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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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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뉴월- 박철

  • 기사입력 : 2015-04-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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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부는 비위가 약한 분이었다

    69년인가 사람이 달나라에 갔다고 요란들일 때

    마치 요즘 손전화 들고 다니는 거 못 보는 이처럼

    쾅하고 미닫이문에 찬바람 일으키며

    저 광활한 우주에 비하면 달나라는 자부동 안이다

    그깐 거 좀 갔다고

    아마 조부는 당신이 노닐던 땅뙈기 잃은 양 싶었는지

    며칠 더 오뉴월 고뿔에 시달렸는데

    오늘 보길도 동백숲 사잇길을 지나다

    몽돌 위에 쏟아지는 별들 보며

    나 또한 뭔가 우루루 잃어버리는 설움에

    바닷물 휙 걸어 잠그고 돌아눕는 오뉴월

    ☞오뉴월 감기는 마음의 감기이다. 마음의 안쪽에서부터 추워지기 시작해 바깥 기온과 부조화를 이루고 어찌 어떻게 이겨볼 길 없는 바깥의 힘에 대해 마침내 제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하는 속앓이.

    새것이 각광을 받으며 등장할 때 마음이 불편한 것은 새것이 싫어서라기보다, 이전의 것에 대한 애정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것의 가치를 열렬히 신뢰하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새것에 열광하는 모습은 그래서 비위가 상하고 기존 것의 자리를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쾅! 미닫이문을 닫는 방어자세를 부른다. 그깟 달나라까지의 거리는 방석 안의 거리에 불과하다는 비꼼이 그것이다.

    그런 불편한 심기를 가졌던 조부를 닮은 시인. 보길도 동백숲, 반짝이는 몽돌, 몽돌에 반사되는 별빛. 그것의 무한한 가치를 느낄 때 시인 또한 문득 두려워진다. 서러워진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이 가치들이 다른 가치들에 의해 밀려날 것에 대한 것이요, 서러움이란 그 가치를 알면서도 그것을 지켜낼 힘이 자신에게 없음을 알 때 느끼는 그것이다. 소극적 방어자세로 바닷물을 걸어 잠그고 돌아눕는 것, 오뉴월 감기가 시인에게 시작됐다. 한참은 앓아야 할 듯하다. 조예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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