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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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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예.담] (5) 전설과 가곡 속 마산 '만날고개'

굽이진 고갯길, 서로를 향한 애틋한 발자국이 쌓였네

  • 기사입력 : 2015-07-0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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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녀의 애틋한 상봉 전설이 전해지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만날고개. 저 멀리 마산만이 내려다보인다.
    만날고개 정목일 詩/김봉천曲

    만날고개 달뜨거든 그리움의 피리 불리라
    만날고개 달뜨거든 비단 고요 밟고 오시라
    달무리로 넘치는 그리움 그리움
    영원속에 울리는 그리움 그리움
    기약없이 떠난 님 달빛처럼 돌아오시라

    만날고개 별뜨거든 그리움의 손짓하리라
    만날고개 별뜨거든 은빛 파도 타고오시라
    은하수로 흐르는 그리움 그리움
    영원 속에 사무친 그리움 그리움
    송별없이 떠난 님 별빛처럼 돌아오시라

    사무친 그리움은 한(恨)으로 남았습니다. 애틋한 마음을 참으려 하면 할수록 냉가슴만 더해졌기에 길을 나섰습니다.

    보고픈 마음에 오른 고개에는 어매도 나와 딸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모녀간의 애틋한 상봉 전설을 간직한 ‘만날고개’ 이야기입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의 경계에 위치한 대곡산 쌀재고개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진 길목에 있는 ‘만날고개’는 예부터 통행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교통로였다고 합니다.

    전설은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마산포(馬山浦)에 양반 이씨 가문이 있었는데 편모 슬하에 열일곱 살 큰딸과 열서너 살 둘째딸, 열 살 남짓의 막내아들 등 3남매가 살았답니다. 어려운 살림에 어머니마저 고질병으로 몸져 눕게 되자 형편은 더 어려워져 말이 아니었다고 하네요. 마침 마산포에서 시골로 행상을 다니는 아주머니가 이웃 감천골에 사는 윤진사댁 벙어리 외아들과 큰딸이 혼사만 이뤄지면 전답 수십 두락(마지기)과 많은 금전을 받을 수 있다며 큰딸아이와의 결연을 권유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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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아무리 집안이 구차하고 내 병이 낫지 않더라도 병신에게 내 딸을 줄 수 없다”며 한사코 거절했지만 큰딸은 집안과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벙어리와 혼사를 치렀는데 시집살이가 아주 가혹했다고 합니다. 더욱이 손자를 낳지 못한다고 구박과 성화가 날이 갈수록 심해져 시집간 지 3년 만에 겨우 허락을 받아 근행(첫 친정나들이)을 나왔다고 합니다.

    만날고개까지 동행한 벙어리 남편은 아내에게 친정에 다녀오라고 말한 후 만날고개에서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한달음에 달려간 친정집은 시집갈 때 받은 금전과 전답으로 가세는 호전됐고 어머니의 병은 완치돼 마음이 한량없이 기뻤다고 합니다.

    어머니께 시집살이 사연을 말하고 돌아가지 않으려 하자 “여자는 출가외인(出家外人)이라 한 번 시집을 가면 죽을 때까지 시가의 가훈에 의해 살아야 한다”며 호통을 쳐 눈물을 흘리며 시가로 향했는데 만날고개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머리를 돌에 부딪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남편은 ‘집을 도망쳐 나가 살아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네요. 스무 살의 나이에 청상과부가 돼 수절하며 살아가던 큰딸은 몇 해가 지난 팔월 열이렛날(음력 8월 17일) 친정이 그리워 만날고개에 가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친정 안부나 전해 듣고 친정집 처마라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고개를 올랐는데, 마침 친정집 어머니와 여동생도 나와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네요. 반가운 마음에 서로 얼싸안고 한참 동안 정담을 나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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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날고개의 옛 모습(위)과 현재 모습.

    지금도 매년 음력 8월 17~18일이면 만날제(상봉제)가 열립니다. 모녀간의 애틋한 상봉 전설이 만남과 그리움의 축제로 탈바꿈한 것이죠.

    수필가 정목일 선생과 작곡가 김봉천 선생도 이런 애틋한 모녀 상봉 전설을 한 편의 가곡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노랫말 속에는 딸이 친정을 그리워하는 애틋함이 마디마다 묻어납니다. 어머니가 그립고 보고픈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는 ‘만날고개 달뜨거든 비단 고요 밟고 오시라/ 달무리로 넘치는 그리움 그리움/ 기약 없이 떠난 님 달빛처럼 돌아오시라/ 만날고개 별뜨거든 은빛파도 타고 오시라/ 은하수로 흐르는 그리움 그리움/ 영원 속에 사무친 그리움 그리움’ 대목에서는 듣는 이는 가슴이 아련해지기까지 합니다. 달빛 되어 별빛 되어서라도 그리운 어머니를 보고 싶은 딸의 애절함이 느껴지지요.

    음률에서도 한국인의 정서가 그대로 묻어나는 듯한 느낌입니다. 악보의 끝부분에 16분 음표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만날고개의 산들바람과 빨리 어디론가 달려가고픈 그리움을 표현한 듯 싶습니다. 먼 바다를 보며, 가슴 쓸어내리는 진한 그리움, 듣는 이의 심장을 멈추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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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곡 ‘만날고개’의 배경을 따라 길을 올라봅니다. 경사진 언덕을 한참 오르다 보면 마산만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펼쳐지지요.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와 도심은 파란 하늘과 구름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합니다.

    고갯길은 정감 넘치는 흙 대신 아스팔트가 놓여 아쉬움이 남지만 그리움의 대상은 그대로인 듯한 느낌입니다.

    만날고개는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채 삶의 소용돌이를 거쳐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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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그늘 아래 앉아 잠시 쉬어 가노라면 시원한 산들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 줍니다.

    고갯길을 따라 내려오다 무학산 자락을 따라 이어진 둘레길로 접어들어 봅니다. 1·2구간으로 나눠진 둘레길은 제법 운치가 느껴집니다. 1구간은 밤밭고개에서 출발해 만날고개 ~ 수선정사 ~ 완월폭포 ~ 보타사 ~ 서원곡까지로 3시간 20분여(8㎞)가 소요된다고 하네요. 2구간은 서원곡에서 무학편백산림욕장 ~ 광영암 ~ 봉국사 위 ~ 두척약수터 ~ 두척경로당 ~ 중리역삼거리로 5시간 20분(12.9㎞)이 소요되는 제법 만만찮은 코스입니다.

    만날고개에서부터 서원곡유원지까지 이어진 ‘최치원 길’(5.4㎞)은 가벼운 운동화 차림으로도 충분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평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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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원 길 초입의 쭉쭉 뻗은 편백나무 군락은 상쾌함을 더해 주고 딱딱한 아스팔트 길을 대신한 산길은 발을 내딛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푹신푹신한 흙길이 정감마저 듭니다. 편백군락을 지나 산길을 걷노라니 산새들이 반기기라도 하듯 노래를 부르며 친구가 되어 줍니다.

    숲길은 오르고 내리며 굽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걷는 내내 울창한 숲이 따가운 햇살을 가려 주고 적당히 불어주는 산들바람은 등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식혀주기에 충분합니다. 이처러 둘레길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그리움이 있기에 만남은 행복합니다. 보고픈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또 다른 만남을 약속하기에 항상 슬프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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