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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진주오광대 보존회장 강동옥씨

“풍자와 해학 담은 탈춤에 시대상 녹여 계승해야죠”
80년대 대학 동아리에서 탈춤·농악·사물놀이 접해

  • 기사입력 : 2015-07-0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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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춤은 민중예술의 종합체다. 노래, 춤, 연극적 요소, 해학과 풍자 미학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전통문화인 탈춤을 복원하고, 시대상에 맞게 재해석 발전시키는 데 힘쓰는 이가 있다.
     
    진주오광대 보존회장이자 풍류춤연구소 대표인 강동옥(53)씨는 춤의 신명에 빠져든 사람이다.
     
    강씨는 박제화된 탈춤이 아니라 살아있는 탈춤을 보여주겠다며 창작탈춤에도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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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옥 진주오광대 예능보유자가 오광대 공연에 쓰이는 문둥이탈을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대학동아리에서 탈춤을 접하다

    민중예술인 탈춤은 군사정권 시절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발했다. 81학번인 강씨는 경상대 ‘전통문화예술연구회’라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탈춤, 농악, 사물놀이를 접했다. 그 시절 대학은 데모로 시작해서 데모로 마치는 시절이었다. 전통문화예술연구회는 북과 꽹과리로 시위의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 대동제 때면 군사정권과 재벌의 부패를 비꼬는 풍자극을 올렸다.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들은 졸업 후에도 문화운동에 뛰어드는 것을 시대적 사명으로 여겼다.

    그도 졸업 후 1985~1990년 진주지역 마당극 전문 극단인 ‘큰들’에서 작품 제작과 공연, 문화예술 교육을 했다.

    스스로 소질이 없다는 생각에 큰들을 그만두고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겼다. 지역 생명보험사가 그의 첫 직장이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출근하는 아침이면 사라졌다가도, 저녁이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IMF를 겪으면서 미련없이 다시 춤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표현대로 자발적 가난의 길로 접어들었다. 생계는 아내 몫이었다. 다행인 것은 아내가 큰들 출신이라 별 반대는 없었다.

    ◆진주오광대 복원에 뛰어들다

    강씨가 직장을 그만두게 된 것은 당시 경상대 김수업 교수를 중심으로 진주오광대 복원운동이 계기였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면서 본격적으로 이 사업에 동참했다. 이론적인 것은 학계에서 하고, 그는 연희 복원을 맡았다.

    “진주는 민속예술이 발달한 곳입니다. 진주삼천포 농악, 진주검무, 한량무, 가야금산조 등 도지정문화재가 6개입니다. 진주오광대는 일본강점기 때 중단돼 잊혀 가고 있었습니다. 복원운동을 하면서 탈춤을 했거나 탈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1998년 60년 동안 중단됐던 진주오광대를 복원했고, 2003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됐다. 강씨는 하계윤씨와 함께 진주오광대 예능보유자 후보로 지정됐으며, 2010년 예능보유자가 됐다. 2012년부터 진주오광대 보존회장을 맡아 이끌어오고 있다.

    ◆20년째 진주탈춤한마당 주도

    강씨와 진주탈춤한마당은 떼어놓을 수 없다. 진주오광대라는 소중한 자산을 지역의 공동체 축제로 만들고 싶어 시작한 것이 진주탈춤한마당이다. 오광대 복원에 앞서 1996년부터 시작된 진주탈춤한마당에서 그는 총괄기획을 맡아오다 3회 때부터 지난해까지 집행위원장을 맡는 등 20년째 이끌어오고 있다. 진주탈춤한마당과 진주오광대는 어머니와 자식 같은 관계다. 진주탈춤한마당은 2007년 중국, 일본이 참여하는 동아시아탈춤축전으로 성장했고, 2013년부터 ‘주제가 있는 현대적 탈춤’으로 정착해 오고 있다.

    “민간주도로 시작한 한국 최초의 탈춤 축제입니다. 오랫동안 지역의 삼광문화연구재단에서 돈을 댔죠. 이후 지자체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진주탈춤한마당을 보고 안동시에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만들었습니다.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지역특화 상품으로 키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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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오광대 중 양반춤 독무.
    ◆창작탈춤으로 계승 발전

    그는 박제화된 탈춤을 경계했다. 진주오광대는 지정받은 양식대로 전승하되, 탈춤의 정신인 생명력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보고 싶었다.

    “탈춤은 극, 노래, 연극, 악가무의 종합예술입니다. 오광대를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전통춤을 배웠습니다. 승무·살풀이춤, 지전춤, 북춤, 한량무, 덧배기춤 등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익혔습니다.”

    오광대의 정신인 민중성을 시대에 맞게 구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풍류춤연구소를 만들었다. 오광대는 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하고, 그 정신을 살린 창작탈춤은 풍류춤연구소를 중심으로 이원화했다. 창작탈춤으로 ‘백정’ 작품은 일본공연도 다녀왔다.

    “박제화된 탈춤을 살아있는 탈춤으로 끌어내는 것, 그게 창작탈춤입니다. 지역을 소재로 한 창작탈춤을 만들었습니다. 왜 다른 춤을 하느냐는 비판도 있긴 합니다만, 오히려 다른 춤의 장점을 가져와 더 좋은 탈춤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풍류춤연구소는 전통춤 레퍼토리를 공연하면서 지역을 소재로 한 시대성을 담은 창작탈춤을 해오고 있다.

    그는 예술은 세상의 아픈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지 않는 상처들을 예술마저 보듬지 못한다면 예술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세 모녀 자살사건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고,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도 준비 중이다.

    세월호 추모행사와 6·25전쟁 민간인 학술 추모제 공연도 했다. 그는 민예총 진주지회장을 맡아오다 지난해부터 경남민예총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환경 열악해 전승자 없어

    진주오광대보존회장과 풍류춤연구소 대표를 맡고 보니 어려운 점도 많다. 진주오광대가 도문화재이지만 월 예능보유자 80만원, 단체 60만원이 지원액의 전부다.

    소모품비로 쓰고 나면 사무직원 인건비도 안 된다. 그는 어렵게 말을 뗀다. “전반적인 환경이 열악하니 전승자가 없습니다. 미래가 불안하니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 인적 재생산이 안 됩니다. 지금의 무형문화재 정책은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예능보유자를 빼고 진주오광대 회원 30명도 겸업자들이다. 그래도 30년 이상을 같이해 온 이 길을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 믿는다.

    “팔자려니 생각합니다. 1980년대 탈춤반은 문화운동을 하는 것을 시대적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신명으로 시작했는데, 정치·사회적 환경이 전통예술을 즐기기만 하는 게 아니라 문화운동으로 지향하게 만들었지요. 탈춤을 통해서 좋은 세상, 사람 사는 세상 만드는 데 역할을 하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학수 기자 leehs@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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