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 비비고 일어나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 서울에서 교사 직업을 가졌을 법한 시 속의 화자는 어느 봄날 자연으로 귀화한 제자를 찾아갑니다. 거기서 제자의 어린 딸을 만나는데요, 자기 딸의 정체성에 대해 제자가 표현한 말인즉슨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겁니다. 이 표현으로 미루어볼 때 그 제자가 귀화한 이유가 도시와 문명 속에서 경쟁력이 떨어져서가 아님을 알 수 있지요.
그 딸의 첫 일과는 꽃에 물주기입니다. 질경이, 나싱개(냉이), 토끼풀, 억새…. 이런 꽃(!)들 말입니다. 풀에는 물을 줄 필요가 없다는 ‘지식’을 전해주려고 이게 뭔데 물을 주느냐고 묻는 시인에게 “꽃이야”라고 간단명료하게 한 수 가르쳐 주네요. 온전한 ‘자연산’ 인간의 말이었지요. 그 말을 통해 깨닫습니다. 죽은 지식, 낡고 고정되어 있고 편협한 사고의 틀 안에서 생명의 살림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요. 새롭고 무한히 열려 있고 살아있는 정신이 이 세상을 생명력으로 충만한 곳으로 가꾸어 갈 수 있다는 것을요. 어떠세요? 꽃 이름의 목록에 추가할 단어들이 이만큼 늘어나지 않으셨습니까? 조예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