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작가칼럼] 들판에게 길을 묻다- 조은길(시인)

  • 기사입력 : 2015-06-26 07:00:00
  •   
  • 메인이미지

    들판을 좋아한다. 들판 중에서도 초록카펫을 깔아놓은 듯 팽팽한 소년들판을 제일 좋아한다. 그곳에는 빛과 어둠이 공평하게 배분되는 곳이다. 밥과 옷과 잠이 공평하게 배분되는 곳이다. 그리하여 그곳에는 잘남도 못남도 귀함도 천함도 없다. 모함도 배신도 왕따도 없다. 좌익도 우익도 화염병도 쇠파이프도 없다. 불의의 사고도 불의의 이별도 없다. 십계명도 도덕경도 천국도 지옥도 없다. 그리하여 아무런 근심걱정 없는 육체들의 직립. 아무런 근심걱정 없는 육체들의 상승. 아무런 근심걱정 없는 육체들의 연애. 아무런 근심걱정 없는 육체들의 황혼. 아무런 근심걱정 없는 육체들의 소멸.

    나는 마음이 몹시 어지러울 때나 좌절감 같은 것이 엄습하는 날이면 들판으로 간다. 하지만 들판이 원경으로 보이는 산등성이 언덕배기나 둑길을 걸으며 그들의 불화(?) 없는 상승이 뿜어내고 있는 평화로움이나 생기로움의 기운을 눈으로 취할 뿐 직접 그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아니 들어갈 수가 없다.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처지를 비관해 농약을 먹었다는 고향마을 머슴소년이 멍하니 뜬눈으로 쓰러져 있을 것만 같고 뱀이 개구리를 베어 물고 개구리가 여치를 베어 물고 여치가 사마귀를 베어 물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웠던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고 새로운 상승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은 내 마음의 보루인 들판 이미지를 잃고 싶지 않은 일종의 현실도피 심리일 것이다.

    우리들은 저 초록빛 찬란한 들판처럼 살 수는 없는 걸까! 생각하면 인간의 행불행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욕망보다 편견인 것 같다. 약육강식 먹이사슬 사회구조에서 욕망은 끼리끼리 경쟁하며 상승하는 원동력이 되는 순기능도 있지만 인간의 역사를 타고 의식 속으로 서서히 굳어진 편견의식이야말로 그것의 덫에 갇히면 개인이든 사회이든 누명 쓴 죄인처럼 헤어 나오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 2위를 다투는 불행한 나라가 된 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부끄러운 수치를 가지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조상 때부터 문필을 유난히 우월시하는 문필우월주의 편견의식 때문인 것 같다. 문필우월주의 편견의식은 학벌지상주의를 낳고, 성적지상주의를 낳는다. 학교공부와 전혀 다른 소질을 타고난 학생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능력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자신이 좋아하는 일하고는 거리가 먼 문필의 언저리에 겨우 매달려 있거나 사회부적응자의 늪으로 빠져버리기도 한다.

    만약에 빌 게이츠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바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처럼 유수한 한국의 빌 게이츠들이 문필우월주의 편견의식의 희생양이 되어 시들어갔는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문필우월주의 편견의식이야말로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신종 유행병이나 암보다도 치사율이 높은 고질 유행병인지도 모른다.

    나의 글쓰기가 운명적으로 타고난 자질에 이끌려 쓰는 것인지! 아니면 문필우월주의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 글이 잘 안 써진다느니 글쓰기가 힘들다느니 넋두리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조은길 (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