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8일 (목)
전체메뉴

[작가칼럼] 오일장 생각- 조은길(시인)

  • 기사입력 : 2015-05-01 07:00:00
  •   
  • 메인이미지

    그곳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아침부터 물건을 잔뜩 실은 트럭이 속속 도착하고 비치파라솔 빼곡히 이마를 맞댄 간이장터가 생긴다. 그 비치파라솔 아래에는 오늘 가져온 물건들을 최대한 눈에 띄게 쌓거나 펼쳐놓고 소리 높여 자신의 물건을 선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값을 비교하고 흥정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곳은 종일 시끌벅적하다. 그들은 물건을 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쉬지 않고 자신의 물건의 장점을 외치고 있다. 그것이 뺏고 뺏기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리라.

    나는 오일장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곳은 상설시장이나 대형마트나 백화점 같은 상권이 정형화된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이기심이나 욕망을 자랑처럼 당당히 드러내놓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다. 그곳에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온몸을 가동해도 흉이 되지 않는 분방함이 있어서 좋다.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내 안에 갇혀 있는 이기심을 잠시나마 꺼내 흥청망청 풀어줄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그런지 상설시장이나 대형마트나 백화점 같은 곳을 가면 얼마 못 가서 눈이 깔끄럽고 다리가 아프고 피로가 몰려오지만 오일장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우울했던 마음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알 수 없는 생기가 솟아나는 것 같고 기분이 좋아진다.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눈동자를 반짝반짝 굴리며 얼굴이 한껏 상기된 시장 사람들을 보노라면 이곳이 오일장이 아니라 물건 팔기, 물건 사기 경기장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곡물은 곡물끼리, 채소는 채소끼리, 과일은 과일끼리, 해산물은 해산물끼리 상대가 되어 점수 하나 나면 얼싸안고 좋아 날뛰는 운동선수나 관중처럼 자기 물건을 소리소리 지르며 선전하다 팔리면 신바람이 절로 나고, 물건을 최대한 싸게 사기 위해 장을 돌며 물건의 질과 값을 저울질하는 재미에 밥때도 잊어버릴 지경인 물건 팔기, 물건 사기 경기.

    그렇지 않은가! 스포츠경기장이 아니면 저처럼 나를 응원하기 위해 목이 터져라 소리소리 지르고 모르는 사람끼리 얼싸안기도 하는, 상대의 불행과 맞바꾼 승리의 기쁨을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는가! 스포츠경기장이 아니면 효율적인 상생을 명목으로 우정과 동료애를 주창하면서도 그들을 성적순으로 또는 능력 순으로 구분해 줄을 세우는 현대물질사회의 모순과 이율배반 속에 갇힌 내면의 원시성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만약에 스포츠경기가 현대인들에게 억압된 이기심이나 공격성을 대리 표출할 수 있는 배수구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이 땅에 스포츠경기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요즘 TV에 스포츠 프로그램이 많이 생기는 현상도, 스포츠 선수들이 인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것도 어쩌면 현대물질사회에 강탈당한 인간 내면의 원시성이 내지르는 마지막 비명인지도 모른다.

    해가 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돌아가는 시간인데 팔리지 않은 물건을 수북이 쌓아놓고 초조한 표정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있는 힘을 다해 싸웠지만 패하고 돌아가는 복싱선수가 오버랩되기도 한다.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것이 스포츠이고 그중에서도 복싱이 가장 가깝다고 말한 어느 복싱선수의 말이 떠올라 파장의 오일장이 비극영화의 엔딩 장면처럼 돼버리고 말았다.

    조은길 (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