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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일기 (4) 가족의 의미 - 걸어도 걸어도

  • 기사입력 : 2015-04-16 10: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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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에 있는 남동생이 가끔 내려올 때면 집에 먹을 것들이 많아진다. 엄마는 고기, 빵, 각종 간식들을 아낌없이 사온다. 몇 주 전에도 그랬다.
     
    동생이 서울로 올라가기 전날 저녁, 엄마가 거실에 나와 보라며 불렀다. 동생이 노래를 한 곡 들려줬다. 홈플러스 매장에서 나오는 노래란다. 로고송 공모전이 있어서 응모했는데 당선이 됐다는 거였다. 홈플러스에 장보러 간 친구들이 노래가 나올 때면 전화가 온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그때 처음 들었다. 나온 지 2년도 넘었다는데.(심지어 아빠는 아직도 모르신다.)
     
    가족이라도 서로 잘 모르는 구석이 많다. 오랜 시간 부대끼며 함께 생활해왔지만 여전히 남동생, 엄마, 아빠를 완전히 알지는 못한다. 떨어져 있어도, 함께 살고 있어도 끊임없이 조금씩 틈이 생긴다. 그 틈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계속 벌어져 간다.
     
    생각해보면 남동생과 얘기가 많은 편은 아니다.("진짜 못생겼다"는 말을 제외하면. 이 말은 만날 때마다 서로 아낌없이 해준다.) 떨어져 지내다보니 각자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도 자세하게 모른다. 만나면 내가 신문사에서 편집을 한다니까 회사에서 편집은 잘 하냐고, 동생은 음악작업을 한다니까 노래는 잘 되냐며 지나가듯이 물어보는 게 전부다. 그래도 종종 소식을 업데이트 하곤 했는데 그 노래를 2년이나 지나서 듣게된 건 약간 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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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페이의 묘지에 다녀가는 료타와 어머니. 어머니는 "노랑나비는 겨울이 되어도 안 죽은 흰나비가 이듬해 노랑나비가 되어 나타난 거다"고 말해준다.

    요코야마 가의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다. 10여년전 바다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장남 준페이의 기일. 타지에서 각자의 삶을 살던 딸 지나미와 차남 료타는 오랜만에 집으로 온다. 동네 책방 아저씨의 입원, 초밥집 주인의 치매부터 준페이와 료타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식구들이 좋아하던 옥수수튀김을 먹으며 추억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평범한 여느 가정의 모습이지만 이들 사이에도 미세한 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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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료타에게 숨겨왔던 속내를 드러내는 어머니. 그녀는 여전히 준페이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딸은 식탁에서 은색구슬을 주은 후 어머니가 여가로 파친코를 한다는 것을, 어머니는 며느라와의 대화에서 아들이 술을 마실 줄 안다는 사실을 처음 안다. 아버지 때문에 프로야구 팬인 척 해왔던 아들은 아버지와 산책을 하면서 그가 이제 야구가 아닌 축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10여년간 묻어뒀던 어머니의 진짜 속내도 처음 마주한다. 어머니는 준페이 때문에 목숨을 구한 요시오를 매년 기일마다 초대해 음식을 내주며 친절하게 대하지만 사실 요시오를 원망하고 증오한다. 그것도 아주 깊이. "겨우 10년 정도로 잊으면 곤란해. 그러니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꼭 오게 만들거야"
     
    뜨개질을 하면서, 목욕을 하다가, 밥을 먹다가…. 조금씩 벌어져 온 미세한 틈 사이로 가족들의 속내는 문득문득 튀어 나온다. 그렇게 서로의 속내를 마주하면 그동안 벌어져 왔던 틈을 새삼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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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코야마 가족은 새로운 가족이 된 료타의 부인 유카리에게 예전 가족사진을 보여준다.

    엄마와의 대화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옛날 사진을 들춰보다가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봤다. 예전에 봤던 사진이었지만 사진 속 엄마의 얼굴이 너무 젊고 화사해서 순간 '이랬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사진을 들고 나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엄마에게 보여주면서 "이때는 엄청 예뻤네"라고 했더니 엄마는 사진을 힐끔 보면서 말했다. "넌 엄마가 항상 이런 얼굴인 줄 알지. 만날 늙었다 그러면서. 나도 젊었을 땐 예뻤는데." 엄마는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런 말을 서운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누구나 속에 담아두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들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알게 되거나 어쩌면 영영 알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료타는 어머니가 '추억의 노래'라며 들려주던 노래가 사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바람을 피우던 여자에게 불러주던 노래라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여전히 가족이다. 자신의 뒤를 잇지 않고 화가가 된 아들이 못마땅하고, 의사가 최고의 직업인 줄 아는 아버지에 대한 앙금이 남아 서로 서먹서먹하지만 요코야마 부자는 똑 닮았다. 딸을 불러 "왜 여기를 너네 엄마집이라고 해? 내가 마련한 집인데"라며 정정해주는 아버지나 그런 아버지에게 "예전 옥수수서리로 곤란했을 때 야채가게 얘기를 한 건 저에요. 형이 아니라"고 정정해주는 아들의 행동은 그들이 어쩔 수 없는 '아빠와 아들'임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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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정류장에서의 풍경. 어머니는 료타에게 "꼭 치과에 가야 한다"며 신신당부한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오는 아들, 딸을 위해 쉼 없이 요리를 하고 40대가 된 아들이 치과를 잘 다니는지, 직장에서 일은 잘 되는지 끊임없이 걱정한다. 하룻밤 자고 가는 아들을 위해 잠옷을 따로 사두고 버스정류장에서도 "더 해줄 말이 있었는데"라며 중얼거린다. 그 장면에서 왠지 눈물이 났다.
     
    료타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지난밤에 어머니가 궁금해 했던 스모선수의 이름을 기억해낸다. 간밤에는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생각나지 않았던 이름이다. 그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말한다. "늘 이렇다니까. 꼭 한발 씩 늦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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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후 료타는 같은 장소에서 자신의 딸에게 어머니가 들려줬던 노랑나비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준다.

    정말이지 그렇다. 거제에 가 계신 아빠에게 전화를 드리는 것도, 엄마의 생일을 챙기는 것도, 동생에게 용돈을 챙겨주는 것도 늘 한발씩 늦다. 그렇게 늦고 나서야 깨닫고 후회하지만 여전히 그렇다. 걸어도 걸어도 꼭 한발씩 늦게 되는 건 어쩌면 가족을 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숙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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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 영화소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8년 작품. 국내에는 2009년 개봉했다. 토론토영화제 등 전 세계 다양한 영화제 초청작으로 러브콜을 받았고 일본 개봉 후에는 주요영화제서 6관왕을 휩쓸며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만든 자전적 성격이 짙은 영화다. 잘 쓰여진 글에서 문장, 단어 하나를 버릴 것이 없는 것처럼 모든 신(scene), 대사가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완벽한 호흡을 이룬다. 요코하마 부인 역을 연기한 키키 키린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

    김세정 기자 (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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