 내어 오고, 음식을 정돈(냄새가 나지 않게)해서 침실로 가져왔다. 가끔씩 '임산부 놀이'(새벽에 갑자기 뭔가 먹고 싶은, 입덧의 대표 증상)로 각종 셔틀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늦봄, 복숭아가 먹고 싶다는 산모를 위해 마트에서 1개 2만 원 짜리 복숭아를 사던 그는 계산대 직원에게 "이거 2000원 아닌데요, 왠만하면 다음에 드시죠"라는 조언도 들어야 했다. 그도 그렇게 다른 형태의 입덧시기를 보냈다.

     
    병원에 물어봐도 답이 없었다. 입덧 또한 유산처럼 명확한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21세기에도 규명할 수 없는 증상이 이렇게 많다니, 엄마의 몸은 어쩌면 이토록 신비한 걸까. 답답함에 뒤적거리던 책에서 읽은 '아기 기관형성 기간 동안 독성을 막기 위해 입덧을 한다'는 문구가 그나마 위안이 됐다.


    초음파 사진
    초음파 사진


    그리고 정말 그 글처럼 내가 구토를 반복하는 동안 아기는 눈과 코가 생겼다. 초음파 사진에서 본 아기는 5cm로, 곰돌이 모양이었다. 산모수첩에는 '제법 사람의 모습에 가까워, 손가락과 발가락 형태가 생기고 손발을 움직인다. 소변도 눈다'고 적혀 있었다.

     
    태명을 뒤늦게 정했다. '딱지'. 내 자궁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 있으란 뜻이었다. 그때는 그렇게만 된다면 입덧 따위는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또 다시 그 시기를 겪을 수 있겠느냐 묻는다면? 자신이 없다. 버티는 것밖에 답이 없는 일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으니까.

     
    <*고운맘의 다음 회에는 기형아검사에서 위험판정을 받은 아기를 두고 벌어진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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