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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일상탐독 (10) 김연수/청춘의 문장들

  • 기사입력 : 2015-07-02 10: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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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척이나 아끼는 책을 군부대에 두고 온 일이 있다.

    아니다. 고의로 두고 오지는 않았으니 내 입장에선 잃어버렸다고 해야 옳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특별히 아껴 장만했던 책 몇 권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삭막한 군부대에 남겨진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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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면 눈이 많이 내려 도로가 얼고, 휴가 나온 장병들이 속을 푸는 해장국집과 정원수를 파는 화원이 즐비했던 북한산 아래의 그 군부대.

    꼭 그 곳이 아니더라도, 거리에서 군복을 입은 앳된 청년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나는 자연히 이창래, 아고타 크리스토프, 유시민, 김연수의 책을 떠올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군대'를 생각하면 조건반사적으로 '책'을 떠올리는 여자. 그런 여자가 대한민국에 과연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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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소에 들어가 군사교육을 받아보니 이건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수련회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들었다. 훈련소에서 그나마 인간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PX뿐이었지만, 신병들에게는 일과시간에 바라보는 관물대의 담요와 같은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땀 빼는 게 싫어서 축구를 할라치면 골키퍼만 보던 사람이었다. 그런 주제에 훈련소에서 조교들의 명령에 따라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다 보니까 도대체 나 같은 사람까지 꼭 군대에 와야만 하는가하는, 대단히 실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대단히 이기적인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라를 지킬 정도의 남자라면 근육도 발달하고 키도 커야만할 것 같은데, 내 타고난 기질로는 불가능해보였다. 하지만 어디를 보나 그렇다고 대대장에게 면담을 신청해 그 놀라운 결과를 알릴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4주간의 훈련을 통해 세상 일이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정말 뼈저리게. 삶이 입 속의 혀 같은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이리저리 돌려도 보고 힘들긴 해도 뒤집어보기도 할 텐데, 세상일이 그렇지는 않더라는 거. 그제야 진심으로, 온몸으로, 전면적으로, 총체적으로 겁이 났다. 개구리 마크가 달린 모자를 하늘로 내던지며 제발로 위병소를 걸어나가지 않는 한, 이제 내가 빠져나갈 구멍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지금같으면 '기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적장비인원식별이나 마스터하자'고 생각했겠지만, 이십대 초반의 사고체계에는 그런 긍정적인 회로란 없었다.' - 마음산책/김연수/'청춘의 문장들' 15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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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은 2009년 5월에 입대했다. 논산으로 떠나는 버스에 오르던 녀석의 뒷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굉장히 극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유난히 쨍쨍하던 햇살 아래 짐짓 무덤덤하게 보이려 애쓰던 부모님의 얼굴. 우리에겐 '몸 건강히 잘 있다가 오라'는, 하나마나한 인사 밖엔 해줄 것이 없었다. 동생은 논산까지 가족이 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녀석은 꿋꿋이 혼자 갔다.

    그로부터 보름 뒤쯤 집으로 소포가 하나 배달됐다. 그 속엔 동생이 입고 간 티셔츠와 바지, 야구모자, 휴대폰 등 국가가 수용할 수 없는 '민간인의 부속품'이 들어있었다.

    그날 오후 우리 집은 한마디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어머니는 녀석의 티셔츠를 부둥켜 안고, 나는 녀석의 바지를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실 소포를 받아들던 순간의 기분은, 뭐랄까, 상당히 비장한 것이었다.

    집밥도 먹이지 못하고, 옷도 사입히지 못하고, 얼굴도 목소리도 마음대로 보고 들을 수 없다는 것. 그 아이와 우리 사이에 폭력과 위력을 동반한 단단한 철창이 드리워졌다는 것.

    그건 살면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종류의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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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어찌 시간은 흘러 훈련소와 종합군수학교를 거친 동생은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56사단 218연대 본부중대에 배치됐다. 간단히 말해 이 나라의 수도인 서울을 지키게 된 거다.

    자대 배치 후 가끔 집으로 전화를 걸 수 있게 되었을 때, 녀석은 "힘들어 죽고 싶을 정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무슨 빽으로 여기 온 거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좋은 보직을 받았지만 군대는 어쩔 수 없는 군대였던 모양이었다.

    동생이 해야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는데, 보급물품을 관리하는 행정업무와 지휘통제실 상황보고 업무, 막사를 청소하고 관리하는 잡무 등이었다. 이 세가지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순환됐는데, 그 방법이나 순서를 가르쳐주는 선임은 거의 없었고 '알아서 해보라'고 시킨 뒤 못하면 비인격적인 모욕과 질타를 쏟아붓기 일쑤였다.

    동생은 '군인답게'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깨쳐야했다.

    그런 일상적인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겨울엔 혹한기 훈련이 있었고 여름엔 유격이 있었다. 때때로 대민지원도 나갔는데, 말이 거창해 대민지원이지 한마디로 '삽질'을 하러 나가는 거였다. 겨울이면 눈이 많이 와 군대가 동원돼 눈을 치우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남쪽 바닷가에서 20년을 넘게 산 '경상도 머슴아'가 '눈이라면 이가 갈릴 정도로 지긋지긋하다'며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으니, 동생이 2년여 동안 했을 삽질이 얼마나 허다했을지.
    그러나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는 동생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여전히 '몸 건강히 잘 있다 오라'는 하나마나한 말 한마디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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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즈음 나는 조울증에 시달렸다. 아주 사소한 일에 희망과 절망을 번갈아 오르내렸다. 어설프게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를 향해 내 모든 것을 던져버리겠다는 식으로 매달렸고 내 예민한 신경을 건드리는 사람에게는 마음속으로 죽여버리겠다는 욕설을 퍼부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의 행태와 비슷했다.

    나를 부대에 버려두고 도망간 주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젊음이었을까? 삶이었을까?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고장으로 여행을 떠났으면, 밤새 술을 마시고 하루종일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면 등등이 내 소박한 소원이었다. 하지만 삶은, 젊음은 그 정도도 내게 해주지 않았다.

    사단본부에서 내려오는 훈령보다도 못한 게 삶이었고 젊음이었다.… 부대에서 잠을 자노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잤는데, 병장 녀석 하나가 새로 온 신병을 자신의 침낭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갖은 애를 다 쓰고 있었다. 앞으로, 뒤로, 옆으로, 병장 녀석은 죽부인이라도 되는 양 신병을 이리저리 돌리며 몇 번 시도하더니 결국 뜻을 이루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그 좁은 침낭 안에서 병장의 품에 안긴 신병은 멍하니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텔레비전 화면만 바라봤다. 누구도 그 병장을 제지하지 않았다. 나는 침낭에 웅크리고 누워 그 신병을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생각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우리는 애당초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 마음산책/김연수/'청춘의 문장들' 15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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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문에 동생이 휴가를 나온 어느 날 '읽을 책을 좀 보내달라'고 말했을 때, 나도 드디어 군장병의 누이로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건가 싶었다.

    일병과 상병 시절, 녀석은 몰라보게 노련해져 있었다. 걸음걸이나 앉음새, 얼굴 표정 같은 거동 하나하나에서 제법 '군인 아저씨' 티가 묻어나온다고 해야할까. 동생은 어느새 보급물품을 정산하는 '엑셀'을 다루는데 빌 게이츠만큼이나 도가 텄고, 컴퓨터 자판을 치면서 양 어깨에 송수화기 하나씩 끼우고 두 통의 전화를 동시에 받을 수 있는 '행정병기'가 되어 있었다.

    창고에 숨어들어 간부식당 취사병이 몰래 숨겨온 '장군들의 진미'도 맛보고, 어느 정도 배를 불린 후엔 창고 귀퉁이에서 대자로 뻗어 낮잠을 자는 여유도 부릴 줄 알게 됐다.

    나는 서점에서 당시 내가 '양서'라고 생각하는 책들을 사서 수시로 올려보냈다. 그렇게 창원에서 서울로 상경한 책이 어림잡아 15권은 족히 됐을 것이다. 동생은 그중 이창래의 소설과 김연수의 에세이가 좋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특히 김연수의 에세이에는 군대 이야기가 많아 큰 위로를 얻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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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저리 시간은 흘러 2011년 3월 꽃 피는 봄에 동생은 제대를 했다. 집밥도 먹일 수 있고 옷도 사 입힐 수 있고, 수시로 얼굴을 보고 목소리로 들을 수 있게 된 거다. 동생과 우리 가족 사이에 놓여있던 위압적인 철창이 사라지자, 녀석은 다시 조금은 뺀질뺀질하고 조금은 귀엽고 조금은 허술한, 우리집 막내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대체 언제 아들의 옷을 부여잡고 피눈물을 흘린 모성이었나 싶게 20대 초반의 민간인에게 '일찍 자라' '물 좀 아껴써라' '고기 말고 채소도 먹어라'는 등의 군대 선임같은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동생에게 '내가 보내 준 책들은 어디있냐'고 물었더니, 녀석은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안 가져왔다'는, 참으로 무심한 대답을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군대'를 생각하면 조건반사적으로 '책'을 떠올리는 사람이 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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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관사에서 부대로 넘어가려면 헬기장을 넘어서야만 했다. 그 헬기장을 지날 때면 나는 늘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리온, 카시오페이아, 큰곰자리 같은 별자리들. 그 별자리들은 무슨 힘으로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힘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나는 왜 거기 있지 않고 여기 있는 것일까? 나는 왜 네가 아니고 나인 것일까? 때로는 취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 그게 바로 젊음이라는 것이었다.

    인생이란 취하고 또 취해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날 같은 것. 꿈꾸다 깨어나면 또 여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곳. 군대에서 깨달은 '삶의 유일무이한 비밀'은 그런 것이었다. 그걸 알았더라면 기동도 잘하고 타격도 열심히 했을 텐데. 캔맥주도 벌컥벌컥 들이켜고 죽부인이 그리운 병장에게 '거, 꼴이 상당히 우습기만 합니다'라고 한마디 했을텐데. 하지만 여전히 나는 깨어나봐야 날이 저물지 않았음을 알고는 꿈만 꾸고 있는 게 아닌가? - 마음산책/김연수/'청춘의 문장들' 16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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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에게 보낸 김연수의 에세이가 바로 '청춘의 문장들'이었다.

    소설가 김연수가 고등학교 때부터 군대, 대학시절의 푸르렀던 청춘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를 이백, 이서구, 이시바시 히데노 등 여러 문학가의 아름다운 문장과 함께 기록한 책이다. 


    얼마 전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청춘의 문장들 플러스'라는, 10년 뒤 김연수가 '청춘의 문장들' 속편이나 후기 형식으로 쓴 또다른 에세이가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한참이나 두 책을 번갈아가며 만지작거리다가 '청춘의 문장들'만 들고나와 계산대로 향했다.

    '청춘의 문장'은 글쓴이가 청춘일 때만, 읽는 이가 청춘일 때만 유효한 것이니까. 10년 늙은 김연수가 적은 청춘의 문장도, 5년 늙은 내가 읽는 청춘의 문장도 시든 꽃을 엮어 꽃다발을 만든 것처럼 어색할 것만 같았다.


    그러고보니 내 청춘도 서서히, 그러나 빠르게 지나가나보다.

    한때는 동생이 헌신짝 버리듯 두고 온 몇 권의 책이 그저 아까워 애가 탔다면 지금은 오히려 한 서른 권쯤 더 보낼걸 하는 후회가 들기 때문이다.

    동생이 제대한 이후로 북한산을 거쳐간 수많은 군장병들이 그 책들을 읽고 위로받으며 '죽고 싶도록 힘든 날들'을 견디었으면 하는, 진정한 군병장의 누이와 같은 마음이 되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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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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