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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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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은 대초원이다 - 장인수

  • 기사입력 : 2015-05-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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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서로 의견이 갈려서 토론수업을 하고 있는 교실이

    하느님께서 지으신 자유롭고 광활한 대초원이 아니라면

    과연 어디겠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풀이 저토록 끈질기게 교실 가득

    푸르딩딩 자라나고 있겠는가?

    울부짖고, 뿜질을 하고, 저녁을 끌며 야초를 뜯는 산양이

    가득하겠는가?

    공자와 세종대왕과 김일성과 박정희와 이순신이 느닷없이

    교실로 들어와서는

    광대와 광녀와 목동과 유목민과 화가를 만나고 있다.

    그들은 마유주를 함께 마시고 있다.

    ☞ 시인은 꿈꾸는 자이다. 그 꿈이 다음 세대를 향할 때 그 꿈의 배경은 교실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이상향이 펼쳐진 교실은 씹을 거리, 즉 풀이 싱싱하고 그 푸르게 싱그러운 풀을 뜯어먹는 야성의 산양들이 가득한 초원으로 초원으로 뻗어나 느닷없는 대초원으로 펼쳐진다. 그 끝간 데를 짐작하는 것은 물론 거세되어 있다.

    무한한 대초원…. 서로 다른 의견(씹을 거리)을 눈치 볼 필요 없이 펼쳐내는 그런 살아있는 교실에서 다양한 다음 세대는 준비된다. 그 다양함은 서열화를 극복한 것은 물론이다.

    ‘광대, 광녀, 목동, 유목민, 화가’로 지칭된 그들은 역사 속에서 서열화되고 가치화된 인물들마저 그 답답한 틀 속에서 탈출하여 시원한 몽고 막걸리를 나눠 마실 수 있는 자유자들이다. 이 진정한 교육의 대초원이 꿈이어야만 할까? 조예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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