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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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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천상의 도시 그리스 메테오라

깎아지른 절벽에 만들어진 ‘천상의 도시’
‘인간과 자연의 합작품’ 그리스 메테오라에 가다

  • 기사입력 : 2015-04-30 22:00:00
  •   

  • 공중에 매달아 올린다는 뜻의 메테오라
    20~400m 바위탑 꼭대기에 수도원이…
    198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

    가파른 절벽 따라 수도원에 다다르면
    소박하지만 정돈된 내부가 눈길 끌고
    전망대선 칼람바카 마을 전경 한눈에

    자연 앞 인간의 나약함 깨달으며
    눈앞에 펼쳐진 길 가슴에 품는다


    그리스 여행을 계획하는 여행자에게 아테네는 익숙한 도시이지만 메테오라는 친숙하지 않은 지명이다. 얼핏 보기엔 여느 유럽의 도시들과 비슷한 붉은 지붕이 있는 마을이라고 생각되겠지만 마을을 감싸고 있는 기암괴석과 그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수도원이 있는 곳이 메테오라다. 내가 살고 있는 곳과 전혀 다른 사진 한 장에 끌려 막연히 꿈을 꾸며 ‘언젠가는 꼭 가보고 말 테야’ 하며 다짐을 했던 곳이 메테오라였다.

    사진 한 장만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매력을 가진 메테오라는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는데 영화 007시리즈에 트리티니 수도원이 등장하면서 더욱더 유명해졌다. 그리고 최근 케이블에서 방송하는 여행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까지 다녀갔으니 한국인들 사이에선 더 유명해질 터.

    눈으로 보아도 믿기지 않을 기암괴석의 기묘한 풍광을 보다 보면 수만 년 전 해저가 융기해서 생겼다고 알려진 설보다 그 옛날 화가 난 제우스가 천계에서 던진 암석이라는 설에 더 믿음이 갈 정도다.

    메테오라 여행의 베이스캠프인 칼람바카의 아침이 밝았다. 지난밤 늦게 도착했던지라 이른 아침 마을구경에 나섰더니 아침부터 이 작은 마을이 시끌벅적하다. 그리스의 작은 마을 칼람바카 장날을 볼 수 있는 행운이 내 손에 쥐어졌다. 엄청난 바위의 정기를 받아서일까? 칼람바카 시장은 유독 시끌벅적하고 활기가 넘쳤다. “골라 골라~” 호객하는 상인들 덕분에 자연스레 우리 동네 마산 어시장이 떠올랐다. 차이점이 있다면 재래시장인데 뭔가 더 상큼하고 시장 구석구석이 화보 촬영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예뻤다는 점이다. 처음 만난 유럽의 시장은 시장마저도 뭔가 세련미가 있었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내가 유럽을 여행 중이구나를 느끼게 되다니 가벼워진 발걸음에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살 것도 없는 시장을 꼭 이곳 주민처럼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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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세기 메테오라 절벽 꼭대기에 세워진 바르람 수도원.


    괜스레 유러피언이 된 것만 같은 착각 속에 기분 좋은 마음으로 메테오라 수도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쭉쭉 뻗은 멋진 저 길을 바라보니 수도원을 보기도 전에 나의 손발은 오그라들고 심장은 두근두근하기 시작했다.

    메테오라 바위산은 테살리아 평원을 배경으로 낮게는 20m부터 높게는 400m나 되는 바위탑들이 늘어서 있고, 그 꼭대기엔 수도원이 세워져 있는데 남아 있는 5개 수도원 중 최초의 수도원이자 최고 규모를 자랑하는 메가로 메테오른 수도원(메타 몰포시스 수도원)을 제일 먼저 찾아갔다. 걷는 거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으니 일단 버스를 타고 대수도원 앞에 도착했는데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마을 아래에서 올려다본 풍경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의 시야에 들어온 메테오라는 하늘에서 누군가 사뿐히 수도원들을 내려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바람과 물에 의한 침식으로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믿기에는 쭉쭉 뻗어 솟아오른 바위산들이 의도적으로 누군가가 만든 작품처럼 매끈매끈했다. ‘제우스가 던진 암석’이라는 전설이 이해가 됐다. 좀 더 과장을 보탠다면 신들이 잘 빚은 바위를 하늘 위에서 사뿐히 내려놓은 게 아닐까 하는 나만의 추측이 더 신빙성 있게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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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보는 아찔한 풍경이 보여주듯 수도원 안으로 입장하는 길은 꽤나 험난하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끼고 돌아야 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 옛날에는 이 계단마저 없어서 사람이나 수도원에 필요한 생활물자를 운반하는 수단은 오로지 도르래에 매달린 포대가 전부였다고 한다. 공중에 매달아 올린다는 의미인 메테오라라는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지금은 계단도 생겨 이렇게 걸어서 내부를 볼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싶었다.

    도르래에 매달려 수도원에 오른다고 상상하니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보다 더 아찔해진다. 메테오라에 있는 수도원들은 그리스 정교회의 규율을 아직 엄격히 지키고 있어서 긴 바지일지라도 바지를 입은 여성은 입장할 수가 없다. 입구에서 대여해주는 치마를 허리에 감아야 입장이 가능하다. 치마를 두르고 보니 가수 김원준의 치마 패션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 어디를 가도 규율과 규칙을 어기는 청소년들은 꼭 존재한다. 관리인들의 눈을 피해 어설프게 두른 치마를 벗고 사진을 찍는 그리스 십대들을 보니 괜히 흐뭇해지는 것이 나 역시 나이가 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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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기가 넘치는 칼람바카 시장 풍경.

    수도원 내부에는 로마시대부터 오스만 투르크시대까지 이어지는 세월 동안 고난을 겪던 그리스 정교회 수도사들의 모습이 성화로 남겨져 있고 이곳에서 지낸 수도사들의 유골과 박물관, 과거 부엌 등 역사적인 현장도 그대로 보존돼 있어서 내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특히 이곳에서 은둔하던 수도사들의 유골은 책장에 책을 정리하듯 질서정연하게 정리돼 보관되고 있는데 왠지 으스스하면서도 자꾸만 눈길이 갔다. 해골이어서 무서워야 하는데 너무 잘 정리정돈이 돼 있던 게 신기하기만 했다.

    멀리서 보이는 스케일과는 달리 내부는 아담하고 소박하다. 유명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화려한 성당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수도사들이 식사를 하던 곳과 부엌들. 뭔가 반듯하지 않고 오래된 것이 왠지 더 정감이 가고 끌린다. 우리네 시골 부엌과 별 차이도 없어 보이고 말이다.

    내부 관람을 마치고 수도원 전망대로 나오면 탁 트인 시야와 함께 칼람바카 전경이 보인다. 이렇게 높은 바위 위에 수도원을 지을 수 있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 짧은 탄성만 자아낸다. 살짝 용기를 내어 절벽 아래로 발을 내려본다. 찌릿찌릿 손끝 발끝까지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이 좋아 혼자서 배시시 웃는다. 메타 몰포시스 수도원부터 둘러보고 하산을 하면서 하나씩 나타나는 나머지 수도원들을 둘러봤다.

    특별히 지도가 없어도 주도로가 하나인지라 칼람바카 방향으로 가볍게 걸어가면서 남아 있는 수도원을 둘러보고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전망대가 짠하고 나타나 주니 걸으면서 내려가는 이 길이 힘들지 않고 오히려 여행의 흥을 더 복돋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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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타 몰포시스 수도원 수도사들의 식당.


    자연의 기를 듬뿍 마시며 하산을 하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마법 같은 이 길이 여기서 끝나지 않고 끝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럼 정말 지구 끝까지라도 걷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메테오라에 오르면 자연 앞에 우리가 얼마나 작고 나약한 존재인지 바로 느낄 수가 있다. 나를 앞뒤 좌우로 감싸던 엄청난 규모의 바위군 속에 싸여 걷던 그 순간에도 지금 이 순간과 이 기억이 아쉬워져서 앞으로 걸어가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천천히 한발씩 내디디며 하나하나 내 가슴 속에 담아 놓는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도시 메테오라. 메테오라의 감동을, 내가 눈으로 본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친구들에게 엽서로 대신했다. 정말 이런 풍경은 침 튀겨가며 열변으로 표현해도 모자란데 엽서 한 장에 담아내느라 힘들었다.

    신들의 나라 그리스답게 신의 존재와 더불어 인간의 믿음이 만들어낸 곳. 신화가 역사가 돼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곳. 인간과 자연의 경이로운 합작품인 메테오라는 그리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여행 tip

    △ 하루 한 번 아테네 라리사역에서 칼람바카까지 기차가 운행한다. (5시간 소요)

    △ 칼람바카 시청 광장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또는 편도 택시를 타고 메타 몰포시스 수도원까지 가서 트레킹을 이용해 하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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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정

    △ 1980년 창원 출생

    △합성동 트레블 카페 '소금사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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