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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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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우리가 잊고 지낸 밤하늘- 김태경(아동문학가)

  • 기사입력 : 2015-06-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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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하얀 가로등 불빛이 끝나는 지점, 나는 그곳에서 더 깊은 길로 들어간다. 늦은 시간이라 들어가고 나오는 차가 없는 한적한 시골길. 그 길 위에서 자동차의 전조등 불빛을 끈다. 그러자 한껏 나긋해진 밤바람이 온몸에 착 감기고, 거리낌 없이 반짝이는 별들이 나의 공간 안으로 쏟아진다. 묘한 설렘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 찰나에 느끼는 어둠과의 내밀한 만남이다. 진정한 어둠이 내려앉는 순간이기도 하다.

    인류 역사에 있어 ‘빛’이 생겨난 것은 어찌 보면 최근의 일이다. 1800년경 지상에서 가장 인구가 많았던 런던에서도 촛불과 횃불, 손전등으로도 잘 지냈다니 말이다. 하지만 인공의 빛이 넘실대는 지금, 우리는 ‘빛 공해’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사람과 자연 생명체에 필요 이상의 인공 빛으로 피해를 주는 것을 빛 공해라 한다. 이러한 인공 빛을 이용해 인간은 자연을 조작하게 되었으며, 밤과 낮의 순환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빛 공해는 자연계를 혼란에 빠뜨려 놓았다. 달빛과 별빛을 보며 이동하는 철새들이 휘황찬란한 미로 같은 빌딩 사이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죽어간다. 가로등 옆에서 환한 빛을 받는 가로수들은 단풍이 늦어지고 이로 인해 수명이 짧아진다고 한다. 그 환한 빛이 자연에게는 혼란과 불온의 신호인 것이다.

    국제어두운밤하늘협회 IDA(International Dark Sky Association)가 있다. 인공 빛으로 인해 더 이상 천문대를 세울 공간이 사라져가자 이를 염려한 천문학자들이 1988년에 설립한 협회다. IDA에서는 까다로운 기준으로 어두운 밤하늘 장소를 선정하며 보호 활동을 한다. 아시아권에서는 최초로 경북 영양군이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받기 위해 준비 중이라 한다. 밤하늘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다. 어둠만이 내려앉은 짙은 밤, 그곳의 밤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잊혀진 것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잊을 수 없는 순간, 절대 바래지지 않는 감치는 기억 한 조각이 있을 것이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쏟아지는 별빛의 세례를 받아 본 순간이 있는가. 그 밤하늘과 마주하는 순간이 우리가 살아있음을 가장 절실하게도, 절절히도 느끼는 순간이리라. 그렇게 삶의 한가운데, 초연해진 존재로 밤하늘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어둠이 내리고 밤이 되었건만, 우리는 너무나 밝은 세상에서 희뿌연 한숨을 뱉어내며 더 이상 가동될 여력도 없는 몸을 이끌고 살아가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인공 빛 때문에 별을 볼 수 없는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한다. 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수 없는 것 또한 빛 공해로 인한 피해이다. 이러한 빛 공해 속에서 우리는 완전한 휴식과 사유의 시간을 잃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밤, 그 시간은 어둠으로 젖어드는 침묵의 여정이 아닌, 생명의 리듬이 다시금 깨어날 수 있는 준비의 시간이다. 진정한 안식과 함께 모든 생명체의 살아있음이 증명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소생의 기운이 가득 찬, 어둠이 찾아오는 밤이다.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에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그리고 밤이 언제나 우리 곁을 찾아온다는 것은 또 얼마나 다행인가.

    김태경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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