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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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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 청춘블루스] 청춘 7호. 플라멩코에 인생을 건 영자씨

  • 기사입력 : 2015-07-28 14: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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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은 누구나 가슴 속 별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해요. 그 별들의 운명은 제각각이겠죠. 어떤 이는 별로 인해 아름답게 반짝이는 특별한 존재가 될 테고, 누군가는 평생 자신의 별을 발견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몰라요.

    삶에서 스스로를 빛나게 해줄 무언가를 찾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 같아요. 그건 글을 쓰는 일일 수도, 요리를 하거나, 기계를 만지거나 집안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죠. 누구나 그 별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공통점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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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배우 이영자씨가 스페인 춤인 플라멩코를 추고 있다./성승건 기자/
    저는 플라멩코를 추는 여자, 서른셋의 이영자예요. 플라멩코는 7년 전쯤 제가 발견한 저만의 별이에요. 플라멩코는 제게 단순한 춤이 아니랍니다. 제 영혼이자 열정 그 자체죠.

    이십대 후반에 이를 발견했고, 이 별을 빛내기 위해 영자는 오늘도 부단히 노력 중이랍니다.


    ▲나는 플라멩코를 추는 여자, 영자

    제 나이를 아는 사람들은 종종 직업을 물어보곤 해요. 그럴 때 저는 '플라멩코를 추는 여자'라고 소개합니다. 전공자이거나 춤이 주 수입원이 되는 일을 하고 있진 않아요.

    사회적 통념상 직업은 아니죠. 그래도 '정선희 플라마 플라멩코' 부산지부장으로 공연과 강의를 하고 있고, 무엇보다 전 매일 매일을 플라멩코를 위해 살고 있으니깐, 제 일은 플라멩코를 추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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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멩코를 추는 여자' 이영자씨의 플라멩코 공연 장면. /이영자씨 제공 /
    사실 전 요즘 플라멩코보다 돈을 버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어요. 9월 초 스페인 유학을 떠날 계획이거든요. 스페인은 플라멩코 춤이 시작된 곳이에요. 그곳에 가서 1년 동안 플라멩코 전문 학교를 다니려고 해요.

    제 본래 일은 연극배우였어요. 큰돈이 없었죠. 그래서 유학자금을 모으기 위해 작년부터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어요.

    어린이집 파견교사일과 방과 후 교육, 그리고 연극 공연을 하고 있죠. 아이들도 예쁘고 연극을 가르치고 공연하는 일도 즐겁긴 하지만, 이런 일상이 힘든 건 사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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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멩코를 추는 여자' 이영자씨의 플라멩코 공연 장면. /이영자씨 제공 /
    전 플라멩코를 추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데 춤을 출 시간이 다른 일을 하는 만큼 줄어들기 때문이죠. 일을 하지 않는 저녁이나 주말에 진주에서 연습실 2곳을 대관해서 춤을 추고 있지만 늘 부족하고 아쉬워요.

    그래도 플라멩코와 더 깊이 빠지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힘을 내고 있어요. 언젠가는 제가 좋아하는 플라멩코를 추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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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 극단 장자번덕에서 공연 중인 이영자씨. /이영자씨 제공/
    ▲연극이 운명이라면 플라멩코는 숙명

    플라멩코를 처음 만난 건 5년 전이에요. 연극인으로 살아가던 때였고, 연극을 위해 플라멩코를 추기 시작했죠. 연극은 20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작했어요. 뮤지컬 릫캣츠릮에 반해서 진주여고 연극반에 들어갔고, 극단 장자번덕 연출가 선생님을 만나게 돼 졸업하자마자 극단으로 들어갔죠.

    사천의 장자번덕에서 7년, 서울 수레무대에서 3년의 연극을 했네요. 두 극단 모두 합숙을 하는 구조여서 10년간 오로지 연극을 위한 삶을 살았어요. 무대가 좋았고, 연극이 운명이라고, 평생 연극인으로 살게 될 거라고 믿었죠. 플라멩코를 배운 것도 배우로서 특기를 가지고 싶어서였으니까요. 연극을 하면서 2년 정도 취미 삼아 플라멩코를 췄네요.

    그러다 삶이 플라멩코로 기울기 시작한 것은 2012년쯤이었어요. 문득 연극인으로 회의감이 찾아왔죠. 10년을 무대 위에 섰는데도 제대로 연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배우는 표현이 분명해야 해요. 희로애락을 구체적으로 명쾌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웠어요. 스스로 연극인으로 적절한 사람이 아니라는 자괴감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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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배우 이영자씨가 스페인 춤인 플라멩코를 추고 있다./성승건 기자/
    그러다 2013년 연극 <돈키호테>를 준비하면서 스페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품의 배경지인 돈키호테 마을도 들르고, 현지의 플라멩코도 느껴보고 싶었거든요. 마침 목돈이 생겨서 3달 일정으로 떠났죠.

    한 달간 스페인 플라멩코 아카데미에서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춤을 췄어요. 그때 느꼈죠. 제 가슴 속의 별이 반짝이기 시작했다는 걸요.

    플라멩코는 스페인 집시들이 유랑하는 자신들의 삶의 비애를 온몸으로 표현해 희열로 승화시킨 춤이에요. 쾅쾅 발을 구르며 손짓과 몸짓을 이용해 격렬한 기타 연주에 맞춰 춤을 추죠. 다른 춤과는 달리 여성 댄서 혼자 추는 독립적인 춤이라 제 눈엔 더 매력적이었어요.

    음악에 취해 스스로에 몰입해서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면서 큰 희열을 느꼈어요. 춤을 출 때면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것 같았고, 연극으로는 다 꺼내지 못했던 감정표출이 춤으로는 가능했어요.

    플라멩코를 추면서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 제가 반짝이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가지게 됐어요. 인생관도 바꾼 거죠. 자신에게 더 충실하게 살자, 이렇게요.

    한국에 돌아와서 연극인 영자보다 플라멩코를 추는 영자가 되기로 했죠. 극단을 그만두고 플라멩코에 전념키로 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장르라 배우는 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스페인 유학까지 결심하된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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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배우 이영자씨.
    ▲내 미래는? 가슴 뛰는 삶

    유학을 다녀온다고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거라 생각하진 않아요. 미래에 대해 부모님과 주변에서도 걱정이 많으시죠. 그런데 지금은 주변의 시선이나 다른 걸 생각할 여력이 없어요. 당장 플라멩코가 더 알고 싶고, 그 일이 즐겁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뿐이죠.

    계획은 하나 있어요. 유학을 다녀오면 제가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어요. 여배우 영자와 플라멩코를 추는 영자를 만나게 해주는 거죠. 저만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무대를 통해 지역에서 플라멩코를 알리는 작은 역할도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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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배우 이영자씨가 스페인 춤인 플라멩코를 추고 있다./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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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배우 이영자씨가 스페인 춤인 플라멩코를 추고 있다./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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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배우 이영자씨가 스페인 춤인 플라멩코를 추고 있다./성승건 기자/
    그 이상의 더 크고 더 먼 미래를 미리 그리진 않아요. 10년 전 연극이 제 가슴을 뛰게 했던 것처럼, 또 10년 후에는 한국화를 그리거나 (웃음) 다른 일에 흠뻑 빠져 지낼지도 모를 일이죠. 다만 뭘 하든 스스로 빛나는 일을 찾아서 즐겁게 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산다면 흔히 성공이라 일컫는 상황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괜찮아요. 남보다 조금 더 안 좋은 차를 타거나, 남과 다른 삶(노처녀가 된다든지)을 살진 모르지만, 분명히 굶어죽진 않을 테니깐요. 최선을 다했던 연극과 플라멩코는 제 무기가 될거예요.

    그리고 돈이나 성공보다는 스스로 삶에서 뭐가 중요한지를 깨닫는 힘, 그리고 그걸 위해 부단히 노력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게 더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그렇게 믿고, 삼삼한 서른셋, 영자는 오늘도 플라멩코를 춥니다. 조고운 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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