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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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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등- 강희근

  • 기사입력 : 2015-06-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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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에 글을 써다오

    나는 흐르고 흐른 뒤 기슭이나 언덕

    어디 햇빛

    어디 구름들 아래 이그러지다가

    생을 마치리라

    글을 써다오

    생이라면 글줄이 있어서, 먹물 같은

    캄캄함이 있어서

    택배로 사는 노동을 다하다가

    마감 날 떳떳이 지리라

    여인이 있다면 여인의 눈썹으로 뜨는 글

    수자리로 가는 남자 있다면 남자의

    태극기로 펄럭이는 글

    적어다오

    내 몸은 불길 번지는 화선지

    아직은 여백이다

    ☞ 불을 밝혔다는 것은 생명성을 상징한다. 그 불이 꺼지는 찰나가 생명의 소멸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유등의 불빛은 시인에게 존재에 대한 애끈한 인식을 소환했을 듯하다. 불을 밝힌 채 죽음(불의 꺼짐)을 향하여 정처 없는 검은 강을 떠내려가는 유등에서 시인은 문득, 죽음이라는 바다를 향해 인생의 강을 떠내려가는 ‘나’의 존재에 대해 애끈히 발을 굴렸을지도 모를 일…. 어느 유등 축제의 한복판에서 이름도 없이 스러져가는 유등의 생명성 앞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려는 ‘글 쓰기’는 풀꽃같이, 잡초같이 스러져가는 ‘나’나 ‘너’를 향한 애끊는 사랑이나 다름없다. 조예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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