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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라디오 수집광 김호준 마산예총 회장

“라디오는 듣는 게 아니라 보는 것, 그래서 예술품이죠”

  • 기사입력 : 2015-06-1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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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준 마산예총 회장이 자신이 수집한 세계 각국의 다양한 라디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 회장이 들고 있는 라디오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미국에 수출한 금성사 제품이다./김승권 기자/

    어린 시절 아버지 품에 안겨 잠자리에 들 때면 아버지는 항상 머리맡에 둔 라디오를 켰다. 그때쯤이면 라디오에선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전설 따라 삼천리’가 방송됐다. 그리고 라디오 속에 사람이 들어 있는 줄 알고 마냥 신기해 하며, 분해해 보기도 하고, 만지작거리다 고장을 내서 혼난 적도 있다. 라디오는 1960년대 후반 흑백TV가 보급되기 전까지 집안의 재산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귀중품으로 선반 위에 올려 보관했으며 아버지만 만질 수 있었다. 그런 라디오를 매일 품고 사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1000여 대씩이나.

    ◆라디오는 러브레터= 그는 라디오를 첫사랑의 러브레터이자 예술품이라고 말한다.

    라디오 수집가 김호준 마산예총(53) 회장이다.

    20여 년 전 미국유학 시절부터 수집한 라디오는 그에게는 보물이다.

    “첫사랑의 연애편지는 언제 읽어도 가슴이 뛰듯이 라디오를 보고 있으면 언제나 새롭고 가슴이 설렙니다.”

    그에게 라디오는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품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라디오는 우리가 흔히 봐왔던 사각형의 자그마한 것이 아니다.

    1920년대 제작된 냉장고 크기만한 진공관 라디오부터 1970년대 트랜지스터 라디오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그가 생활하는 곳에는 온통 라디오다. 집과 오케스트라 연습실, 창고뿐만 아니라 승용차 안까지 라디오로 수북하다.

    “1910~1920년대 라디오는 앤틱 목재가구처럼 고풍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귀품 있는 서랍장같이 보이지만 내부에 거대한 스피커가 숨겨져 있습니다.”

    특히 1930년대 초 제작한 영국제 페트 스콧은 가로 100㎝, 세로 66㎝, 높이 87㎝로 1000만원을 줘도 구하기 힘들 정도로 진귀한 라디오라고 한다.

    ◆라디오는 예술품=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거기에서 은은한 소리까지 울려 나오니 예술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게다가 오른쪽 젖꼭지를 돌려 주파수를 맞추는 여자인형 라디오, 주전자 모양은 물을 따르는 주둥이가 스피커이고, 수화기가 온오프 스위치로 쓰이는 전화기 모양, 좌변기, 골프채, 양주병, 피아노, 범선 모양 등 특이한 라디오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

    1934년 미국 애머슨사가 제작한 당시 최고급 라디오도 갖고 있다.

    “1930~1940년대 대표 라디오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지향하던 애머슨사의 라디오를 들 수 있습니다. 동양인들이 서양문물을 베끼기 바빴던 시절, 애머슨사는 한발 앞서 동양 문살 모양으로 만들고 자개의 원리를 이용해 나무를 세공한 꽃문양을 새기는 등 오리엔탈리즘을 지향했습니다.”

    노트북 크기의 상자 모양으로 생긴 이 라디오는 문을 열어야 전원이 들어온다. 문에는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고, 가운데 스피커에는 한자 ‘亞’(버금 아)자가 장식돼 있다. 또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가 1960년대 초에 제작한 모델도 10여 대 갖고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만든 강아지·쥐 인형 라디오도 갖고 있는데 얼핏 보면 인형 같지만 볼륨 스위치와 스피커가 달려 있다.

    ◆미국서 만난 ‘아리랑 라디오’= 작곡가이자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그가 왜 이렇게 많은 라디오를 수집하게 된 걸까. 20여 년 전 그의 미국유학 시절로 거슬러 가본다. 작곡가로 음악교육자로 음악인생을 시작해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배움의 열망은 그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1993년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대학원 음악이론 석사과정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갔다.

    외로운 미국유학 시절 국산 ‘아리랑 라디오’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그를 라디오 수집가로 만들었다.

    “그때 집 근처 길가에 중고물품 벼룩시장이 섰는데, 한 미국 할아버지가 국산 아리랑 라디오를 내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 이 라디오를 본 순간 친구를 만난 듯 아주 기뻤어요.”

    그는 가죽 케이스에 배터리를 고무줄로 묶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이 라디오를 5달러를 주고 샀다. 이 라디오 주인은 6·25전쟁 때 참전해 한국에서 근무를 하다 기념품으로 ‘아리랑 라디오’를 구입했고, 수십 년이 지나 우연히 한국 유학생의 눈에 띄어 이국 땅에서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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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준 마산예총 회장이 소장한 다양한 모양의 라디오들. 첫 번째 사진은 금성사 아리랑 라디오, 두 번째 사진은 동양 문살 모양이 들어간 애머슨사 라디오.

    ◆집 팔아 라디오 구입= 그는 이후 한국산 라디오가 보이면 모두 사겠다고 수집에 나서 지금까지 1000여 점의 소장품을 갖게 됐다. 그리고 1997년 한국으로 돌아올 때 컨테이너 4개 정도 규모의 라디오를 가지고 왔다. “당시 투자한 비용이 억대 정도는 될 겁니다. 유학 갈 때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파트를 팔았는데, 학비·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라디오 구입에 썼으니까요.”

    그 당시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가구 등을 사왔는데, 그의 짐은 냉장고, 책 정도였고, 나머지는 모두 라디오였다고 한다.

    그리고 유학 시절 옆집에 오디오·라디오 전문가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라디오의 역사도 알게 됐고, 어디에서 어떤 라디오를 구입할 수 있는지 알려줘 보물 같은 라디오를 수집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관심= 그는 마산이 고향이다. 마산회원초등학교, 창신중학교, 마산용마고, 경남대 음악교육과, 연세대 교육대학원을 수료하고, 부산예술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도 재직했다. 현재는 창원시 청소년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창원시윈드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다. 초등학교 때 리듬합주부에 들어가 작은북을 치면서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오디오가 없던 시절이라 마산 창동에 있는 전파상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면 오랫동안 그 앞에서 멈춰 서 있곤 했다고 한다. 또 브라스밴드에서 활동하기 위해 마산용마고(당시 마산상고)로 진학할 정도로 심취했다. 스스로 음악공부를 하면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대학 작곡과로 진학했다.

    ◆창원의 문화콘텐츠로= “라디오 박물관을 만들어 어른에게는 추억의 장소로, 신세대들에게는 아날로그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곳으로 조성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구하기 힘든 라디오를 잘 정리해 가꾸면 관광자원 겸 문화콘텐츠로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부산과 양산의 문화콘텐츠 기획자가 전시관 설립 제안을 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이왕이면 고향인 마산에 설립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그는 “마산의 1세대 문화예술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지역의 역사성이 있는 자료와 문헌을 체계화시켜 라디오박물관과 공유하면 창원만의 문화콘텐츠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며 창원시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이종훈 기자 leej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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