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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 괴기치재(乖氣致災)- 어그러진 기운이 재앙을 불러온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5-06-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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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경의 산에 걸린 달 보며 통곡하고, 압록강에 부는 바람에 마음 아파한다네. 조정 신하들이여! 오늘 이후에도, 어찌 다시 서인이니 동인이니 할텐가?(痛哭關山月, 傷心鴨水風, 朝臣今日後, 寧復更西東)

    1592년 음력 4월 30만의 왜군이 대거 침략하자, 급히 서울을 빠져나가 피란길에 올랐던 선조(宣祖) 임금이 피난지 의주(義州) 압록강(鴨綠江)가에서 지었던 시이다.

    1575년 동서분당(東西分黨)으로 시작된 당쟁은, 평안도 함경도까지 왜적에게 유린당한 상황에서도 그치지 않았다.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옥에 갇혀 생명이 위태할 정도로 고문을 받은 것도 그 원인은 당쟁에 있었다. 임진왜란 7년 동안에 영의정, 도체찰사(都體察使) 등으로 팔도를 돌며 나라를 구하기에 여념이 없던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오국소인(誤國小人: 나라를 그르친 소인)으로 몰려 삭탈관작(削奪官爵)당하여 향리로 추방된 것도 당쟁 때문이었다.

    국가의 대사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 자기 당의 이해관계를 더 우선시하니, 나라가 잘 될 턱이 없었다. 우리는 조상들의 당쟁을 두고 늘 안타까워하고 좋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투쟁과 분열은 조선시대보다 못하지 않다. 지금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발생해 쉽게 방제가 되지 않아, 상당히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었는데도 의견이 분열돼 있다.

    여당과 야당,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여당은 여당 내부에서, 야당은 야당 내부에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거의 모든 일에 일치된 의견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

    질병이나 재난은, 미리 철저히 대비하면 대부분 막을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병들 ‘질(疾)’자에 보면, 화살 ‘시(矢)’자가 들어 있다. 갑골문(甲骨文)으로는, ‘사람 겨드랑이에 화살을 맞은 모양’이 원래의 ‘질(疾)’자다. 전쟁터에서 화살 맞는 것이 본인 의도하고는 상관없듯이, 병에 걸리는 것도 본인 생각하고 관계없이 뜻밖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감기가 유행할 때 걸리지 않겠다고 손 자주 씻고 양치질하고, 운동 열심히 하는데도 걸리는 수가 있다.

    메르스가 어떻게 우리나라에만 발생했는지? 꼭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세계 200여개 국가 가운데서 우리나라만 유독 심한가? 투쟁과 분열만 일삼다 보니 ‘나라의 기운’이 쇠약해진 것이다.

    입으로는 ‘애국’, ‘애국’하지만, 정작 국가민족을 위해서 국가 지도급 인사들이 어떻게 언행을 해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후한서(後漢書)에 ‘화합된 기운은 상서로움을 불러오고, 어그러진 기운은 재앙을 불러온다(和氣致祥, 乖氣致災)’란 말이 있다. 과학적이지 않다고 비난을 받을지 모르지만, 메르스의 조기 퇴치를 위해서 먼저 국론(國論)의 화합이 매우 중요하다.

    * 乖 : 어그러질 괴. * 氣 : 기운 기. * 致 : 이를 치. * 災 : 재앙 재.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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