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5일 (목)
전체메뉴

[작가칼럼] 주남저수지 예찬- 정영선(시인)

  • 기사입력 : 2015-05-22 07:00:00
  •   
  • 메인이미지

    며칠 전 친구 두 명과 주남저수지를 찾았다. 생태탐방로 새드리길 따라 끝없이 피었던 노란 유채꽃이 스러진 자리, 드문드문 양귀비가 붉은 자태로 반겼다. 둑 아래쪽에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 향이 뭉텅뭉텅 코끝을 자극하는 오후, 우리는 조여진 삶의 허리끈을 잠시 풀어놓고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머리에 서로 풀꽃을 꽂아주고 순간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며 정담을 나누면서 걸었다.

    저만치 유치부 아이들이 선생님 손을 잡고 병아리 걸음으로 오더니, 참새처럼 조잘거리며 찔레꽃을 따서 맡아보기도 하고 갓 태어난 물잠자리 새끼들을 만져보며 신기해하면서도 무서운지 그 감정을 폴짝폴짝 뜀박질로 대신하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곳곳에는 가족과 연인, 또는 친구끼리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좋은 사람끼리는 함께 있기만 해도 기쁨이 두 배가 되고 여행은 벗이 좋아야 즐거움이 두 배가 된다는데 좋은 사람들과의 나들이에 아름다운 호수 풍경이 있고 실바람과 꽃들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주남저수지가 아름다운 것은 비단 봄 풍경만이 아니다. 계절마다 또 다른 모습을 갈아입고 찾는 이들의 감성을 풍요롭게 해 준다.

    여름이면 온통 초록빛 물풀로 덮여 있는 수면에 햇살이 비늘털며 내려앉는 모습과 긴 목을 빼고 한가롭게 서 있는 흰 왜가리의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가 된다.

    그리고 연 밭의 봉긋이 솟은 꽃봉오리의 몸 푸는 소리 숨죽여 듣는 사이 활짝 피어난 꽃송이에 마음 또한 열린다. 가을날 조붓한 코스모스 길 걸으면 키 큰 억새들이 허리 굽혀 마중하고, 저물녘 호수에 간당간당한 수양버들 사이로 노을이 내려와 몸 담그면 바람은 낯붉히며 물무늬만 그려댄다.

    겨울이면 철새를 찾아 탐조 마니아, 사진작가, 글 쓰는 사람 등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곳, 가창오리 군무가 어둠을 끌어당기면 저수지도 곤한 하루를 접었던가.

    이렇듯 주남저수지는 언제 와서 보아도 각기 다른 풍경으로 다른 느낌으로 우리를 맞는다. 계절 따라, 날씨 따라, 시간에 따라 그가 풀어내는 몸짓과 언어가 다르며, 표정 또한 다르기에 올 때마다 그의 매력에 흠씬 빠져들곤 한다.

    오는 길에 둑길에 핀 풀꽃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악수를 청해보았다. 그들은 어느새 나에게로 와 내 안에 색색의 꽃물을 들였다. 꽃물 든 가슴으로 보는 세상은 모두를 품어 사랑하며, 그 어떤 것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내 안에 자리 잡은 욕심과 아집이 눈 녹듯 사라져 겸손해짐을 느꼈다.

    이토록 아름답고 평온한 자연이 우리 곁에 있음에, 달콤한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늘 분주하고 지친 메마른 우리네 생활 속에서 잠시 벗어나 가족과 또는 친구와 손잡고 주남저수지의 자연을 가끔 느껴보는 건 어떨까?

    팍팍하게 메마른 영혼에 단비가 스며들 듯 촉촉하게 스며들어 마음속의 묵은 때가 저절로 씻기어지고 정화됨을 느끼리라.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큰 가치를 지닌 곳, 잘 가꾸고 보전해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 하겠다.

    정영선 (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