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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짚풀공예가 최호경씨

“여러 가닥 꼬인 고달팠던 삶 뒤로하고 짚 꼬는 삶 완성”

  • 기사입력 : 2015-04-2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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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경씨가 사천시 곤양면 추천리에 있는 작업장에서 자신이 만든 짚풀공예 작품을 보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어떻게 짚풀공예를 하게 되셨어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공예가 최호경(65·사천시)씨는 “과거가 없으면 현재도 없잖아요”라고 대답했다.

    고민 없이 내뱉은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변이었다. 최씨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조급하게 물은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인터뷰를 쉬어갈 겸 주변을 둘러보니 그제야 최씨의 공예품들이 눈에 띄었다. 작은 초가집부터 큰 멍석까지 수백 점이었다. 자리를 고쳐 앉고 최씨의 과거를 들어봤다.

    10여 년 전 최씨는 농산물 도매상이었다. 산지 직송 농산물을 찾기 위해 방문한 전국의 농촌이 모두 최씨의 고향이었다. 궂은 날씨에 작업이라도 늦어지면 최씨는 마을 어르신들과 둘러앉아 막걸리 사발을 기울였다. 최씨는 뜨끈한 아랫목에 앉은 채 새끼를 꼬는 어르신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녹녹했던 아랫목과는 달리 최씨의 지난 삶은 녹록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최씨는 담수사업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부유하게 자랐지만, 여느 소설 속 이야기처럼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최씨가 사천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사업 확장을 위해 손을 댄 농산물 사업이 실패했다.

    예순을 넘긴 최씨지만 당시 기억은 또렷했다. 최씨는 “하루 동안 빚쟁이가 많게는 37명이나 왔어요. 요즘처럼 농산물 저장소 상태가 좋지 않았고, 영하의 날씨에 많은 농산물이 얼어버린 탓에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졌죠”라고 회상했다.

    당시 최씨는 학교에 회비를 못 내 자주 교실 앞으로 불려나갔다. 자존심이 크게 상했던 그는 결국 중학교를 그만뒀다. 이어 5남2녀 식구의 입이라도 덜겠다는 생각에 열다섯 살 때 부산으로 갔다. 사천역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한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자 시간은 어느새 밤 10시를 넘겼다.

    “무섭지 않으셨어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최씨가 “번쩍번쩍한 간판 불빛이 얼마나 좋았는데…”라고 농담으로 받았다. 그러면서도 최씨는 “지나고 보니까 재밌는 거라…, 현실은 고달팠고”라고 덧붙였다. 그는 사천시 축동면 고향에서 삼촌이라고 부르던 지인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밤에는 야간학교, 낮에는 부산 조방거리(현 부산시 동구 범일동 일대)를 오가며 헌책을 팔았다. 그렇게 3년을 일한 덕분에 최씨는 리어카를 구해 채소장사를 다닐 수 있었다.

    최씨는 “직장인들의 한 달 월급이 1000원이었고, 쌀 한 말이 800원이었으니 장사가 나았다”고 설명했다.

    다시 2년이 지나 최씨는 부산 부전시장에 조그만 가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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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 최씨는 좋은 농산물이 있는 곳이면 트럭을 몰고 어디든 갔다. 어르신들과의 담소는 덤이었다. 막걸리 한 사발에 살아가는 이야기가 술술 쏟아졌다.

    그럴 때면 방안 한쪽 구석에서 짚을 꼬는 노인들이 눈에 띄었다. 무관심이 어느새 호기심으로 변해갔다.

    최씨는 “머릿속에 짚을 꼬아 짚신이나 삼태기(바구니)를 만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작은 거창에서부터였다. 지난 2005년 거창에 있던 어느 마을 노인에게서 짚을 꼬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별것 없다’며 손사래를 치던 노인들도 최씨가 며칠을 인근 모텔에 투숙하는 모습을 보고는 짚을 꼬는 방법을 찬찬히 가르쳐 줬다고 한다.

    최씨는 “어르신 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요. 지금쯤 돌아가셨겠죠?”라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최씨는 경북 안동, 전북 무주 등 짚풀 공예를 배울 수 있는 곳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짚을 꼬는 방법도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최씨는 “짚의 이음새 부분에 다른 짚을 바로 넣는 곳도 있고 구부려 끼우는 곳도 있어요”라고 설명하며 직접 시연까지 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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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경씨가 사천시 곤양면 추천리에 있는 작업장에서 자신이 만든 짚풀공예 작품을 보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그때부터 최씨가 만든 짚풀공예품이 수백 점이 넘는다. 손바닥만 한 지게가 600여 점, 초가집, 주막 등으로 만든 작은 민속촌이 40여 점이다. 삼태기, 멍석까지 하면 셀 수 없다. 덕분에 3년 전에는 진주 개천예술제에 부스를 얻어 공예품 전시도 했다.

    어쩌면 짚풀공예가로서 최씨의 삶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최씨 아버지의 사업 실패가 그를 부산으로 이끌었고, 농산물 도매상을 거쳐 짚을 꼬는 동네 어르신에게 인도했을지도 모른다.

    그제야 최씨가 말한 ‘과거가 없으면 현재도 없다’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문득 최씨의 앞으로가 궁금해졌다. 최씨는 10여 년 전 일화를 소개했다.

    여느 때처럼 농산물을 사려고 방문한 농촌에서의 일이다. 주민들이 한창 초가집 지붕을 교체하고 있을 때, 최씨 눈에 들어온 것은 처마 밑에 핀 국화꽃이었다. 최씨는 ‘어머니가 이거 보시면 참 좋아하시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최씨는 “그런 예쁜 국화꽃이 있는 초가집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정치섭 기자 sun@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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