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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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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고운맘 되기 (15) 딸느님, 밥 좀 먹어주오

  • 기사입력 : 2015-07-11 2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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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책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책 제목이 ‘징그럽게 안 먹는 우리 아이 밥 먹이기’ 라니.

    목감기를 혹독하게 앓은 딸아이는 밥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방법을 찾던 중 포털 사이트에 ‘밥 안 먹는 아기’로 검색한 결과 값 중 하나였다. ‘징그럽게’라는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밥을 안 먹는 자식에게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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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은 본래 지나칠 정도로 뭐든 잘 먹는 아이였다. 배가 터질 듯 부풀어도 자꾸 밥을 달라던 게 오히려 걱정이었던, 정체불명의 엄마표 음식도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사랑스러운 먹보였다. (아마도 100일까지 모유를 배불리 먹지 못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참조- ‘조 기자 고운맘 되다 (11) 물젖과 참젖’ 편)

    그런 딸이 180도로 변한 것이다. 밥은 물론 그렇게 좋아하던 과일도 과자도 거부했다. 목이 많이 부었으니깐, 처음엔 당연하다 생각했다. 한 사흘을 거의 굶다시피 했고, 끼니때마다 분유를 먹였다.

    볼이 쏙 들어가고, 배가 홀쭉해지고, 걸음도 비틀거렸다. 열도 내리고 컨디션도 좋아졌지만 밥 거부는 계속됐다. 딸의 입속으로 뭐라도 넣어 먹이고 싶었다. 그릇을 들고 따라다니며 틈만 나면 입에 숟가락을 들이대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남의 이야기일 줄 알았던 ‘징그럽게 밥 안 먹는 아이’는 그렇게 내게로 왔다. 누구네 아기가 밥을 안 먹어서 인스턴트만 먹인다며, 하물며 엘리베이터에서 밥을 먹이는 엄마도 있다며, 웃으며 이야기 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 엄마들이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을 거라고 내심 비난하듯, 식습관이든 뭐든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모두 부모 탓 아니겠느냐’며.

    그런데 막상 내 자식 일이 되니깐, 육아관 식습관 교육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목표는 오로지 딸이 먹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가 없었다. 엄마라는 존재의 한계였다.

    말을 갓 배우기 시작한 딸은 뭔가 먹일 준비만 하면 ‘아냐, 아냐’ 손을 흔들며 도망 다녔고, TV와 책, 장난감을 총동원해 어찌어찌 겨우 입에 뭔가를 넣어도 몇 번 씹다가 다시 뱉어버렸다. 이유식을 처음 먹일 때도 이렇게 애를 태우진 않았는데, 달래도 보고 화도 내고 장난도 쳐 봤지만 통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억지로 먹이면 악을 쓰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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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악. 못났다. 먹기 싫다며 우는 딸
    컨디션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그나마 과일이나 과자류는 받아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밥 거부는 계속됐다. 춘향이가 정절을 이렇게 지켰을까 싶을 정도로 딸은 밥 알을 단 한 숟가락도 목으로 넘겨주지 않았다. 그렇게 주전부리로 딸은 일주일을 버텼다.(영양보충은 분유로)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신가. 다행히도 딸은 지금 밥을 잘 먹는다. 해결사는 시어머니였다. 밥에다 설탕을 뿌려서 먹이신 것이다.

    19개월 동안 조미료 없는 밥과 반찬만 먹던 아이에게 달달한 ‘설탕’은 밥 거부를 포기할 만큼 맛이 좋았을 것이다. 설탕밥이면 어떠랴, 설탕보단 밥이 많지 않은가. 쪼그만 입에 밥알이 들어가고 목으로 꿀꺽 넘어가는 순간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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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로 장난만 치는 딸, 좋으냐?/
    어쨌든 그 한 끼를 싹 비운 딸은 다시 먹보로 돌아왔다. 다만 까탈스러운 먹보가 됐다. 맛이 없거나 밍밍한 음식은 혀 끝에 닿자마자 바로 뱉어낸다.(아, 이 습관 어떻게 고치나요? 육아 고수님들 알려주세요.ㅠㅠ)

    그렇다고 계속 설탕밥을 주진 않는다.

    까다로워진 입맛을 맞추기 위해 전문 쉐프 같은 마음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음식을 만든다. 누가 그랬던가,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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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실에서까지? 아빠의 밥 먹이기 유혹
    덧붙여 내 새끼 밥 안 먹겠다는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징그러운 소리다.

    서른넷이나 먹어서야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나는, 요즘 끼니마다 냉장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부모님표 반찬을 죄다 꺼내 뱃속으로 소환 중이다.(서른넷 딸자식(며느리) 살찌는 소리가 더 징그러우시려나...) 조고운 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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