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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각막이식 수술로 새 삶 사는 김석문 씨

“희망의 빛 얻었으니 마음의 빚 갚아야죠”

  • 기사입력 : 2015-06-1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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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막이식 수술을 받은 김석문씨가 창원시 마산 정안과에서 시각장애인협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씨는 시각장애인협회 사천시지회 컴퓨터 강사로 활동하며 시각장애인들을 돕고 있다./김승권 기자/

    선천적 수정체 발달 장애로 어릴 때부터 통증 시달리다
    40대 초반 시력저하 심해져 ‘1급 시각장애인’ 판정 받아

    운영하던 농장도 포기하고 10년 동안 집에서 두문불출

    2007년 각막이식 수술 통해 밝은 세상 보는 눈 선물 받아

    “집에만 머무르는 장애인에게소통하도록 컴퓨터 알려주며 받은 혜택 되돌려줄 겁니다”


    ▲눈, 오랜 시간의 고통

    김석문(62)씨는 1953년 12월 25일 태어났다. 크리스마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이다. 온 세상이 기뻐한 날 태어났건만 그는 그리 축복받은 삶을 살지 못했다. 적어도 세속적 의미에선 말이다. 그는 사천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 슬하에 막둥이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눈이 나빠 수업시간에 가장 앞자리에 앉았다. 책을 좋아했지만 한두 시간만 읽고 나면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당시만 해도 서부 경남에는 안과가 없었다. 도회지인 진주도 그나마 구색을 갖춘 의원은 이비인후과뿐이었고 부모님은 궁여지책으로 그를 이비인후과에 데리고 갔다. “이비인후과에서 눈을 어떻게 진찰했겠습니까. 참 무지한 시절이었죠.”

    그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선천적으로 수정체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눈이 아팠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40대 초반 옆 사람의 성별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눈이 나빠졌다. 서서히 저하되는 시력 문제를 그는 자각하지 못했고, 결국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보이던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식사를 예를 들어볼까요? 시각장애인은 밥그릇 주변 몇 가지로 먹을 수 있는 반찬이 한정돼요. 우리 아이는 밥상머리에서 말합니다. 아빠. 여기 수저 있어요. 오른쪽에 김치, 앞에 콩나물, 왼쪽에 불고기 있어요. 그럼 저는 그걸 기억해서 밥을 먹지요. 젊었던 아내 얼굴은 기억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 얼굴은 명확히 본 적이 없었죠. 목소리, 걸음걸이로 저 애가 첫째다, 막내다, 아는 거죠.”

    그는 잘 나가는 농업인이었다. 젖소 40여 마리를 키우고 논농사와 밭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모든 것을 접어야 했다. 때맞춰 젖소를 수정시키고 작물 병충해를 살펴야 했지만 눈 때문에 번번이 때를 놓쳤다. 깔끔했던 그의 농장은 점점 빛을 잃어갔다. 그의 두 눈과 삶도 빛을 잃었다. “이후 10년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혔죠.”

    ▲사랑의 각막이식

    ‘왜 내가?’라는 답 없는 물음으로 점철된 10년. 그 어둡고 긴 터널을 홀로 걷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비친 건 2007년이었다.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던 컴퓨터를 통해서였다. 2007년 11월 16일 경남시각장애인협회 홈페이지에서 ‘창원 정안과에서 각막이식수술을 무료로 해준다’는 공지문을 읽었다. 김씨가 본 공지문은 마산무학라이온스와 정안과, 경남신문이 공동으로 지원해 그해 9월 시작된 ‘사랑의 각막이식’ 수혜자를 찾는 내용이었다.

    “각막이 손상된 줄은 젊을 때부터 알았습니다. 20대 때 의사 선생님이 대뜸 그러시는 거예요. ‘이봐요, 젊은이. 교회에 열심히 다녀봐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선교활동을 하다 보면 외국에서 각막이식을 받을 수 있으니, 예수님 힘이라도 빌려보라는 조언이었던 것 같아요.”

    다음 날 당장 창원으로 정기용 원장을 찾았다. 하지만 마음만 너무 앞섰던 걸까. 눈 상태를 살펴본 정 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수십 년간 강한 약을 쓰다 보니 각막 손상이 너무 심해 이식을 해도 차도가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고 하셨죠.” 낙담해 집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어렵게 디딘 걸음을 멈추고 싶진 않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창원으로 가 병원 문도 열기 전 문 앞에서 정 원장을 기다렸다. “원장님을 붙들고 애원했죠. 안 보여도 되니까 수술시켜 달라고요.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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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5일, 다시 태어나다

    그의 열의를 본 정 원장은 그에게 12월 23일 내원하라고 했다. 다시 한 번 점검해보자는 거였다. 그날은 이미 각막이식이 확정된 대기자 4명이 수술하기로 예정돼 있던 날이었다. 하지만 한 환자가 개인적인 이유로 수술을 포기하면서 각막 한 쌍이 주인을 잃었다. 하지만 사실 각막은 제때, 주인을 제대로 찾아온 거였다. 대기하고 있던 김 씨에게 느닷없는 기회가 주어진 것. 정 원장은 그에게 당장 수술을 하자고 권했다. “얼떨떨했죠.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그날 수술을 받고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안대를 풀었다. 보이지 않던 정 원장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얼굴이 갸름하고, 안경을 쓰고 계시더군요. 이전에 원장님은 제게 가운을 입은 어렴풋한 실루엣으로 인식됐었죠. 얼마나 놀라웠는지 몰라요. 얼마나 밝은 세상, 얼마나 정교한 세상인지….”

    2007년 12월 25일. 그는 다시 태어났다. 그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시각장애인협회 사천시지회 컴퓨터 강사로 1급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집으로 방문해 컴퓨터를 가르친다. “혜택을 받았으니 세상에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컴퓨터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수리도 합니다. 간단한 컴퓨터 조립을 따로 배웠어요. 수리하러 가서 형편 어려운 사람들 밥도 사먹이고 옵니다.”

    사천시에 등록된 시각장애인은 700~800명. 그러나 시각장애인협회에 가입한 장애인은 120명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도 저처럼 집에 틀어박혀 있겠죠. 그분들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분들 모두 제가 알게 된 새 세상으로 초대하고 싶어요.” 각막이식을 받은 후 그는 각막이식수술 전도사가 됐다. 지인 2명을 소개해 이식도 받게 했다. “세상이 각박하긴 한가 봐요. 세상에 공짜가 어딨느냐며 저를 브로커, 사기꾼 취급하는 경우도 있었죠. 하하.”

    그에겐 스스로 감옥을 깬 자가 가질 수 있는 특유의 빛이 있었다. 그가 축복받지 못한 삶을 살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세속적이고 오만한, 세상의 잣대인지도 모른다. “기자님, 중요한 건 따로 있더라고요. 돈, 명예 다 중요한데, 눈이 머는 고통을 겪어 보면 전혀 다른 게 보여요. 그게 보이세요?”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사랑의 각막이식 수술 사업

    ‘사랑의 각막이식’은 지난 2007년 9월 마산무학라이온스, 정안과, 경남신문이 공동으로 시작해 지난달까지 57명의 수혜자를 탄생시켰다. 미국 내 한인들로 구성된 LA올림픽라이온스클럽으로부터 각막이식 봉사활동을 권유받은 마산무학라이온스가 경남에서 각막이식수술이 가능한 유일한 개인병원인 정안과 정기용 원장에게 의뢰했고, 정안과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동참했다. 한국 각막 기증자는 미국에 비해 수가 적어 수술에 필요한 각막은 미국 아이뱅크에서 공급받는다. 각막전달 비용은 마산무학라이온스와 미국 LA라이온스가, 수술비는 정안과가 부담한다.

    문의는 마산무학라이온스클럽(☏ 243-2601~3), 마산 정안과(☏ 252-1400)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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