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으로 조금만 기우뚱해도
논은 더 이상 논이 아니랍니다
징게맹게 너른 들에서
외배미 용배미 깔딱배미까지
저들이 이뤄 낸 소담스런 세상 보세요
모양새와 크기 달라도
가지런한 이마 선과 푸른 정수리들
어깨 낮추어 하늘 받들고 있지요
비와 햇살 골고루 나누는
이음매 아스라한 저 조각보 아래
땅어머니가 차려내 주시는
따숩고 기름진 밥상
아가, 마이 묵어라
☞무논에 가득한 벼들은 어쩌면 그렇게 키가 고르게 자랄 수 있을까요? 삐죽이 튀어나온 것은 가라지일 뿐, 벼들은 한결같은 키 높이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햇살과 물을 정직하게 나눠 먹은 탓이겠지요. 그런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조건은 바닥이 평평하다는 사실입니다. 논이 논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벼 포기가 민중을 상징한다면 그 바닥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참된 민주주의’라는 토대이겠지요.
‘땅어머니가 차려내 주시는/ 따숩고 기름진 밥상/ 아가, 마이 묵어라.’ 평등과 자유가 골고루 실현된 민주주의 사회가 민중을 위해 양식을 내는 것은 자연의 섭리와도 같습니다. 아가, 마이 묵어라! 밥상을 차려내시는 어머니 민주주의의 목소리가 넉넉하게 울려오는 낱낱의 아침이기를.
조예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