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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105) 고성 (15) 하이면 평산도요~운흥사·낙서암·천진암

푸른 숲속 사찰, 호국영령 혼 달래주네

  • 기사입력 : 2015-06-0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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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시대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운흥사 전경.
    고즈넉한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평산도요선
    도자기 장인 전통 잇고

    바람에 물결 일렁이는
    하이저수지 풍경 볼만

    신라 의상대사 창건한
    천년고찰 운흥사에선
    매년 음력 3월 3일마다
    호국영령 영산재 열려

    보물로 지정된 괘불탱
    색채감·구도법 뛰어나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의 사전적 의미는 ‘외부의 위협이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 지킴’이고, 보훈은 ‘국가의 존립과 주권 수호를 위해서 신체적, 정신적 희생을 당하거나 뚜렷한 공훈을 세운 사람 또는 그 유족에 대해 국가가 적절한 보상을 함’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의 방법이야 사람마다 가치나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애국은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마을을 지나다 보면 대문에 참전용사의 집, 독립유공자의 집이라는 빛바랜 문패를 만난다. 이런 문패가 달린 집에는 대부분 태극기가 게양돼 있었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에는 몸과 마음을 바친 수많은 호국용사들의 헌신적인 애국이 있었다.


    도공 신재균의 평산도요

    신록이 무르익어 가는 부처님 오신 날 고성 청량사로 갔다. 상리연꽃 공원에는 벌써 수련이 아름다운 자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1001번 도로에서 청량사 가는 길은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늘 한적하기만 하던 절집이 자동차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후한 청량사 인심 덕분에 점심을 먹고 나가려는데 대웅전에서 법문을 마치고 나오던 본공 주지스님과 마주쳤다. 항상 넉넉하고 소탈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신문에 얼굴이 나와 스타가 됐다고 했다. 가끔 청량사 기사가 난 신문을 들고 절집을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전화도 온다고 했다. 본공스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절집을 나서는데 떡까지 싸주며 친구를 보내듯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본공스님과 작별을 하고 다음 인연을 찾아갔다.

    하이면사무소 방향으로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10여 분 가면 고즈넉한 산자락 아래 봉원리 외암마을에 신재균(63)씨의 평산도요(☎ 055-854-2217)가 있다. 도요 건물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넝쿨은 예전처럼 반갑기 그지없었다. 고집스럽게 조선 도공의 전통을 잇고 있는 평산 신재균씨와의 인연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년 전쯤 됐으니 강산이 한 번 반이나 세월이 흘렀지만 늘 고향 친구를 만난 듯 반갑게 맞이한다.

    일본에 자주 왕래하는 지인이 고집이 나와 비슷한 도공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 반으로 찾아갔다. 신재균의 명성은 개인전을 비롯한 정동주씨의 소설 ‘막사발’에 소개돼 일약 유명인사로 알고 있었다. 평산의 도자기는 초등학교 5학년과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평산도요의 1층은 작업실과 도요가 있고 2층은 전시실과 응접실이다. 신재균씨와 마주 앉으면 녹차를 타는 것도 능숙하지만 이야기 또한 대본 없이 술술 잘 나온다. TV방송 인간시대를 녹화할 때 원고를 받고도 그냥 있는 대로 했다고 한다. 2층에 진열된 도자기를 설명하는 것도 막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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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산도요 가마.

    초승달이 뜨는 날에 불을 지피면 도자기에 초승달 문양이 나오고 보름달을 보고 불을 지피면 보름달이 있는 도자기가 나온다고 했다. 비스듬히 붙어있는 도자기를 가리키며 이것은 왜 이러냐고 물었더니, 불을 지피기 전날 마누라하고 사랑을 나눴더니 이런 도자기가 나왔다고 해서 파안대소했다. 도자기는 흙의 조화도 있지만 단연 불의 조화라고 했다. 도요에서 고온이 되니까 불이 흰색으로 변하는 것을 평산도요에서 처음 봤다. 그는 조선의 장인정신으로 전통적인 방법을 고집스럽게 이어가며 최고의 진사를 재현해 내고 있다. 진사자기는 진홍색의 잿물을 유약으로 입힌 색채 도자기의 전형으로 재앙의 예방 차원에서 민간 신앙화된 특징이 있다고 했다.

    막사발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인데 예전 일본인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가격이 비싸졌다고 했다. 평산도요에 진열된 막사발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가끔 방문을 하는데 가격만 물어보고 좀처럼 구입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일본인이 막사발를 가리키며 가격을 물었다고 했다. 어차피 안 살 것이라 여기고 홧김에 일본열도를 줘도 안 판다고 했단다. 그 후 혹시 그 일본인이 일본열도 문서를 가지고 올까 봐 지금도 그 막사발은 팔지 않고 진열해 놓고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다시 듣고 나서 속이 후련해서 한참이나 웃었다. 평산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도요를 나서는데 푸른 대나무 숲에서 청신한 기운이 가득 담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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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저수지.

    운흥사·낙서암·천진암

    발걸음은 와룡산 운흥사로 향했다. 사천으로 가는 1001번 지방도로에서 와룡길로 접어들면 하이저수지가 고즈넉하다. 봄바람에 일렁이는 저수지의 물결 풍경에 취해 잠시 망중한을 보내다 운흥사 길을 따라 오르면 풀이 자란 한적한 산비탈에 조촐한 승탑전이 있다. 승탑전은 고승의 사리를 봉안하는 무덤이다. 조선시대 형식의 석종형 승탑 3기가 쓸쓸하게 서 있었다.

    발길을 옮기면 운흥사를 안고 있는 향로봉(해발 579m)이 지척에 있다. ‘고성의 겉살과 속살을 찾아서’(고성문화원 발행)에 따르면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고문헌에 향로봉의 지명은 용이 굽이쳐 누운 것으로 보인다 해서 와룡산이었다고 기록돼 있는데 일제강점기인 1918년 3월 30일 발행한 지도에 운흥사 아래 와룡마을 이름은 그대로 두고 와룡산만 향로봉으로 바꾸었다고 했다. 향로봉의 지명을 원래 이름인 와룡산으로 바꾸는 것이 진정한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이라고 했다.

    절집 주차장에서 운흥사로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에는 오래된 벚나무가 있어 봄에 오면 꽃비가 내리는 풍경을 만난다. 운흥사는 신라 문무왕 16년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의 본거지가 돼 사명대사가 이끈 승병 6000여명이 왜적과 싸웠던 곳이다. 가장 많은 승군이 죽은 날로 기록되는 음력 3월 3일이면 국난극복을 위해 왜적과 싸우다가 숨진 호국영령들을 위한 영산재가 매년 열리고 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51년(효종 2년) 중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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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벽 위에 세워진 운흥사 보제루.

    육중한 석벽 위에 정면 7칸의 보제루가 웅장하게 서 있었다. 보제루는 절에 따라 만세루·구광루라고도 하나, 두루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보제루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운흥사의 중심 불전인 대웅전의 정면에 위치하고 있어 대체로 모든 법요식은 보제루에서 행하고 있다. 보제루 정면에 묵직한 풍채의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다포형식의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웅전은 1731년(영조 7년) 중건된 것으로 독특한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5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대웅전에 있는 감로탱화는 조선 중기 이후에 불화를 잘 그리기로 이름난 의겸이 그린 것으로 당시 일반인들의 생활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운흥사에는 보물 제1317호 운흥사괘불탱 및 궤가 있는데 인연이 닿지 않으면 좀처럼 보기가 쉽지 않다. 입상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여러 존상을 화면 가득 그린 영산회괘불탱과 괘불을 보관하는 궤이다. 괘불탱은 본존불을 화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그리고 그 양옆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했다. 화면 상단에는 관음보살과 세지보살, 2구의 타방불이 자리했다. 이 괘불탱은 조선 영조 6년 (1730년)에 승려화가 의겸 등이 그렸다. 신체 비례가 적당한 인물의 형태와 이목구비의 표현, 조화롭고 밝은 색채의 사용, 세련된 필치의 화려하고 정교하고 다양한 문양, 주된 인물을 중앙에 크게 그린 다음 기타 인물을 뒤로 물러나게 배치하는 구도법 등은 의겸의 특징적인 표현수법으로서, 국보급 탱화와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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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흥사 범종각.

    운흥사에는 영산전, 명부전 목조각상, 목제원패, 경판 등 30여 점의 소중한 문화재도 소장하고 있다.

    불연교를 건너면 500m쯤 떨어진 곳에 운흥사 부속암자인 낙서암과 천진암이 있다. 낙서도인이 수도했다는 낙서암은 물살이 세서, 이 물로 술을 빚으면 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또 천진암은 1692년(숙종 18) 응화선사가 창건한 암자로, 마루에 앉으면 풍광이 아름답다. 운흥사 순례 길에 하이면에 사는 손용희(35)씨가 동행했다. 바쁜 일손을 놓고 함께해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마산대학교 입학부처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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