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8일 (목)
전체메뉴

[사람속으로] 유기견·길고양이 40마리 돌보는 올드미스 약사 조현주씨

제가 결혼한 제 인생의 동반자들을 소개합니다

  • 기사입력 : 2015-04-08 22:00:00
  •   
  • 메인이미지
    집 앞 마당까지 저(조현주)를 마중 나온 별난이 ‘무량이’를 업으니 절로 웃음이 납니다.

    짱아야! 화엄아! 깜이야! 무량아!

    누구를 부르는 거냐고요?, 바로 제 새끼(유기견·유기묘)들입니다. 얘네들 말고도 보리, 별이, 보현이, 모모 등…, 이름을 다 부를 수가 없네요.

    하얀 털로 뒤덮인 화엄이는 약국을 지키는 제 보디가드 겸 약국의 마스코트예요. 얼마나 사람들이 좋아하는데요. 인기 짱이에요.

    저는 통영시 동호동에서 조그마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조현주(48)랍니다.

    메인이미지
    병으로 앞 못보는 불쌍한 ‘짱아’에요.

    유기견·유기묘(고양이), 길고양이들이 좋아 얘네들과 결혼한 Old Miss 조. 어릴 때 다친 후유증으로 약간의 장애가 있지만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어요. 제가 어릴 때 좀 별났나 봐요. 걸음도 걷기 전에 밥상에 올라가 춤을 추다가 밥상이 엎어지면서 다쳤대요. 시기를 놓쳐 수술도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 했지만 이게 저의 인생 진로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죠.

    집안은 다복했지만 넉넉하지는 못했어요. 어머니는 제가 30대 중반 대학에서 다시 약학공부를 할 무렵인 지난 2001년 뇌출혈로 쓰러지셨어요. 이후 치매 증세를 보이시다 2009년 돌아가셨고요.

    강아지와의 첫 만남은 통영 장날에 1만원을 주고 사온 것이 계기가 됐어요. 어릴 때부터 제가 동물을 좋아한 것도 있지만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너무 심심해하셔서 강아지 한 마리를 사다 드렸는데 정말 아이처럼 좋아했어요. 아마도 말동무가 없으셨던 어머니는 강아지를 친구로 여기셨나 봅니다. 저는 지금 유기견 8마리와 유기고양이 3마리, 동네 길고양이를 키우는 엄마로 변신했어요.

    메인이미지
    우리 약국 마스코트 ‘화엄이’, 인기 짱이죠.

    ◆유기견과의 만남

    별난이 ‘무량이’와의 첫 만남은 아주 특별해요. 제가 유기견을 키우게 된 계기가 됐죠. 2011년 겨울 무렵. 점심식사 후 환기를 위해 문을 여는데 시꺼먼 강아지 한 마리가 뛰어들어 왔어요. 피부병이 걸렸는지 엉망이었는데 언뜻 보기에도 도망 나온 강아지 같았어요. 일단 동물병원에 치료를 맡긴 후 주인을 찾았는데 사연이 있더라고요. 무량이는 낯선 사람이나 오토바이만 지나가도 격렬하게 반응해요. 아마도 마음에 상처가 아직 남아 있나 봐요. 무량이 눈빛이 너무 마음에 걸려 제가 키우겠다고 결심했죠.

    ‘짱아’는 평소 알고 지내던 언니가 데려 왔어요. 정육점에서 키우던 강아지인데 주인이 동물병원에 맡기고 그냥 가버렸대요. 심장사상충과 당뇨에 걸린 강아지는 눈까지 실명해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였죠. 너무 안타까워 제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인슐린 주사도 놓고, 영양제를 먹였어요. 사료도 채소·과일 등을 쪄서 간 후 닭가슴살, 생선 등을 삶아 만든 것과 함께 섞어 잡곡밥과 먹였어요. 앞을 볼 수 없는 짱아는 소변을 아무 곳에나 보고 다녀 일이 많아요.

    그리고 우리 약국 마스코트 ‘화엄이’는 약국 앞 병원에 근무하시는 의사선생님이 인근 공원에서 발견했어요. 발견 당시 화엄이는 몸을 가누지 못했대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화엄이를 처음 봤을 때 오른발을 내 손에 턱 올려놓는 거예요. 손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게 눈에 아른거려 잊히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집으로 데려왔죠. 고기 삶아 먹이고 영양보충도 시키고 동물병원에 데려가 치료도 했죠. 피부병, 귓병, 심장사상충 등 치료비만 대략 40만원이 나왔어요. 유기견이라 이 정도지, 일반견일 경우 치료비가 100만원이 넘는대요.

    메인이미지
    열심히 먹이를 먹고 있는 길고양이예요.

    ◆유기고양이와 인연

    2009년 겨울. 약국 일을 마치고 퇴근하려는데 고양이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어요. 인근 신축건물 3층에서 창문을 보고 울고 있는 ‘보리’를 발견했죠. 날씨가 너무 추워 일단 안고 집으로 데려와 키운 지 벌써 7년이 된 것 같아요.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별이’는 아주 어린 새끼였는데 병원에서 치료 후 약국에서 키웠어요. 그런데 사람을 너무 무서워해 구석에 박혀 나오질 않는 거예요. 밥만 주고 퇴근하기를 3년, 밤에 고양이 울음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주위에서 민원이 들어왔죠. 어렵게 별이를 잡아 중성화 수술을 시켜 집에 데려다 놨더니 요즘은 제 머리 맡에서 잠을 자요. 이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나 봐요. 정말 다행이죠.

    앞다리가 부러진 채 도로에서 비를 맞고 있던 ‘보현이’는 주민의 신고로 데려왔어요. 이젠 완치가 됐지만 보현이는 사람을 많이 무서워해요. 집에 데려다 놓았더니 열린 창문 틈으로 달아나 마당 어딘가에서 살아요. 먹이 줄 때만 나타나는데 최근엔 가족을 이뤘는지 새끼들과 함께 먹이를 먹고 가요.

    ‘모모’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버리고 갔어요. 그래서 제가 집에서 키우고 있는데 고양이 특유의 영역표시가 심해 다른 집에 분양을 할 수가 없었어요.

    메인이미지
    저를 기다리는 모모(오른쪽)와 길고양이.

    ◆길고양이와의 만남

    길고양이 먹이주기는 2007년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새벽 예불을 위해 절에 가는데 고양이 새끼 3마리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더라고요. 차에 보관 중이던 먹이를 줬는데, 이후로 계속 먹이를 준 것 같아요. 7년여 동안 이틀 정도 빼먹은 거 같아요. 지금은 길고양이 먹이 주는 장소가 6곳으로 늘었어요. 이젠 길고양이들이 먼저 저를 알아보고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대충 40마리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주로 먹이는 퇴근 무렵인 오후 7시 30분에서 오후 8시 사이(겨울)에 주고, 여름엔 밤 9시쯤 인근을 돌면서 줘요. 사료는 한 달에 대략 100㎏ 정도, 캔 (고양이 먹이)은 600개 정도 나눠 주는데 주위에서 가끔 유기견과 유기고양이, 길고양이 먹이값으로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것 아니냐고 물어요. 근데 전 결혼을 안 했으니 자식을 키우는 데 드는 비용과 시댁에 들어갈 비용이 전혀 없잖아요. 그리고 비싼 가방이나 옷을 많이 사지 않으니 그럭저럭 버틸 만해요. 제 새끼들 챙기는 건데 당연한 것 아닌가요.

    메인이미지
    여기저기 자리 깔고 누워 잠을 자는 제 새끼들입니다.

    오늘도 퇴근해 집에 가면 무량이와 많은 새끼들이 저를 반겨줄 텐데요…, 이게 또 다른 삶을 사는 제 보람 아닐까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거예요. 사람이나 동물이나, 조금의 수고로움이 귀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글·사진= 이준희 기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준희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