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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알아주는 대장장이' 합천 이복상씨

“힘든데 왜 대장 하냐고? 사람들이 내 물건 찾으니까”

  • 기사입력 : 2015-03-2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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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군 삼가면 삼가대장간 대장장이 이복상씨.


    그의 손에 잡힌 쇠는 힘을 못 썼다. 그의 망치 앞에서 낫이 되고, 괭이가 되고, 호미가 됐다. 50년에 육박하는 세월의 내공 앞에 쇠는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펴지고 했다. 합천군 삼가면 삼가대장간 대장장이 이복상(64)씨. 공부가 싫어 아버지를 따라 배운 게 대장간 일이다. 올해로 47년째. 까까머리 소년은 어느덧 초로(初老)가 됐다. 인생무상이지만, 긴 세월 여전히 변함없이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대장간은 점점 사라져 이제 경남에서도 몇 안 남았다.


    ◆탕탕탕…쇠붙이가 낫으로

    쇠를 맘대로 주무르는 ‘달인’의 기술을 제대로 보려면 장날을 택해야 한다. 삼가장은 5일장이라 2일, 7일에 열린다. 지난 17일 삼가장날, 이씨의 대장간을 찾았다. 삼가면 중앙길 삼가면사무소 인근에 있는 삼가대장간은 시끌벅적했다. 장꾼들이 물건을 주문하고, 고르고, 흥정한다.

    이씨는 취재진을 알아보고 반갑게 맞는다. 배달 나온 다방커피도 즐길 수 있었다.

    기계로 대량 제작하고, 중국 수입산이 넘치면서 옛날식 대장간은 시골장에서도 거의 볼 수 없다.

    대장간은 30㎡ 남짓 될까. 앞쪽에는 그가 만든 농기구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괭이, 낫, 호미, 쇠스랑, 도끼, 정, 깎기망치, 약초괭이…. 옆에는 자루용 나무들, 농기구를 만들 강철 소재, 안쪽에는 그의 작업장이다. 한쪽으로 풀무와 화로, 메가 있고, 가운데에는 모루, 담금질용 구유가 있다. 이 외에도 쇠를 자르는 커터기, 날을 세우는 연마기도 보인다.

    마침 대나무를 찍을 낫 두 가락을 특별 주문한 사람이 있었다. 보통 낫과 달리 칼날의 길이가 약간 짧고 손잡이는 나무 대신 고무를 둘러 쓸 수 있는 형태다. 이씨는 낫을 만들 길이만큼 강철을 잘라 화로에 넣었다. 쇠붙이가 벌겋게 달아오르자 집게로 집어내 모루에 올렸다. 한쪽을 집게로 잡고 망치질을 해댔다. 둥근 강철마디는 장인의 손에서 납작해지고 하고 늘어지기도 하고, 네모지기도 했다. 길게 늘여 휘어서 날 부분과 손잡이 부분을 만든다. 이어 쇠메로 옮겨 한쪽 발로 속도와 강도를 조절하면서 메질을 했다. 날이 만들어졌다. 다시 화로에 넣어 쇠를 달구고, 망치질과 메질로 낫의 형태가 잡혔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물이 있는 구유에 넣어 담금질을 했다. 제사장이 신성한 의식을 행하듯, 그의 작업은 진지했다. 1시간 남짓 걸려 드디어 낫 두 가락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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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 삼가대장간 이복상 대장장이가 낫을 만들기 위해 화덕에 넣은 쇠가 벌겋게 달궈지자 쇠를 꺼내고 있다.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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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 삼가대장간 이복상 대장장이가 낫을 만들기 위해 화덕에 넣은 쇠가 벌겋게 달궈지자 쇠를 꺼내 보루에 올려 망치로 두드리고 있다.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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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 삼가대장간 이복상 대장장이가 낫을 만들기 위해 화덕에 넣은 쇠가 벌겋게 달궈지자 쇠를 꺼내 보루에 올려 망치로 두드린 후 물에 담금질한 낫을 살펴보고 있다./김승권 기자/

    ◆서부경남서 알아주는 달인

    이씨는 17살 때부터 대장일을 했다. “아버지가 산청에서 대장간을 했어요. 아버지는 왜정시대(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한테 기술을 배웠어요. 공부도 하기 싫고 해서 아버지 따라다니면서 기술이나 배우자며 시작했지요.”

    선반 한쪽에 올려둔 나무 구유를 가리킨다. “저게 아버지가 담금질할 때 쓰던 구유인데 100년은 됐을 겁니다. 골동품이라고 팔라고 하는데 안 팔았습니다.” 부친의 일생이 담긴 유물이라 처분하기가 싫었던 모양이다.

    요즘은 농사일을 시작하는 철이라 이씨 가게는 농기구를 구입하려는 손님들로 분주했다. 무뎌진 괭잇날을 세워달라는 사람, 도끼자루를 사러 온 사람, 호미를 고르는 할머니 등등. 감나무 껍질을 벗기는 기구는 동이 났다. 시골 장터지만 오전 내내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농번기니까. 딱 지금 한철입니다. 괭이 하나 사가면 안 잃어버리면 평생 씁니다. 이 근방에서 대장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진주, 산청, 합천, 거창, 의령에서 찾아옵니다.”

    그의 말대로 의령에서 물어물어 왔다는 손님은 물건을 몇 개씩 사고, 전화번호까지 챙겨갔다.

    부친은 산청군 신등면에서, 자신은 합천군 삼가면에서 자리를 잡고 일했다. “이 일이 쉽지 않아요. 힘은 들고, 돈은 안 되고….” 소매를 걷어 올려 팔뚝을 보여주는데 온통 빨간 반점이다. 더울 때 러닝셔츠만 입고 일하다 불티로 덴 자국이란다.

    “괭이 하루 10개 정도 만들고 나면 몸살이 납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저기 자꾸 아픕니다. 힘이 들어서 물건을 많이 못 만드니 헛걸음하는 손님들이 있네요. 내 손으로 만든 것은 비싸도 알아줍니다.”

    철물점 가면 괭이 하나에 1만5000원이지만 여기서는 4만~5만원 받는다. 중국산과는 질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찾으니 해야죠”

    좋은 기술인데 배울 사람이 없어 사라진다고, 옆에 있던 사람이 말을 거든다. 이씨는 “이것 갖고는 생활이 안 돼. 처음에는 밥 먹고 살았는데…. 쇠 다루는 게 힘들고 배우기도 어렵고. 우리 아들은 근처에도 안 와요.”

    아들과 딸은 고령에서 식당을 한다고 했다.

    “합천군에서 인간문화재(아마 기능보유자) 등록하라는데 안 했어. 집도 새로 지어주고 한다는데 안 했어.” “왜 해보시지요. 아이들 체험활동도 하고 그러던데요.” “군에서 오라 가라 하는 게 싫어서.”

    돈벌이도 안 되는데 왜 하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니까.” 사람 좋은 그는 씨익 웃는다.

    자신의 물건을 찾는 사람이 있는 한 이씨는 그곳에서 변함없이 대장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전통이라는 이름을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기자가 퇴직할 때까지 삼가대장간이 그곳에 있을지 모르겠다.

    이학수 기자 leehs@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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