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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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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한국·러시아 문화 싣고 달린 '기차 퍼포먼스'

유선이 교수의 유라시아 친선특급 이야기

  • 기사입력 : 2015-07-3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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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현지시간) 오후 러시아 이르쿠츠크 바이칼 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유라시아 대축제에서 친선특급 대원들과 러시아 주민들이 함께 기차놀이 퍼포먼스를 즐기고 있다.
    하바롭스크에서 출발해 이르쿠츠크를 향해 달리는 열차에서 지낸 시간이 몇 시간째인지 모를 정도로 창밖 배경들은 같은 풍경의 그림을 연이어 복사해서 펼쳐놓고 있다. 넓고 넓은 대륙의 거대함이 언제까지 펼쳐질지 궁금할 뿐이다.

    62시간의 열차 이동 동안 서서히 익숙하고 적응되기 시작하는 열차 속 문화는 열차 안에서 쾌적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의 노하우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열차 이동 중 가장 걱정이었던 이 구간도, 뒤로 멀어져 가는 창밖 배경들처럼 어느덧 이별을 고하고 있다.

    죄수들과 데카브리스트(12월 혁명당원)들의 유배지라는 역사적인 지역 특성이 있는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동시베리아 철도’ 구간과 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 구간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서쪽과 동쪽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18일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우리 원정대는 바이칼 축구 경기장에서 현지인, 고려인들과 화합 친선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 등을 함께 마련했다. 운동장 가에 설치된 부스에서 요리, 마술, 페이스페인팅, 네일아트 등 대원들의 다양한 재능기부와 플루트와 바이올린 듀엣연주 및 식전 행사가 마련됐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고려인들의 상기된 얼굴과 러시아인들의 밝은 환영 인사가 무척 인상 깊었다. 러시아인들과 원정 대원들이 함께하는 기차놀이 퍼포먼스는 참여하는 이들도 신이 났지만 보는 이들도 즐거웠다.

    다음 날 아침 이르쿠츠크에서 50㎞ 떨어진 건축-인류학 박물관 ‘딸찌’를 방문했다. 18세기에 살던 집들과 생활용품들을 전시해 놓은, 우리나라의 한국민속촌과 비슷한 곳이다. 어느 작은 통나무집 안에는 실을 짜는 작은 베틀이 보였다. 우리 민속촌에서 보던 그것과도 비슷했다.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리는 바이칼 호수의 장관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1637m의 수심과 수심 40m의 동전도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깨끗함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가장 많은 담수량을 자랑하며 세계 민물의 20%, 세계 식수의 80%를 차지하는 천혜의 호수로 알려져 있다. 호수의 깨끗함은 ‘오물’이라는 생선 때문이라며 꼭 시식해야 한다는 인터넷 추천이 있어서 한 마리를 사서 맛본 결과 호기심과 기대에 부응하는 듯 담백한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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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카테린부르크의 유럽·아시아 분기점에서 러시아 민속가수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구운 돌에 물을 끼얹고 땀이 나는 몸을 비료자(자작나무)로 탁탁 두드리며 피로를 푸는 러시아식 사우나 ‘바냐’에서 머리에 두른 양머리 수건은, 한국 찜질방에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작은 문화인데 이렇듯 사우나 문화의 독특함과 개성 속에 이색적인 조화라고 혼자 거창하게 생각해보고 웃으며 자작나무로 등을 두드렸다.

    다시 열차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22일 수요일 ‘새로운 시베리아의 도시’라는 의미의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했다. 120여 개의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된 노보시비르스크는 시베리아의 교통, 과학, 비즈니스, 산업, 교통의 중심지이다.

    러시아 3대 오페라, 발레 극장 중의 하나인 오페라 극장은 35m 높이의 은색 돔이 인상적이다. 1936년 전쟁 이후 몇 년 동안은 독일 예술인 포로들이 공연을 했다고 한다. 그 오페라 극장을 뒤로하고 코트를 휘날리며 서 있는 거대한 레닌 동상은 예술의 순수와 창작을 혁명과 사상의 도구로 사용했을 괴물처럼 보여 왠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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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처형된 곳에 세워진 러시아 정교 교회. ‘피의 사원’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24일 도착한 예카테린부르크는 유럽과 아시아를 구분하는 분기점이 있는 도시로 분기점을 기준으로 왼쪽은 아시아, 오른쪽은 유럽이라고 해서 경계선을 가운데 두고 있다. 이곳의 경계선은 16세기 러시아 지리학자 티티쉐프의 연구에 따른 것인데 약 2000㎞ 뻗어 있는 우랄산맥의 동서를 비교했을 때 수자원의 원천과 식물의 분포가 달랐고, 그것이 근거가 돼 유럽과 아시아로 나뉘게 됐다고 한다.

    이곳의 경계선과는 다른 우리의 남북 경계선은 우리가 꼭 풀어야 할 숙제이기에 통일의 염원을 담아 분기점 표지판에 소원 리본을 매달았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의 일가족들이 처형된 곳에 세워진 러시아 정교 교회, ‘피의 사원’은 이름처럼 눈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니콜라이 2세는 각종 영화, 만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끈 러시아의 마지막 공주, ‘아나스타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일가족 모두 처형되었지만 혹시라도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와 어딘가에 살아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어낸 작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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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선이 창신대 음악과 외래교수 두루지야플루트앙상블 감독

    정치적, 국제적 소용돌이에 무능하게 휘둘렸지만 너무도 인간적이었던 니콜라이 2세는 결국 소비에트 적군에게 일가족과 함께 비참하게 살해당한다는 슬프고 아픈 역사 스토리와는 상반된 ‘피의 사원’은 금빛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너무나 아름답고 평온해 보였다. 사원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엄숙한 분위기와 코끝에 스며드는 향냄새는 안타까운 역사의 희생자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들을 추모하는 듯했다.

    모스크바가 점점 가까워지니 내 심장 박동도 빨라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많이 변해버렸을 모스크바도 이젠 쏘냐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26일 일요일 현재시간 오전 11시 30분, 모스크바가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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