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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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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무학산서 장승 조각하는 송채섭씨

웃는 장승 새기다 보면 내 마음도 웃지요

  • 기사입력 : 2015-07-3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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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스팔트가 끊어지고 비포장길이 나타나더니 내비게이션에는 도로를 벗어난 차가 산을 향해 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감천리의 무학산 기슭. 송채섭(57)씨의 작업장을 찾았다. 송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 길이 맞는지 물었다. “길 끝까지 무조건 올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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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채섭씨가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감천리 무학산 기슭의 작업장에서 직접 만든 장승 사이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비포장길을 오르다 보니 장승들이 눈에 띈다. 장승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는 표정이다. 장승 사이로 송씨도 활짝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고생했지요. 길이 그래도 예전보다 좋아진 겁니다.”

    무학산 시루바위 아래에 위치한 작업실에는 제작 중인 크고 작은 장승들이 가득했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서각과 달마도도 눈에 띈다.

    송씨가 작업실 마당 평상으로 차를 내왔다. 인근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산 아래 우거진 나무와 마을이 보이는 경치는 한 폭의 그림 같다.

    점점 송씨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송씨가 장승을 제작한 지는 8년째다. 그가 여태껏 만든 장승만 1000여 점이다. 하지만 그는 ‘장승 제작 업자’는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많은 장승을 만들었지만 판매한 것은 한 점도 없다. 송씨는 산 속에 들어와 장승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 ‘취미생활’이라고 했다.

    그는 “제작한 장승들은 모두 지인들에게 나눠준다”며 “간혹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가져다주면 공임 없이 만들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취미생활 치고는 규모가 작지 않다.

    “장승을 만드는 것은 항상 새롭고 즐거운 작업이죠. 고전적인 화난 모습의 위엄 있는 모습이 아니라 늘 웃는 모습으로 저만의 장승을 만들고 있죠.”

    그의 직업은 창호 제작 업자이다. 30여 년간 일을 해오면서도 별도의 작업장을 마련할 만큼 어떻게 이런 취미생활이 가능할까. 그는 매일 이곳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일이 없을 때는 이곳에 와서 살다시피 하고 일이 있는 날도 퇴근 후 반드시 들른다.

    그는 “돈 되는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몰두하느냐고 처음에는 가족들의 반대도 많았다”며 “계속하다 보니 지금은 이해해 준다”고 말했다.

    송씨는 사실 서예가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부터 서예에 관심이 많아 30여 년간 서예를 해왔다. 초대작가로 등단했고 ‘송제(소나무 언덕)’라는 호도 갖고 있다. 글을 쓰는 것이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됐다는 송씨는 서각을 하면서 장승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내 글은 100번을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아 처음에는 실력 있는 서예인들에게 서고를 받아 목판에 새기는 작업을 했다”며 “타인의 글을 새기다 보면 배우고 느끼는 게 많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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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씨의 작업이 취미생활이라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은 어느 작가 못지않다.

    “서각은 붓끝의 힘을 칼끝에 살리는 작업이죠. 무작정 새기고 싶은 대로 새기는 것이 아니라 나무결을 잘 이해해야 하죠.”

    나무를 자주 대하다 보니 그의 욕심은 장승 제작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무작정 장승 명인을 찾아가 배움을 요청하기도 했고 지금도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무학산 여기저기를 다니며 고사목을 찾는 것도 그의 즐거움이다. 나무를 벌초하는 것은 불법이기도 하지만 생나무는 장승 제작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고사목은 훌륭한 장승의 재료가 된다.

    그는 “장승 제작이야말로 나무와 대화하는 작업이다”며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고집해서 새기는 것이 아니라 나무결의 모습을 잘 파악해 나무의 모습과 내가 생각한 모습을 조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업자도 아니고 작가는 더더욱 아니라는 그가 장승 제작에 몰두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취미생활이 이유만은 아닌 듯했다. 무학산 기슭에 위치한 송씨의 작업장은 그에게 힐링(치유)의 장소이다. 그는 “장승을 만들다 보면 마음이 행복해진다”고 했다.

    송씨의 작업장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현대인들의 삶 속에 숨겨 둔 오아시스 같다. 작가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던 그이지만 작품에 대한 철학은 분명했다.

    그가 꿈꾸는 것은 작품에 대한 ‘자기 만족’이다. 언제까지 장승을 만들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평생’이라고 대답했다.

    “작품은 한 명이라도 원하는 사람이 있을 때 가치가 있죠. 한 점을 주더라도 받는 사람의 기쁨이 있기 때문에 장승 제작을 죽을 때까지 계속할 겁니다.”

    김용훈 기자 yh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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