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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기자, 고운맘 되다 (6) 출산법을 고민하다

  • 기사입력 : 2015-04-10 09: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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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일 손목이 시렸다.

    컵 하나를 잡는 데도 손목 보호대가 있어야 힘을 줄 수 있었다.

    병원에서는 산모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임신 말기에 몸의 저항력이 떨어지면서 평소 약했던 부위에 더 통증이 많이 느껴질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누군가는 허리가, 누군가는 발목이, 누군가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해결책은 출산이었다. 입덧처럼 견디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다.

    배가 솟아 올라서 발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된 후부터는 내 몸이 더욱 낯설어졌다.

    매끈했던 배가 잔털로 뒤덮였고, 짙은 갈색의 임신선과 붉은 흉터들이 생겨났다. 아기를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몸의 변화들이었다.

    또 아기와 나는 신체적으로 최대한으로 밀접해졌다. 아기가 커지면서 점점 내 몸 속의 공간을 더 넓게 차지했고, 자궁에 눌린 위장과 소장 때문에 나는 음식을 한 번에 많이 먹지 못 하고 화장실을 수시로 찾아야 했다.

    그리고 몸 속 모든 뼈들도 아주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몸의 변화가 신기하면서도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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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도 맞닿았다.

    친구들의 출산기는 듣기만 해도 더 끔찍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대부분 이야기는 '고통'으로 시작해 '굴욕' 그리고 '고통'으로 끝났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 준 친구는 딱 한 명 있었다. 서울에서 간호사를 하던 그 친구는 흔히 말하는 자연주의 출산을 했다.

    친구는 욕조 물 속에 들어가 남편에게 등을 기대고 앉아서 아무런 의료적 개입 없이 아기를 낳았고, 고통은 참을만 했다고 말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울지 않아서 더 좋았다고 했다. 위험에 대비해 조산사와 간호사 동료가 그 곁을 지켰다.

    나는 지역에서 자연주의 출산이 가능한 곳을 찾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창원과 김해에는 없었다. 부산이나 서울에 가서 출산할 수도 없었다. 차선책을 택해야 했다. 창원 한 산부인과의 르봐이예 분만법이 눈에 띄었다.
     

    르봐이예 분만이란 모든 출산 과정을 아기에게 맞춰서 진행하는 것인데, 아기의 시각, 청각, 촉각, 감정을 배려한 분만법이었다. 무통주사나 촉진제 같은 약물 의존 없이 조용하고 어두운 환경 속 분만을 진행하고, 출생 직후에는 탯줄을 자르지 않고 곧바로 아기를 엄마 가슴에 올려놓아 엄마의 심장소리와 목소리를 듣고 엄마의 손길을 느껴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그 후에는?아빠가 아기를 양수와 같은 온도의 물에서 목욕을 시키는 것이다.

    지나치게 밝은 조명과 시끄러운 분만 대기실, 그리고 출산 후 엄마와 곧바로 분리시키켜 신생아실로 아기를 데리고 가는 것이 의료진의 편의를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앞서 이야기 했 듯 '환자 아닌 환자 같은' 많은 산모들은 병원의 지시를 질문없이 따라야 했을 것이다. 남편과 나는 이 분만법의 목적에 공감했고, 이를 위해 병원에서 4번의 교육을 받았다.

    이와 함께 나는 아기를 만나기 위해 여러가지 준비를 했다. 처음 입힐 옷을 위해 난생 처음 바느질로 배냇저고리를 만들고, 아기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출산가방을 싸고, 집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또 회사에 낼 출산휴가계를 만들고, 업무 인수인계 자료도 틈틈히 만들었다.

    그리고 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밤, 나는 뱃속에서 뭔가 움찔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슬이었다.

    아기를 보호하던 단단한 뚜껑이 드디어 열렸다.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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