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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회복적 정의’가 필요하다- 김명찬(인제대 상담심리치료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5-07-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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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정치사회적 이슈의 중심이 된 이들의 자살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자살을 명예로운 죽음, 더 이상의 자기 존엄을 해치지 않을 최후의 선택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일면 그 선택이 타당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는 듯하다. 사실 이러한 인식은 명예와 대의명분, 조직의 의리 등을 중시하는 문화적 배경에서 출발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회적 체면이 사람의 생명을 종종 앞설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체면이란 실질적 가치가 없는 심리적 가치에 해당한다. 그리고 자살은 심리적 생존과 관련된, 체면의 손상과 관련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의도가 있는 잘못이나 실패, 실수 등을 저지를 수 있다. 동시에 분명한 의도가 없음에도 일어나는 잘못이 있을 수 있다. 의도의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은 불완전하고 부조리한 존재다. 사람이 당면한 이러한 한계를 존중한다면 우리는 타인의 잘못에 대해 그를 지적하고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도 동시에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사람됨을 인정하는 일인 것이다. 낮은 자살률을 보이는 사회의 특징은 ‘회복적 정의’가 존재한다는 점에 있다.

    가령, ‘내부자 고발’ 제도를 들여다보자. 한 언론 기사에 따르면 42명 중 25명은 해임이나 파면을 당했고, 28명은 생계를 잇지 못해 경제적 곤란을 당한다고 한다(동아일보. 2014년 9월 1일자). 이미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지난 2011년에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고자에 대한 이러한 대우는, 잘못이 밝혀졌을 때 이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문화가 부족하다는 걸 암시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지목될 경우 그 사람이 경험할 심리적 위축감은 클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연스레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남은 명예와 가족의 안위를 지키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높다.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에게도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있음을 확인해주고 지켜주는 문화는 중요하다. 그래야만 문제가 생겼을 때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잘못을 고백할 용기가 생겨난다. 아울러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관심이 잘못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데 있지, 잘못을 저지른 개인에 대한 비난과 경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을 비난하고 마녀사냥을 한 후 그 사람의 삶을 파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 그 자리에서 동일한 잘못과 실수를 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잘못을 바로잡아 정의를 실현한 것이 아니라, 잘못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반영돼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이 일어나는 이유와 맥락, 구조를 바로잡아 가는 일이다. 그래서 사회가 나아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회복적 정의’라 하겠다. 평범한 말이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최근 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교도소를 방문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재소자와 나의 차이는 구조적인 도움이 있었는가와 두 번째 기회를 받았느냐의 차이에 있을 뿐이다. 결코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다”는 취지로 사법개혁을 설파했다고 한다. 이것은 ‘회복적 정의’를 통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마음을 보듬고 그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돕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성숙한 사회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다루고 보호하는 사회라 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사회, 발전하는 공동체란 잘못과 실수가 있을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인정하며, 어떻게 그것을 보상하고 바로잡을 것인지를 찬찬히 설명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적 매장이 두려워 공포에 떨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개인의 죽음이라는 끔찍한 결과 외에 우리가 얻을 것은 거의 없다.

    인간이 상처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는 것은 세포의 재생능력에 좌우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재생능력이 반영된 문화가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김명찬 (인제대 상담심리치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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