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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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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여행의 시작도 교육에서 출발한다- 정정헌(마산대 외래교수)

  • 기사입력 : 2015-07-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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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7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다.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교육의 일환으로 문화유적지나 박물관을 즐겨 찾기도 할 것이다.

    필자도 몇 년 전 방학 중에 경주를 찾을 기회가 있었는데, 자녀들과 함께 문화유적에 관한 책자에 밑줄을 그어가면서 진지하게 공부하던 학부모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장면이 새롭기도 해서 가슴 찡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여행하면 누구나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어디를 갔는지 그 전체적인 분위기는 기억 속에 어슴푸레 남아 있지만,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느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이러한 30~40년 전의 수학여행문화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수학여행은 수업의 연장이라는 구호에 그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전교육이 필요하다. 평생에 한두 번밖에 갈 기회가 없는 소중한 곳임에도 턱없이 부족한 관람시간 때문에 쓰렁쓰렁 보고는 다음 여행지로 출발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박물관은 우리 민족과 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창조와 재생산의 공간이며 무궁무진한 상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유물 하나하나에 선조의 삶과 생활의 지혜로 가득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 각기 꿈꾸는 자신의 미래가 박물관에 모여 있는 것이다.

    문학도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창작의 모티프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각기 관심사에 따라 물리학, 민속학, 역사학, 미학의 원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칠 것이 아니라 관심 갖는 하나의 유물에라도 천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무엇을 볼 것인지, 무엇이 가치 있는 유물인지에 대한 사전 교육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유물을 직접 눈으로 보는 일차적인 감동에 그쳐서는 안 되며 현실과 상상의 산물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여행문화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바로 안내문이다. 유적지나 유물의 안내문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초등교육과정을 마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다음은 창원지역 모 사찰의 대웅전 안내문의 일부이다.

    “신라 흥덕왕 10년(835년)에 무염국사가 창건하였으며 그 후 진경대사의 중건을 거쳐 조선조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숙종 7년(1681년)에 다시 중창하였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5량 구조로 맞배지붕을 한 다포계 건물이다. 어칸과 협칸의 간격은 거의 같아 각 칸에는 공간포가 2구씩 배치되어 있으나 특이하게 공포 간격이 일치하지 않는다.”

    앞부분의 역사적인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웅전의 건축 특징을 설명하는 부분은 기본적으로 한옥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현학적인 안내문은 안내문의 본래 취지와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오죽했으면 한국의 안내문을 두고 석·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비아냥거리는 말이 생겼겠는가.

    이럴진대 안내문은 안내문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상실한 의미 없는 한낱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문제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소양교육의 일환으로 해결하든지, 아니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구로 개선하는 정책과 노력이 필요하다.

    학창시절의 여행과 문화유적지에 대한 관람 태도와 방법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수박겉핥기식 방법과 현학적인 문구들은 오히려 유물과 유적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여행은 시작부터가 중요하다.

    정정헌 (마산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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