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16일 (월)
전체메뉴

사과하는 용기를 보고 싶다- 고증식(시인)

  • 기사입력 : 2015-07-07 07:00:00
  •   
  • 메인이미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여러 부류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는 자신이 뭔가 잘못했을 때 쉽게 잘못을 인정하는 학생과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버티는 학생들로 나눠볼 수도 있다. 앞의 경우야 ‘죄송합니다’라든지 ‘잘못했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면 금세 눈 녹듯 해결되고 말지만, 뒤의 부류들은 끝까지 진을 빼고도 대부분 찝찝한 뒷맛을 남기며 상황을 끝내기 일쑤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잡아떼거나 엉뚱한 사람을 모함한다고 오히려 제풀에 펄펄 뛰다가 확실한 증거를 들이밀면 그제야 입을 딱 다물어 버린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경우는 잘 없다. 사과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인데 왜 그렇게까지 상황을 몰고 가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사과를 잘 안하기로는 단연 정치 집단을 꼽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멀쩡하던 사람도 그 집단에 편입되기만 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쩜 그리도 하나같이 사과에 인색하게 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사과란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과에 인색하다는 말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버틴다는 편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실수에 따르는 사과 한마디도 이렇게 힘든데 사죄야 오죽하겠는가. 사과에 인색한 정치인을 찾아 일본의 아베 총리까지 갈 것도 없다. 가까이 우리 대통령에 총리에 무슨무슨 장관과 국회의원들만 돌아봐도 충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국민들은 솔직한 사과나 진정한 사죄에 목말라 있다.

    가령 성완종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인사들 중에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하는 인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진정한 사과란 재발 방지의 또 다른 약속이니 모르긴 해도 우리 국민들 대다수는 그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나 또한 그런 인사가 있었다면 그를 믿고 따르는 열성 지지자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봐도 뻔한 일을 왜 그들은 끝까지 발뺌으로만 일관하다가 기어이 나락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은 타이밍이란 말이 있듯 사과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얼마 전 표절시비로 인한 사실 인정과 사과 여부가 한바탕 문학판을 휩쓸고 지나갔다.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듯 이 문제도 처음 불거졌을 때 납득할 만한 해명에 진정성 있는 사과가 따랐더라면 그렇게까지 사태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 표절 문제가 제기됐을 때 작가나 출판사의 대응 태도가 어디서 많이 보던 방식이었다. 말장난하듯 잡아떼며 두루뭉수리 넘어가려는 태도가 정치판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문학 동네까지 쉰내 나는 정치판을 닮아가고 있는 건지 답답하고 개탄스러울 따름이었다. 신경숙이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는 몰라도 저처럼 오만에 물들고 진정성에 구멍 난 작가라면 별 소중할 게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명 비슷한 말을 내놓기는 했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쳐버린 사과는 몇 배 더 강도를 높여도 궁색함이 묻어나는 걸 어쩔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람인 거다. 하지만 명백하게 잘못을 하고서도 사과할 줄 모르면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바라는 인간은 실수 없는 완벽한 인간을 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잘못을 바로잡기에 앞서 그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인간의 모습을 먼저 보고 싶은 것이다.

    고증식 (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