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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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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문화기획] '봄'하면 생각나는 글

"봄"하면 생각나는 문학작품, 무엇인가요?

  • 기사입력 : 2015-03-2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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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이 연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소설가 김연수는 자신의 단편소설에서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때를 ‘벚꽃새해’라고 했다.

    한 해에 한 번 맞는 또 다른 새해. 새해 계획세우기가 달력새해의 의무라면, 창밖만 내다봐도 누구나 시인이 될 것 같은 이 계절의 새해에는 무언가를 읽는 것이 숙제다.

    꽃나들이에서 친구들과 돌아가며 소리내 읽거나, 봄밤 혼자 몰래 앉아 입술을 달싹여도 좋겠고, 읽고 나선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며 쓰는 편지 한 줄 끝에 달아도 좋겠다.

    어느 누구보다도 온몸으로 봄을 감지하고 있을 도내 작가들에 물었다. 봄을 생각하면 어떤 글들이 떠오르냐고. 당신에게 봄은 어떻게 찾아왔냐고. /이슬기 기자/


    [시]

    - 저 나비

    때로 버려지는 아픔이여 때로 노래하는 즐거움이여

    때로 오오하는 것들이여 아아 우우 하는 것들이여

    한 세계를 짊어진 여린 것들의 기쁨이여

    그 기쁨의 몸이 경계를 허물며 너울거릴 때 때로 버려지는

    아픔과 때로 노래하는 즐거움의 환호 그 환호의 여림

    때로 아아 오오 우우 그런 비명들이 짊어진 세계여

    때로 아련함이여

    노곤한 몸이 짊어지고 가는 마음

    -허수경,『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 지성사(1992)


    꽃인 듯 나비인 듯 세상이 너울거려요. 꽃이 피는 건, 나비가 날아다니는 건 “오오”하는 것 같고 “아아 우우”하는 것 같고 모든 것은 그렇게 리듬을 타고 왔어요. 설렘과 사랑과 이별과 고통도 어떤 리듬을 타고 내게 왔겠지요. 봄날의 햇살을 타고 왔겠지요. 빛인 듯 그렇게 와서 빛인 듯 그렇게 사라져 갔겠지요. 혼몽한 세상에 “노곤한 몸이 짊어지고 가는 마음”은 그래요. ‘마음’은 병들거나 늙지 않아 더 아픕니다. 내 마음을 저 봄이 다 감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밉습니다. “기쁨의 몸이 경계를 허물며 너울거릴 때 때로 버려지는” 것이야말로 깊은 고통이지요. 저 여린 꽃들의 어깨가, 저 아름다운 나비의 입술이 우리의 생을 부축하고 가는군요. 짊어지고 가는군요. 그 모습이 아련하고 멀기만 합니다. 우리가 함께 한 열락의 순간들에 대해서. 당신은 이렇게 중얼거리곤 하겠지요. 언젠가 꽃냄새였던가, 나비였던가. “저 나비”가 날아와 잠시 내 심장에 머물다 갑니다. 나비의 발자국이 선명합니다. 노곤하고 혼몽한 이 봄날에. 박서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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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서영(시인)


    -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雪)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 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헤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 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최승자,『이 時代의 사랑』문학과 지성사(1981)

    ‘네가 왔으면 좋겠다/ 나는 치명적이다.’를 쓴 이가 아니던가. 일 년에 한두 번 서울에서 시인 나부랭이들을 만날 때마다, 시인들의 시인, 최승자 시인을 서로 얘기하지 않았던가. 청파동은 숙대가 있는 서울역 뒤편 동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모습 그대로일 것 같은 골목과 가게와 부러진 의자들. 허름한 술집들 사이에 시인은 또 이런 얘기를 남겼다.

    시인의 전언처럼 먼 곳에서 너는 웃지 않고 라일락은 귀신처럼 피어나는 봄이 왔고 우리는 다시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 속을 떠돌고 있다. 청파동을 기억하는가라고 시인이 묻듯이 우리는 세월호를 기억하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봄을 맞았다. 가장 좋은 기억은 기록이라 했다. 우리는 이런 질문들에 대답해보자. 진짜를 만나면 늘 부끄럽다. 가짜들은 이제 그만! 진짜야 나와라. 봄이다. 꽃잎들에 사무치는 봄이다. 성윤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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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윤석(시인)



    [수필]

    꽃나무를 키울 때 그곳에 바치는 마음과 노동, 시간, 물질은 여간 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생명의 탄생을 위해. 아름다움을 위해 주고받는 일은 신과의 대화인 것이다. 우주와의 대화인 것이다. 자연과 나와 일치를 이루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움이 아닌가. 아프고, 기쁘고, 걱정하며 얼마나 긴 세월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러나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자유스러우며 해방되는 길이다. 비록 시들고 말라버려 죽는다 해도 그 아픔은 잠시 곧장 잊어버리게 된다. 진정 꽃을 키우고 나무를 키운다는 것은 자기를 키우고 가꾸는 길이다. 자기가 키운 꽃이 활짝 피어오를 때 그 아름다움에 취하는 순간은 인간으로 태어난 감사가 용솟음친다. 봄은 꽃으로 산다.

    -서인숙『생명의 소리』일부


    겨울이 지나는 길목에서 봄바람도 아닌 부드러운 바람결에서 나는 봄을 예감한다.

    봄은 무수한 생명들이 새로움을 향해 새로운 세상을 향하듯 언 땅을 헤치고 새순들이 솟아오르는 신비에 봄을 예찬한다. 화려한 꽃들의 색색이며 그 모습에서 예술가들의 영감이 요동친다. 화가는 붓을 들고 시인은 마음을 들고 빈 들녘을 향해 달려가는 나그네의 길이 있다.이미 활짝 핀 꽃에서 이별이란 허무 같은 것이 아름다움 뒤에 오는 슬픔, 이미 가을의 문턱에 서게 된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오가면서 사람은 세월의 흐름을 타고 어딘지 모를 약속된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을 생각한다. 꽃은 피었다 시들고 인생도 피었다 시드는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봄 한가운데서 느끼고 생각한다. 서인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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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인숙(수필가)


    [소설]

    “열흘 전, 실로 7년 만에 당신과 해후했을 때 당신은 내게 벚꽃 얘기를 하셨습니다. 4월 말쯤 벚꽃이 피면 그때 다시 만나자고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때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남으로 내려가 벚꽃을 몰고 등고선을 따라 죽 북향할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개화 남쪽 지점을 당신의 고향으로 정한 것입니다. 이곳 선운사는 10년 전에 우리가 처음 인연을 맺은 곳이 아닙니까.”

    -윤대녕, 단편소설『상춘곡』중에서


    봄이 오면 다시 윤대녕의 <상춘곡>이 생각나는 것은, 소설 안에 어린 연둣빛 때문이다. 아직 현실적인 색이 되기 전, 먼 곳과 같은 빛. 상춘곡의 나날을 짚어보면, 아마도 봄피안 기간일 것이다. 봄피안은 춘분 전후 일주일씩 보름 동안이다. 나는 생일이 이 기간에 들어 있어 봄피안의 공기에 익숙하다. 다른 사람도 생일 기간이면 그럴까? 이때 내 몸 안의 공기는 바깥의 공기와 같아지며 자연과의 혼연일체를 경험하게 된다. 나는 세상으로 흘러나가고, 세상은 내 안으로 흘러들어와 지내고, 그래서 봄피안은 내가 한 해를 사는 비밀스러운 힘이 된다. 하지만 연둣빛 속에서 이룬 인연은 현실에는 가닿을 자리가 없을 것이다.

    윤대녕의 소설을 읽으면, 마음의 가시가 빠져나가며 고즈넉해진다. 있지도 않은 긴 머리카락을 깨끗이 씻어 살이 조밀한 향나무 빚으로 빗어 말리는 느낌이다. 전경린(소설가)

    메인이미지전경린(소설가)




    [시조]

    모란

    피면 지리라

    지면 잊으리라

    눈 감고 길어 올리는 그대 만장 그리움의 강

    져서도 잊혀지지 않는

    내 영혼의

    자줏빛 상처.

    -이우걸,『주민등록증』고요아침(2013)


    모란은 왜 자줏빛인가.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고 벚꽃처럼 화들짝 피었다 지지 않는다. 지면 잊으리라 다짐하지만 잊히지 않는 그대는 화인처럼 선명히 남아 있다. 그럴수록 상처는 더 깊어지고 그리움은 만장 강물처럼 흘러간다. 하고 많은 꽃 중에서 왜 하필이면 모란을 보며 그 대상을 떠올렸을까.

    아직 모란이 피기엔 이르다. 그런데도 봄이면 이 시가 생각난다. 사실 모란은 부귀영화를 뜻하는 꽃이기에 외로움, 상실 등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꽃잎은 소담스럽고 유난히 꿀벌도 많이 찾는다. 그런데 나는 왜 처연한 느낌이 먼저 드는가. 이 작품은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오버랩되면서 어쩔 수 없이 ‘만장 그리움’의 강물만 흘려보내는 애달픔이 있다. 시는 때로 풍요를 결핍으로 느끼게도 한다. 시인은 결국 독자를 문제적 인간으로 만든다. 이달균(시인)

    메인이미지이달균(시인)



    [동화]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 싹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어요. 향긋한 꽃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어요.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어요.

    -권정생, 『강아지똥』길벗(1996) 일부


    봄 햇살이 맑은 날, 사진기를 들고 나섰다. 손톱보다 작은 별꽃, 냉이꽃, 큰개불알풀꽃을 찍으려고 몸을 낮추었다. 그러다 줄기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민들레와 눈이 딱 마주쳤다.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 ‘강아지똥’이 떠올랐다.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만 여기던 강아지똥. 봄비가 내린 날 강아지똥은 새파란 민들레 싹을 만났다.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 거름이 필요하단 말에 강아지똥은 온 몸을 녹여 민들레를 껴안았다.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으로 민들레꽃이 노랗게 피어났다.

    겨울을 이기고 봄을 피우는 작은 풀꽃이 희망이라면, 꽃을 위해 스러지는 강아지똥의 마음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랑이 시작되고 봄이 온다. 자신을 미물과 똑같다고 말씀하신 권정생 선생님의 삶도 강아지똥과 비슷할 것이다.

    나는 벌레처럼 흙 위에 엎드려 봄을 담았다. 찰칵! 강아지똥이 노랗게 피어났다. 김문주(아동문학가)

    메인이미지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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