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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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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기로에 선 대통령·의회 관계- 김욱(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5-07-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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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시작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거취 논란이 2주일 만에 유 원내대표의 사퇴로 정리됐다. 이번 사태에는 새누리당 내 권력 투쟁, 박근혜-유승민 두 정치인 간의 개인적 인연,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그 핵심에는 대통령-의회 관계의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이번 정권의 향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대통령-의회 관계의 미래, 한국 대통령제의 성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에게 보장된 특권 중의 하나로서 모든 대통령제 국가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국회가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니다.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그 내용이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통제를 강화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으로서 이를 달갑지 않게 생각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의사를 국회에 표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거부권 행사의 방식과 사후 처리에 있다.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의중은 이미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국회의 대행정부 권한 강화라는 취지에 여야가 동의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행정부(대통령) 권력에 비해 국회의 권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정치적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권위주의 하에서 행정부의 시녀라는 오명을 쓰고 있던 국회가 민주화 이후 점차 국회의 대행정부 독립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제도적 권한을 확대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회의 독립성 확보와 권한 강화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커다란 징표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아직도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감지하면서도 거부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대통령의 의중을 거스르고 국회법 통과를 주도한 유승민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 즉 박 대통령과 주변 참모, 대통령을 무조건 추종하는 소위 친박 정치인들이다.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유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규정하는 박 대통령의 언술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신뢰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은 존중해야겠지만, 강력한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입법부-행정부가 융합되어 있는 내각제가 아니라 두 부처가 분리 독립되어 있는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은 의회 권력의 중심에 있는 정치인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대통령제의 모델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대통령 권력의 제한성은 상식이다. 미국 대통령 연구의 대가인 뉴스타트(Richard Neustadt)는 대통령의 가장 큰 힘은 설득하는 힘이라고 오래전에 설파한 바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이나 제도(특히 의회)의 협력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인 행동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의미다. 또한 대통령제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의회가 끊임없는 소통과 대화를 통해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설득받아야만 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권위적인 대통령제가 아니라 민주적인 대통령제를 원한다면, 박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온화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면, 이번 사태를 현명하게 마무리지어야 할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가 대통령의 한마디에 여당의 원내대표가 쫓겨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기억될지, 아니면 보다 건전한 대통령-의회 관계를 마련하는 발판이 될지는 향후 마무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처럼 보이는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보다 수평적인 대통령-의회 관계를 통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장기적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김 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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