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9일 (금)
전체메뉴

[작가칼럼] 장미와 잡초- 조은길(시인)

  • 기사입력 : 2015-05-29 07:00:00
  •   
  • 메인이미지

    장미의 계절이 돌아왔다. 딱딱한 민낯의 콘크리트 집들이 활짝 핀 장미꽃다발을 안고 축제의 주인공처럼 환하다, 모든 꽃들이 저마다 개성을 지니고 아름답지만, 눈부신 5월 햇살과 신록을 배경으로 갓 피어난 장미꽃의 자태는 유일한 흠이라고 할 만한 가시마저도 고혹미를 더하는 세계를 비할 데 없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곳으로 이끈다.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에 죽는 이는 얼마나 슬플까! 나는 장미꽃 무더기에 코를 박고 “봄날 모든 죽음은 요절이다” 시를 쓴다.

    장미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꽃의 여왕이라 떠받들며 그것의 이미지를 생활용품이나 화장품은 물론 장식품이나 예술작품에까지 도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장미꽃을 선호하는 인간의 역사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나에게도 ‘장미꽃’ 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가 있다. 그 하나는 사춘기에 막 접어든 나의 눈엔 천사처럼 고와 보이던 수녀 선생님이 들려주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중에, 장미 넝쿨을 두 손으로 들어 올리고서야 들어가는 아름다운 집에 대한 이미지인데, 그것은 셋방 시절 최소한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문지방 앞에 쳐놓은 나일론 발을 들어 올리던 나의 모습과 겹쳐졌다. 이상과 현실의 단면도 같은 이 이미지들은 담장을 뒤덮은 장미꽃에 홀려 흠투성이 집을 시세보다 비싼 값에 사는 실수(?)를 안겨주기도 했다.

    또 하나는 그 장미꽃그늘에 파랗게 솟아있던 잡초를 만난 기억이다. 무심코 그것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순간 뽑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으로 버티다 나와 함께 나자빠진 잔뿌리 하얗게 뒤엉킨 그의 아랫도리다, 그것은 이미 세계 속에 배치되어 있는 장미와 잡초의 자리였고 그것의 까마득한 거리의 실체였다.

    잡초는 대지의 피부다. 대지와 함께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다. 장미와 잡초는 세계를 이루는 인드라망의 수많은 그물코 중의 하나이므로 존재 값이 동등하다. 다만 조화로운 상생을 위해 ‘다름’과 ‘차이’가 존재할 뿐 ‘미와 추’ ‘귀와 천’의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장미와 잡초의 자리가 뒤바뀐다면 장미는 귀하고 아름답기는커녕 세계를 잡초와 장미가시 뒤엉킨 폐허로 이끄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나를 세우듯 잡초를 장미와 나란히 세워보지만 이미 장미는 너무 아름답고 오래도록 같이 있고 싶은 존재이고, 잡초는 보이는 족족 뽑아버리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생의 열정 외엔 자신을 지킬 만한 그 무엇도 지니지 못한 채 내 손아귀에서 새파랗게 숨이 넘어가던 잡초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어이없는 설움과 직면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불혹을 넘긴 늦깎이 시인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한 손으로는 잡초를 뽑고 한 손으로는 잡초를 위로하는 시를 쓰는 자가당착에 시달리는 엉터리 시인이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TV에서 인기가수가 열창을 하고 있다. 한물간 유명가수의 노래를 음색과 노래 스타일이 다른 기성가수들로 하여금 다시 부르게 하여 최고를 뽑는 프로다.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이런 식의 경연 프로가 최고의 시청률을 견인하는 인기프로라니! ‘장미와 잡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최고’라는 말만큼 폭력적인 말은 없는 것 같다. 나만이 부를 수 있는 나의 노래를 부르겠다며 그 프로의 출연을 거부했다는 어느 가수의 말이 새삼 구원처럼 들린다.

    조은길 (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