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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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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법은 약자 편인가- 민태식(내외법무법인 변호사)

  • 기사입력 : 2015-07-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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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이 프랑스 지역의 영토를 잃어 가던 13세기 초에 존 왕은 전쟁비용을 마련하려고 세금을 인상하자 귀족들이 반발했고, 교황과도 갈등이 생겨 반란이 일어났고 수세에 몰린 존 왕이 귀족들의 요구에 굴복해 대헌장(Magna Carta)이 제정됐다.

    주요 내용은 세금을 올리려면 귀족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귀족들로 이뤄진 법정 재판에 의하지 않고는 구속되거나 재산이 박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당시 귀족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지 민주주의와는 무관했다. 하지만 후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기로에서 법의 보호를 받는 대상을 평민으로 확대할 때 해석의 기준이 됐고, 역사적으로 민주주의, 의회주의, 법치주의의 기틀로 평가되고 있다.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노라면 법은 기본적으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시민들에게 제재를 가하려면 시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부당한 법률에 의해서 탄압받을 수도 있지 않으냐고 항변할 수도 있으나 최소한 그 부당한 법률에라도 정해지지 않은 내용으로는 처벌받지 않는 것이므로 의회주의와 법치주의는 인류가 개발한 중요한 업적이다.

    우리나라도 총칼로 지배하는 암흑기는 지나가고 이제는 돈과 말과 법으로 서로 다투는 시대가 됐고, 사회적인 강자, 약자 모두 법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언론에서도 형사재판, 이혼재판이나 특이한 사건의 재판 결과가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재판을 통해서 법적 제도들이 시행되고 개발되다 보면 사건 자체의 궁극적인 해결보다는 부수적인(collateral) 효과 또는 다른 목적을 노리거나 상대방에게 재판 과정상의 고통을 주기 위해서 법적인 공격을 가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 예를 들어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거나 또는 상대방 재산을 재판기간 동안 이용하지 못하도록 가압류로 묶어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014년 지방선거 기간에 고승덕 후보에 대해 ‘이중국적 의혹이 있으니 해명하라’고 말한 것에 대해 고승덕 측은 고소하지도 않았고 선거 후에 별문제 삼지 않기로 했는데 뜻밖에 제삼자인 보수단체에서 허위사실 공표로 인한 위법한 선거운동이라고 고발했고, 검찰도 기한 마지막 날에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도 뭐 이런 시시한 내용으로 재판까지 하느냐는 분위기였다는데 재판 결과는 당선무효형인 벌금 500만원이 선고되고 말았다.

    조희연 후보가 직접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은 실수라고 할 수도 있고 혹 유죄일 수는 있지만, 저지른 내용에 비해서는 결과가 너무 중하고 만일 선거를 다시 치른다면 선거비용 면에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해 근래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고발은 희극이라고 할 만하다. 박 시장이 메르스에 관련한 발병 상황과 삼성서울병원 의사의 행적을 밝힌 데 대해 현직 개업의사가 ‘의료혁신투쟁위원회’라는 단체를 만든 당일 박 시장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해 사회를 혼란하게 했다’는 내용으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아마도 조희연 교육감에 대해 재미를 봤으니 죄가 되든 안 되든 시비를 걸어서, 아니면 말고 또는 운(?)이 좋아서 유죄가 되면 또 한 번 더 재미를 볼 수도 있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된다.

    법에 허용된 공격방법을 쓰는 것 자체는 형식적으로는 위법한 것은 아니니 가타부타 함부로 말할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좋지 않은 결과로 귀결된 일이 적지 않다. 법을 이용한 투쟁이 난무하는 와중에 검찰, 법원이라도 중심을 잡고 공명정대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덩달아 같이 휩쓸리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자주 발생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민태식 (내외법무법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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