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05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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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김해 농아인협회 윤동현 지부장

그들을 세상 밖으로 이끄는 ‘희망의 손짓’
3살 열병으로 청력 잃고
고1 어린나이에 가장 돼

  • 기사입력 : 2015-05-2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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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현 한국농아인협회 김해지부장이 김해시 장애인복지관 3층 농아협회 사무실에서 농아인과 수화로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지난 11일 오전 김해시 장애인복지관 3층 농아협회 사무실. 한 남성이 손바닥만 한 모니터 앞에 자리를 잡았다. 남성은 모니터를 보면서 손과 팔을 분주히 움직였다. 그사이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맺히고 일부는 셔츠로 흘러내렸다. 정작 남성은 셔츠가 젖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모니터 안에서도 한 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손과 팔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둘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들 사이에는 직접 주고받는 말소리는 없었지만, 수 백 마디의 소리 없는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청각장애 가진 어린 가장

    윤동현(54)씨는 청각장애인이다. 그의 귀는 항상 고요하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큰 비행기가 자기 위를 날아가야 겨우 모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듣지 못하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다.

    윤씨가 청력을 잃은 때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당시 세 살배기 아이였던 윤씨에게 갑작스럽게 열병이 찾아왔다. 그 여름 지독스러웠던 열병은 그의 청력을 앗아가고 말았다.

    윤 씨는 김해 장유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위로는 누나, 아래로는 여동생 셋, 그리고 막내 남동생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경찰이었다. 경찰 아버지는 윤씨의 가족 곁을 영원히 지켜줄 것 같았지만, 윤씨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윤씨는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가장이 돼야만 했다.


    “말을 할 줄 모른다고 일을 할 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윤씨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만 했다. 될 수 있는 대로 말이 필요 없는 직업을 찾았고 수소문 끝에 부산의 한 신발공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갑피 재봉을 했다. 그는 이 직업이 천직이라 생각했다. 재봉질에만 집중하면 말은 필요치 않았다. 그곳에서 그는 3년을 일했다. 그리고 능력을 인정받아 인근에 다른 신발 공장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곳에서도 그는 말없이 재봉질을 했다.

    하지만 미싱질만 집중할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다니던 공장이 신발산업의 쇠퇴로 위기를 맞았다. 천직이라 믿었던 재봉일도 멈췄다.

    재봉 말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돈은 계속 벌어야 했다. 그에게 의지하고 있는 가족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러 곳을 전전하던 끝에 건축일을 하게 됐다. 남들은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위험할 것이라고 했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이틀, 그렇게 버티기를 7년. 어느 날 공사장 쇠파이프가 굴러떨어져 내려와 그의 다리와 팔을 강타했다. 조금 쉬면 괜찮을 거로 생각했던 상처는 더욱 깊어졌고 끝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더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말은 할 수 없고 거기다 팔과 다리까지 불편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고민은 꼬리를 물고 끝없이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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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아인협회 지부장으로서

    일을 하면서 꾸준히 다녔던 농아인협회에서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 평소 품행이 단정한 윤씨를 지켜본 농아인협회 김해시 지부장이 자신의 뒤를 맡아달라는 것.

    처음에는 간단치 않았다. 농아인들 중에 정식 수화를 할 수 있는 농아인이 드물었을 뿐더러 상당수가 문맹자들이었다. 무엇보다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꺼리는 이들이 많았다.

    2000년 당시 김해지역 농아인협회에 가입한 농아인은 불과 30여명 남짓. 이 지역 농아인이 2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농아인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세상과 소통하는 것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윤씨의 가슴에 이들을 세상 밖으로 이끌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지부장의 일이 어느덧 올해로 15년을 훌쩍 넘겼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 협회 회원도 윤씨가 취임했을 때보다 5배나 늘어났다. 무보수 명예직으로서 농아인의 복지를 위해 달려온 지난 15년은 주위 사람들은 물론 경남도 18개 시군에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그 결과 2000년 경남농아인협회 김해시지부장 감사패를 시작으로 이듬해는 경남도지사 표창, 다음 해는 김해시장 표창에 이어 2003년에는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까지 받았다. 지난 4월 윤씨는 제35회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아 주변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농아인들을 세상 밖으로

    윤씨가 잠들기 전에 꼭 하는 습관이 있다. 그것은 바로 베개 밑에 휴대폰을 놓아두는 일. 진동상태로 휴대전화를 머리맡에 두는 이유는 언제 윤씨에게 도움을 청할지 모르는 농아인들 때문에 생긴 버릇이다.

    윤씨에게는 꿈이 있다. 세상 모든 농아인들이 사회를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와 소통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뒤를 잇는 후배들도 많이 탄생해야 할 것이고, 부족한 예산을 충원하기 위한 시의 지원도 필요하다. 이것저것 해야 할 일도 많고 고민도 있지만,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채워나갈 생각이다. 그가 지난 15년 동안 늘 해왔듯이.

    고휘훈 기자 24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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